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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백 Jan 05. 2021

나를 증명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딱히 한 것 없는 3학년에서 벗어나기

커버 사진 : Photo by Daria Nepriakhina on Unsplash 


큰 꿈을 가지고 대학에 입학한 게 어제 같은데, 벌써 3학년이 되었다. 한 학기를 휴학해서 햇수로는 대학에 입학한 지 4년에 접어들게 되면서 인턴이나 아르바이트에도 많이 지원하게 되었다. 


매 방학마다 혹시 몰라 학교에서 신청받는 국가근로를 지원하는데, 매번 연락이 오지 않다가 이번 방학 때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외부 스타트업과 연계해서 기간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방식도 있었고 나에게도 그러한 기회가 찾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작은 경력이나마 쌓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기말고사 기간이라 한창 바빴던 나는 배정받은 스타트업에서 진행한 면접에 적극적이지도 않았고 이력서도 이전에 써놨던 것을 수정하지 않은 채 제출했다. 결국 좋은 기회임에도 나는 그 기회를 잡지 못했다.


비대면으로 면접을 보면서 면접관께서 ‘들어오면 글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는데, 글을 잘 쓰시냐’고 내게 물어보셨다. 이력서에 적힌 경력이 몇 편의 단편영화 촬영이 전부이기에 그렇게 물어보신 것이었다. 나는 가끔씩 학교나 외부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강의를 들으면 매번 칭찬을 받는 사람이었기에, 나에게 딱 맞는 기회가 찾아왔다 싶었다. 네. 글 잘 쓰는 편입니다. 하지만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없었다.


SNS에 글을 써서 ‘좋아요’를 얼마나 받았는지, 얼마나 공유되었는지와 같은 객관적인 증거를 요구하셨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친구들에게 내가 본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후기를 알리기도 하지만, 피드에 글을 쓰는 것은 익숙하지 않아 항상 스토리 기능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평소에 폐쇄적으로 이용했던 나이기에 글을 썼다고 ‘좋아요’를 많이 받았을 리도 없었다. 나는 그냥 스토리 기능을 통해 본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추천하는 편이라고만 말했다. 


면접에서 떨어지고는 많이 속상하거나 슬프지는 않았다. 애초에 내가 직접 회사에 지원서를 넣은 것도 아니었고, 면접 준비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으니까(그날 아침에 시험을 두 개 보고 오후 두 시에 면접을 봐서 사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면접 결과에 대한 감정과는 별개로 나의 경력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대학에 입학한 첫 해에는 의무적으로 송도에 있는 기숙사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2년 간 기숙사에서 조교로 일하며 살아야 했기 때문에 대외활동을 하기 위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기숙사 조교로 일하던 때는 반드시 평일 오후 8시에서 12시까지는 기숙사에 상주해야 했기에 개인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렇게 동아리, 대외활동, 공모전과 같은 많은 학생들이 하는 활동들을 나는 3학년이 될 때까지 거의 하지 못했다.


대외적인 활동을 많이 하지 못하는 여건이었더라도,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은 내가 노력해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요즘에는 많은 학생들이 유튜브 활동을 해서 포트폴리오를 쌓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성격이 꾸준하지 못해서인지, 외향적이지 않아서인지 그런 자료들을 모으고 내보이는 것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경력사항은 1-2학년 때 참여한 학생 단편영화 촬영과 기숙사 조교 활동이 전부다. 경력이 없지는 않지만, 나를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이력서에 지금까지 한 활동을 한 줄 더 적기 위해 힘든 대외활동을 하고 공모전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은 적도 많았다. 지금도 대외활동을 지원하려고 할 때 걱정이 더 앞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고민하고 정체되어 있다 보면, 점점 더 나의 경력에 빈 부분이 많아진다. 1-2학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은 3학년을 뽑아주지 않는 대외활동들도 많다. 앞으로 다가오는 시간을 또 그냥 보내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겨울방학에 이것저것 시작하기 시작했다. 항상 미루던 독일어 공부, 학교 교수님을 도와 진행하는 연구 프로젝트, 할인 기간에 충동구매로 인터넷 강의를 사버린 오픽, 아는 건 없지만 패기만 가지고 들어간 데이터 사이언스 스터디까지. 대학에 들어와서 보내는 방학 중에는 가장 할 게 많고 바쁜 방학이지만, 매일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하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할 수 있는 능력보다 판을 더 넓게 벌인 것 같기도 하다. 계속해서 지원할 수 있는 대외활동도 찾아보고 있고, 배우고 싶은 것들 인강도 더 많이 찾아보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열심히 사는 것도 겨우 2주 차라서 남은 방학 동안에도 부지런히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물론 내 의지의 문제지만). 하지만 지금은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인지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것들을 하며 방학을 보내고 싶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지금까지 글쓰기를 특기나 취미라고 생각하면서 아이러니하게 블로그나 SNS에 글을 많이 올리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게 조심스럽기도 하고, 앞서 말했듯이 내 성격이 꾸준히 뭔가를 하는 성격도 아니라서 그렇다. 하지만 자기 계발에 대한 의지가 충만한 지금,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한 번 해볼까 싶어 예전에 티스토리에 썼던 글 몇 편으로 신청했는데 운 좋게 작가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사실 인스타그램에 관련된 고민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한 친구가 브런치를 추천해주기도 했다.) 과거의 나를 비추어봤을 때, 앞으로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다고 확신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다음에 어디서든 일을 구할 때면, 그때는 좀 더 한 게 많은 사람으로 나를 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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