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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백 May 09. 2021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2021전주국제영화제후기

2021 전주국제영화제. 영화의 거리 앞.

2019년, 전주국제영화제를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온라인 예매 때 매진된 영화 티켓을 현장 예매로 사기 위해 현장 티켓 부스가 열리기 2-3시간 전에 나가 티켓 부스 앞에 줄을 서고 기다린 적이 있었다. 내 앞에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미 줄을 서고 있었고, 5월이나 됐는데 아직도 아침은 추워서 몸이 떨렸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다 떨어질 때까지 유튜브 영상을 보다 보니 티켓 부스가 열렸고, 그새 내 뒤에는 내 앞에 선 사람들의 열 배는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곳> 매진입니다!”



컨테이너 박스 두 개를 병렬로 배치한 티켓 부스 앞에서 자원봉사자가 실시간으로 매진되는 영화를 알려주었고, 그럴 때마다 줄을 서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탄식 소리가 나왔다. “에이, 그러면 뭐 봐야 하지?” 티켓 부스 옆에 벽처럼 세워져 있던 상영시간표를 다시 훑어보며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무사히 현장 예매로 사고 싶었던 영화 표를 사고 숙소에 돌아왔다.



지금까지도 그때만큼 ‘야, 내가 영화제에 와 있구나’라고 느낀 적이 없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는 작은 인생의 목표가 생겼다. ‘다른 건 몰라도 매년 영화제를 올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 목표는 바로 다음 해에 이뤄지지 못했는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전주국제영화제가 사실 상 오프라인 상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취소되기 전까지 엄마와 함께 놀러 가서 영화도 보고 한옥마을 구경도 할 계획도 짜 놨는데, 모든 게 다 물거품이 되어 흥이 깨졌었다. 작년에는 그래서 온라인 상영 한 편 보지 않고, 이후에 부천과 부산 영화제도 관심이 덜 가게 되어 영화제 한 번 구경 가지 못한 해를 보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슬로건은 ‘영화는 계속된다Film Goes On’였다. 난 이 한 문장이 ‘코로나 사태에도 우린 영화인들을 다시 극장으로 불러올 것’이라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전주국제영화제가 국내 최대, 세계 최대의 영화제는 아니지만 이 정도의 규모의 영화제도 오프라인으로 진행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이다. 부산 전역에 상영관이 퍼져 있는 부산국제영화제와 달리 전주국제영화제는 영화의 거리를 중심으로 최대 10분 거리에 있는 2-3개의 영화관에 상영관이 밀집해있다. 또한, 전주 영화제는 항상 영화제를 하던 시기가 가족들이 나들이를 많이 오는 시기(일단 내가 영화제를 갔던 때는 어린이날이 안 겹친 적이 없다)이고, 영화의 거리가 있는 전주 객사길은 영화관뿐만 아니라 식당, 카페, 가게들이 모여 있는 시내라서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도 많은 곳이다. 그러다 보니 단순히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을 넘어 많은 위험 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주국제영화제는 올해 오프라인 상영을 결정했다.



사실 코로나 사태가 아니더라도 영화Film는 이미 위험에 처해있었기도 하다. 1학년 때 들은 ‘영화의 이해’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떠올려보자면, 영화를 지칭하는 영어 단어 Movie, Film, Cinema는 우리나라 말로는 같은 ‘영화’이지만 강조하고자 하는 점이 다르다. Movie는 사진과 대비해 움직이는 영상의 특성을, Cinema는 영화를 보는 영화관이라는 장소를, Film은 영화를 기록하는 도구(필름)에 초점을 둔 단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Film은 현대에 들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였다. 물론 여전히 필름으로 영화를 촬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전에 비하면 현저히 적어졌다. Cinema는 Film에 비해서는 잘 살아남고 있었으나, OTT 플랫폼의 발전과 코로나 19 사태를 맞아 빠르게 그 위상이 하락하고 있다. 그전까지만 해도 꼭 넷플릭스나 왓챠를 통해 볼 수 없는 작품이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영화,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보기 위해 꼬박꼬박 영화관에 들렀는데 그게 더 힘들어졌으니까. 



이런 현재 상황을 전주에서 곱씹어보다 보니 또 다른 의문점이 생겼다. ‘과연 영화가 위기에 처한 것이 이번이 처음일까?’ 1895년에 최초의 영화가 상영되고 125년이 넘게 흘렀다. 그 사이에 영화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여러 순간을 겪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텔레비전의 보급이 있었겠지. 그렇게 생각해보면 또 이런 의문이 든다. ‘영화보다 더 오래된 예술, 예를 들어 사진이나 그림과 같은 것들은 왜 여전히 사라지지 않을까?’



이번 영화제에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얻었다. 바로 ‘그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텔레비전이 보급되자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상의 화면비를 바꿔서 차별화를 한 사람들, 텔레비전이 못 하는 무언가를 계속 찾아내서 해내는 사람들 때문에 영화는 텔레비전의 보급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결과로 우리는 어벤저스가 언젠가는 추석 특선 영화로 상영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용산 아이맥스 상영관에 가서 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티켓팅을 하고, 돌비 시네마에 가서 경이로움을 느끼며 ‘역시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해’라는 생각을 한다. 



올해 들은 마스터클래스 GV의 강연자셨던 <기생충>의 사운드 슈퍼바이저 최태영 님께서 클래스 내내 음향 작업을 어떻게 하셨는지, 디테일한 음향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는지를 이야기하셨다. <설국열차>의 기차 소리를 만들기 위해 한국철도공사에 공문을 보냈지만 답을 얻지 못하고 유럽의 영화제작사와 협업해 유럽 전역의 다양한 열차들의 사운드를 녹음해서 기차 소리를 만들어내셨다고 한다. 그리고 이전에 한강에서 들으셨던 KTX가 달리는 소리를 ‘언젠가는 써야겠다’고 생각하시다가 <설국열차> 작업을 하실 때 한강 다리 밑에 마이크를 가져가 녹음했고, 그 소리가 우리가 본 <설국열차>에서 열차가 예카트리나 다리를 지날 때 나는 기차 소리라고 한다. 가장 재미있었던 일화는 <살인의 추억> 작업에서 있었던 일화인데, 그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이기도 한 ‘밥은 먹고 다니냐’의 후시 녹음을 할 때 다른 후시 녹음처럼 배우가 앉아서 이전에 찍은 영상에 맞춰 녹음을 하는 것보다 더 생생한 느낌을 위해 녹음 부스 안에서 붐 마이크를 들고 들어가 배우들이 다시 그 장면을 연기하면서 녹음하셨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본 영화의 작은 발걸음 소리마저도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좀 더 디테일하고 생생한 사운드를 재현하기 위한 노력이 영화를 더 영화답게 만들어오고 있었다.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영화가 우리에게 선사하던 경험과 기쁨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



올해 국제경쟁 섹션에 있던 <전장의 피아니스트> 감독 지미 케이루즈는 온라인 GV에서 첫인사와 함께 ‘지금 같은 어려운 상황에 영화제를 한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안전한 오프라인 상영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힘썼는지는 나를 포함해 영화제에 참여한 사람들도 다 알 것이다. 모든 영화관 입구에서 체온 측정과 QR체크인을 했고 상영관에 입장할 때마다 다시 체온 측정과 손 소독을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비워둔 좌석들에는 관객들이 좌석을 옮겨 앉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리 하나하나마다 앉을 수 없게 테이프가 붙어 있었고, GV 진행도 이전처럼 마이크를 건네받아 질문하는 방식이 아닌 오픈 채팅을 통해 상영관에 있는 관객들이 질문을 보내면 그것을 모더레이터가 보고 질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해외에 있는 감독과 배우들은 GV를 위해 한국에 찾아오지 못한 대신 온라인 GV로 관객들을 만났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영화제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모니터를 통해서나마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지미 케이루즈 감독이 말한 것처럼 큰 기쁨이고 감사함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온라인 GV를 통해 만난, 다른 나라에 있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전장의 피아니스트>의 지미 케이루즈 감독은 레바논에, <해변의 금붕어>의 오가와 사라 감독은 일본에, <여왕에게 영광을>의 타티아 스히르틀라제 감독은 오스트리아에 있었다. 비록 상영관에서 직접 서로를 만날 수는 없었고 카메라를 통해 비추는 관객석은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3분의 1만 차있었지만, 아주 가까운 나라에서부터 시차가 7시간 차이 나는 나라에서까지 모니터를 통해서 관객을 만나기 위해 자신의 집에서,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켜고 찾아와 준 사람들이 고마웠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고 그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영화제에서 우리를 만나게 해 줬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아가서 전주국제영화제를 무사히 진행하기 위한 모든 운영진들, 방문자들이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불가능할 것 같던 코로나 사태 중의 영화제를 현실로 만든 것이라고 믿는다.



다시 2019년도의 영화제에서의 추억을 가져와서 말한다면, 내가 그때 그 순간 ‘매년 영화제에 오는 삶’을 꿈꾸게 된 것은 영화를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물론 영화제는 영화를 보러 오는 것이지만, 재미없는 영화를 보고 영화를 보다가 졸려서 잠에 들더라도 영화제는 충분히 와서 즐기는 의미가 있다. 적어도 나 같은 방문자들에게, 영화제는 영화뿐만이 아니라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주기 때문이다. 티켓부스 앞에 줄 서 있던 내 뒤에 끝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길게 줄 서 있던 사람들, 상영시간표를 보면서 아직 매진되지 않은 작품을 찾아 표를 사려던 사람들을 보며 내가 가졌던 감정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이었던 것 같다. 물론 나 자신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 사이에 끼어있는 것만 해도 정말 재미있고 가슴이 두근거렸으니까. 올해 영화제는 비록 온라인 GV와 온라인 상영, 3분의 1밖에 차지 않은 상영관 때문에 물리적으로 많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는 없었지만, 여전히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라고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를 사랑하는 이 사람들이 계속 영화를 만들고, 영화를 보러 온다면 이전의 위기에 그랬듯이 지금의 위기와 앞으로의 위기도 영화는 잘 이겨낼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슬로건처럼, 아마 ‘영화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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