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자유도 없고 거짓이 가득한 곳에 돌아가고 싶어 했다. 형부랑 나는 난색을 보였다. “진짜 다시 가고 싶다고?” 거듭 묻자, 생사를 알 수 없지만 그 땅에 언니를 길러준 할머니가 있고, 그곳에서의 삶이 결코 불행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태어나서 박탈감이라는 것을 느껴본 적 없는 언니는 오히려 고향을 떠나 북유럽에 정착하면서 그것을 갖게 되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언니가 본인을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면 사람들의 눈빛은 반짝거렸다. 하지만 그 호감의 눈빛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싸늘하게 식거나 측은함으로 바뀌었다. 해외 체류 시 한반도 출신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듣지만 “뭘 이런 걸 물어”라고 가볍게 넘기는 “사우스 ”냐 “노스”냐 의 양자택일 형 질문에 언니는 늘 불편한 시선을 야기하는 답변을 해야 했던 것이다.
언니와의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수많은 생각과 질문이 뒤엉켜 붙었다. 백인 주류사회에서 아시아 여성으로 사는 것도 매우 고통스러운데, 북한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하나 더 달리면 얼마나 힘들지 대충 가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싶었다. ‘지금과 비교해보니 동질감을 가진 사람들과 가시적인 차별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던 그때가 덜 피곤했더라’가 아닌 “그곳에서도 행복했다.” 라니. 자기 결정권과 인권에 특별한 애정을 가진 난 독재자의 나라에서 소시민이 행복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또한 그리워할 수 있으나 가고 싶다는 욕구는 또 다른 이야기라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제는 목숨을 걸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제한이 언니의 욕구를 더 자극하는 것이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고, 탈북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브로커의 손에 타의로 탈북을 한 게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언니의 말은 내가 당일에 소화할 수 있는 분량이 아니었지만, 평범한 일상 중에 문득문득 언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만 같은 순간들도 찾아왔다. 내 주위에는 고향을 잃은 친구들이 많았다. 독일은 지속해서 난민을 수용했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난민 친구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가족 중 유일하게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진 친구가 있는가 하면, 온 식구가 난민 자격으로 독일에 와 사는 친구들도 있었다. 처한 환경은 각양각색이었지만,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공통했다. ‘내전이 너무 끔찍했다.’, ‘트라우마로 이전과 같은 평범한 일상을 살기 힘들다’, ‘독일에 받아들여져서 너무나 다행이다’와 같이 뉴스에서 접할 수 있는 반응보다는, 놀랍게도 ‘나라가 안정된다면 돌아가고 싶다’라는 반응이 우세했다. 나 같으면 내전으로 삶이 파괴되며 생사를 오가는 환경을 조성한 조국에 대한 분노가 클 것 같은데, 대다수의 난민 친구들은 민족에 대한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을 쏟았다. 언니도, 시리아 친구들도, 모국을 잊기는커녕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져만 갔다.
헬조선, N포 세대라는 말이 대한민국의 MZ세대의 대화 주제가 되듯이 나 또한 한국의 교육이나 복지 같은 전반적인 시스템에 대해서 회의적인 태도를 취했다. 여유 없고 팍팍한 나라를 떠나고 싶어서 독일로 향했다. 그곳에서 맞이한 현실은 수많은 행정 처리 서류들로 나를 증명해야 하는 삶, 즉 이 땅에 머물러야 하는 정당한 이유가 없으면 내쫓기는 삶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말이 줄어들었다. 피부색과 겉모습으로 평가받는 것도 한국에서의 능력에 따른 차별보다는 평면적인 차별에 가까웠다. 길거리에서 의식불명인 것으로 보이는 마약중독자가 내게로 비틀대며 걸어올 때 나를 해치지는 않을까, 주위의 백인 사람들이 과연 나를 지켜줄까 하는 두려움도 생겼다. 타국에서 객관적으로 모국을 바라보게 되었다. 무엇이 힘들었고, 무엇을 누리고 있었는지. 한국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들과 말하지 않아도 상호 간 이해하며 공유하는 생활양식, 그 자체가 안정감을 주고 있다고 그땐 생각이나 했을까.
하루를 마치고 땅거미가 내려앉은 시간, 집안의 뜰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습관이 조국을 향한 내 애정과 그리움을 증명해준다. 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8시간 전 사랑하는 사람들이 봤던 모습 그대로 날아서 나에게 왔겠구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하는구나.’ 비행기만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지던 나날들도 있다. 향수의 감정을 알고 나서는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그저 표면적으로 이해했던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가 비로소 나의 시가 되었다. 너무 멀어 보이지 않는 나의 고향이지만, 이가 나의 삶에서 더 또렷해지는 그 순간 말이다. 지금 당장 달려갈 수 없어도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땅에서 숨을 쉬고 있고, 삶을 존속하고 있으며, 나의 모국이 지도상에서 존재한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어떤 이는 갈 수 있고, 어떤 이는 돌아갈 수 없으며, 어떤 이는 가면 죽을 수도 있는 그곳이기에. 결코 가볍게 받을 수 없는 값진 선물이라는 것에 그 그리움을 달래곤 한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향수」, 정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