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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우 Dec 24. 2020

익명이 이름에게 가하는 힘

온라인에서의 사람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한 남자를 봤다.

운동을 하는 직장인이라고 한다. 딸도 있더라.

그 남자는 한 게시글에서 댓글을 달았고 그 댓글엔 188개의 댓글이 달렸다.

내용은, 그 남자가 게시글의 사람을 보고 비난한 것이 시작이었다.

야구장에서 비빔밥을 비벼먹는 사람을 향해 비난한 것이었다.

그 정도가 매우 원색적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다시 그를 비난했다.

그렇게 그는 188개의 댓글이 달릴때까지 일당백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좋은 쪽으로의 일당백은 아니다.

 대단히도 지기 싫어하는 태도였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댓글은 인신공격이었다. 이게 온라인이지.

그의 댓글들을 보고 있자니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생각했겠다, 싶었다.

하나 하나 상대하다보니 마을 주민 모두를 상대해야하는 경우같았다. 너 참 딱하다.

온라인 상에선 처음 일을 벌일 때와 끝나갈 때가 다른 마음가짐인 경우가 종종 있다.

댓글을 달때도 별 생각 없었을 것이다. 그냥 좋지 않은 하루를 보냈거나, 심기가 불편했을 때 게시글을 봤던가, 아니면 진심으로 게시글의 사람이 맘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한 것일 수도.

별 생각 없었을 것이다. 별 생각 없었으니 무례하게 댓글을 달았겠지.

사람들이 맞는 말을 해대니 본인도 화가 날 것이다. 자신이 틀린걸 인정하기는 쉽지 않으니까.

그 사람이 궁금해서 타임라인에 들어가봤다. 열심히 보험 판매를 하는 사람이었다. 세일즈맨.

그 사람의 글중 하나가 이러했다. 남들을 돕는 것엔 묘한 기쁨이 있다고.

참. 세상이 이렇게 복잡하다. 사람이 이렇게 복잡하다. 밤에 아무개들과 저급한 말싸움을 벌이다가도

낮이 되면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참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익명으로 존재하는 온라인에서의 우리는 평상시의 우리와 다소 다른 모습을 취한다. 이상하리만치 우리의 의지와는 별개의 문제인 듯 느껴진다. 그 이유에는 생각보다 구체적인 요소들이 존재한다. 그 부분을 살펴보기 위해선 SNS와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 인간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초산수로 접근해보자. 인간의 뇌는 지난 약 3백만년간의 진화를 거쳐오면서 오늘 날의 뇌의 구색을 갖추었다. 컴퓨터는 1960년대부터 약 60년동안 매년 약 1조배의 연산 능력의 발전을 이루어 왔다. 그 어떤 기술도 이렇게 기하급수적인 발전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반면 인간의 뇌는 변한게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컴퓨터가 본인의 연산 능력으로 지금 이 화면을 보는 사람들의 관심을 놓치지 않겠다고 작정한다면? 이길 수가 없는 게임이다. 그 방식이 어떤 것이던 상관없다.  당신이 어느 게시물을 얼마나 오래 보았느냐를 따져 당신의 관심을 살 만한 다른 게시물을 끊임없이 쏟아낸다. 심지어 당신을 언짢게 할 코멘트를 띄워 당신이 대댓글을 달도록 유도할 힘마저 지니고 있다. 컴퓨터와 대기업들이 사람들 본인도 모르는 취향을 귀신같이 찾아내어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것은 더이상 공상과학의 이야기가 아니다. 위협은 인간 말살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가 미래에서 날아와 관자놀이에 총을 겨누듯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위협은 대개 천천히, 우리도 모르게, 서서히 생겨난다.



인간은 온라인에서의 천문학적인 의견을 모두 수용해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잘못된 가치관을 보고 있노라면 분쟁과 분열은 필연적이다. 인간의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해 내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할 말 못 할말 따위는 논외가 되어버린다. '지금 현재 내가 불쾌한 하루를 보내서 아니꼬운 주장을 하는 당신의 의견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싶다'가 자연스러운 행위인것이 온라인상의 통념이 되어버렸다. 환장할 노릇이다. 그만큼 SNS는 이다지도 깊게 인간의 본능을 침투한다. 지구 반대편을 보자. 코로나19는 가짜뉴스가 돼버렸고 러시아는 SNS를 정치적 선동 매체로 사용했다. 심지어 그 의도가 먹혀들였다! 2020년의 이야기다. 현재 온라인의 형태는 누구나 정보 제공자가 될 수 있다. 또한 그 정보의 신뢰성이 얼마나 낮고 높은지 간에, 그 주제가 얼마나 자극적이고 충격적인지를 중심으로 담론이 생겨난다. 그 담론은 필히 피해자를 남긴다. 자격미달의 유소년이 공영 방송 뉴스 앵커를 맡는 격이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이것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컴퓨터는, 온라인은, 사실 연대와 화합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스티브 잡스 말마따나 컴퓨터는 '두뇌의 자전거'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20년 전이었으면 이루어내지 못할 일들을 이젠 손바닥안에 스크린으로 이루어낼 수 있다. 좋아요를 통해서 일면식도 없는 암투병 환자에게 하루를 버틸 힘을 보낼 수 있다. 창작자가 되는데 필요한 것은 오직 창의력이라는 멋진 개념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이게 마법이 아니면 무엇일까. 여기까지 다다르면 요점은 이것이다. SNS건 컴퓨터건 그것이 어떻게 사회에 작용하고 인간의 보탬이 될지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에게. 의도는 충분히 사용자가 만들어 낼 수 있다. 추천 검색에 휘둘려서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을 온라인에 정신 팔리지 않고, 필요한 정보만을 찾고 일목요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 타인에게 힘을 줄 수 있다. 사랑을 퍼뜨릴 수 있다. 우리가 그렇게 쓰기로 마음 먹기만 한다면.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 부족하고 애처로운 존재임을 인정하고 서로를 배려한다면 우린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쉬운 것이다. 나부터 시작하겠다. 여러분도 여러분부터 시작하시길 바란다. 상사에게 구박받고 기대한 만큼 시험성적이 좋지 못했다고 하여 얼굴을 가리고 IP뒤에 숨어 불특정다수의 하루마저 망치는 옹졸한 존재가 되지 말자.  우리는 그보다 더 나은 존재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좀 더 SNS의 기능에 대해 면밀히 알아보고 싶다면 '소셜 딜레마'라는 수작 다큐멘터리가 있다. 한번 씩 시청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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