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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우 Mar 03. 2021

여성중심의 괴수 생존극 두 편과 그 둘의 공통점

언더워터(2016), 크롤(2019)

The Shallows(국내 제목은 '언더 워터') 2016년작

재기발랄한 B 장르의 영화들엔 공통점이 있다.  단위의 비용이 드는 할리우드 A 영화들과 달리 비교적 소규모의 제작비가 들어가지만 대중성을 중심으로 고려하는 메이저 영화들과 달리 아이디어와 창의성으로 무장된 번뜩이는 색깔을 갖추고 있는 영화들이 등장한다. 후술할 영화 언더워터(2016), 크롤(2019) 같은 영화들이 그것이다.


B급 영화는 과거 끼워팔기, 동시 상영이라는 마케팅의 일환으로 생긴 용어이지만 현대에 와선 제작비를 기준으로 붙는 수식어로 이해할 수 있다. 과거 B급 영화에서 주로 다루는 장르는 공상과학, 범죄 스릴러, 공포 영화들이 주류였다.


영화의 만듦새가 주류 영화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인식도 있지만 그에 반해 본인의 색깔을 확실히 가진 톡톡 튀는 영화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돈이 없으면 창의성이 월등히 발현되는 경우가 있으니까. 현대에 들어서 소규모 제작비로 만들어진 영화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장르가 있는데, 괴수물이 그것이다.언더 워터와크롤은 사실 괴수물이라기 보단 괴수들이 등장하는 생존극에 가까울 것이다.



(이 글에는 두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잠시 언더 워터의 연출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언더워터는 상공의 비행기를 배경으로 하면서 밀실 추리극의 형태를 띈 액션 영화 논스톱(2014)을 연출한 자움 콜렛 세라가 감독을 맡았다. 논스톱과 언더워터의 연출 방식엔 공통점이 있는데, 전자기기를 이용해 서스펜스를 이루어 내는 것이다. 논스톱에선 범인과의 문자 메시지, 언더워터에선 손목 시계와 고프로 카메라를 예로 들수 있다.

논스톱의 한 장면

자움 콜렛 세라가 문자 메시지와 전자기기를 연출하는 방식이 흥미로운데, 넷플릭스 시리즈 '하우스 오브 카드', BBC '셜록'과 같이 문자 메시지의 내용을 화면에 띄우면서, 배우들의 연기와 함께 메시지의 내용을 함께 목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스릴러는 자움 콜렛 세라의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특이한 진행 방식이다.


언더 워터의 주인공은 상어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전을 세운다

타이머와 고프로를 통해 단순하고 뻔한 서스펜스일지라도 몰입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주인공이 고프로에 녹화된 기록을 보면서 상어를 분석하고, 주인공이 헤엄치는 시간과 상어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 계산하는 과정을 타이머와 함께 화면에 띄우면서 주인공의 작전을 현실적으로 선보인다. 편집으로 인물의 방해 요소를 상쇄시키기 보다는 타이머와 같이 좀 더 현실적인 요소를 통해 영화적인 허용보다 조금 더 현장감 있는 방식으로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사실 저 덩치의 백상아리와 해변가에서 사투를 벌이는 것 자체가 가장 영화적인 요소이긴 하지만.  언더 워터에서 등장하는 백상아리는 죠스 이후로 가장 매력적인 백상아리로 평가 받는다.



영화 크롤에는 상어대신 거대한 악어들이 등장한다


영화 크롤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2019년 최고의 영화 1순위를 차지하는 영예(?)를 거머쥐었다. 워낙 독특한 취향의 타란티노이긴 하지만 이 순위는 분명 크롤이 좋은 영화라는 것을 뜻하기도 할것이다. 영화 크롤은 허리케인이 닥쳐 물이 차올라 악어들이 출몰하는 동네를 배경으로 한다. 이런 영화에서 항상 등장하는 클리셰라면 항상 주인공은 공격을 받더라도 적당히 다치고, 이름도 없는 배역들은 순식간에 사지가 뜯겨나간다는 것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영화는 영화니까. 이런 영화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보는 나름의 맛이 있으니, 말도 안된다며 고개를 젓기보단 인물들에게 닥친 상황과 헤쳐나가는 심정을 중점적으로 두고 감상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것이다.



크롤의 한 장면

크롤또한 언더 워터와 같이 여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이면서, 본인에게 닥친 가장 큰 시련을 해결하는 중요 요소이다. 왜 언더 워터와 크롤에선 주인공을 여성으로 내세웠을까? 구시대적인 질문으로 볼 수 있지만 사실, 여리여리한 여성과 괴수의 조합은 항상 존재해왔다. 사나운 야생의 괴수와 여성, 둘 사이의 괴리에서 그려지는 이미지는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그 기원은 아마 킹콩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언더 워터와 크롤 두 영화엔 어떤 공통점이 있고 그것들이 결국 어떻게 좋은 영화가 되게끔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두 영화 모두 공교롭게도 수중에서 활약하는 괴수들이 등장한다. 인간은 반대로 수중에서 확실히 불리해지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보아도 두 영화는 닮은 점이 많다. 괴수보다 빨리 헤엄을 쳐야 한다던가 물이 차오른다던가. 농담이지만 두 영화 모두 신호탄이 등장하고, 흥겨운 노래가 엔딩곡이고,두 주인공이 매우 예쁘다...여름용 킬링타임 영화임이 확실하다.)







언더 워터의 한 장면

앞서 말했듯, 두 영화는 비교적 저예산으로 제작됐다. 등장인물 수도 많지 않고 메이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시각효과들이 그렇게 등장하는 편도 아니다. 그러므로 저예산 영화가 살아남기 위해선 그들만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 이 두 영화에선 어떤 방식으로 괴수물에 접근했는가?


첫 번째론, 두 주인공의 직업을 활용한 것에 있다. 언더 워터의 낸시는 의대생이다. 위 사진에서 볼 수있듯 낸시는 부상을 당해 암초 위에 표류당한다. 뻔한 상황이긴하지만 영화에서 낸시는 자신이 어떤 부상을 당했고 이것이 낸시의 선택사항을 축소시키고 그에 따른 작전을 갖추게끔 한다. 아무런 설명 없이 영화가 이루어 졌더라면 흔하디 흔한 영화적 허용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관객은 주인공의 상황 판단에 따라 몰입을 하게 된다. 주인공이 '이 방법밖엔 없어'라는 대사로 넘어가는 것과 본인의 지식으로 상황을 면밀하게 판단해 행하는 것엔 몰입의 정도를 결정짓는 중요 요소가 된다. 그래서 극중 낸시의 선택이 더욱이 치열하고 비장한 선택이라는 것을 관객들 또한 함께 겪게 된다.


크롤의 헤일리는 수영 선수이다. 물이 차오른 마을에 악어들이 등장하고 그곳에 갇힌 수영선수라니. 벌써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크롤은 언더 워터만큼 현실적인 요소에 기대지 않지만 분명 극중에 빠질 수 없는 요소로 작동한다. 세세하게 말하면 너무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말을 아끼겠지만 헤일리 또한 수영선수의 기질을 살려 활약하는 사건들이 등장한다. 정리하자면 두 영화에서 주인공의 직업을 언급하고 영화에 직접적인 요소로 작용시키면서 캐릭터들은 생명력을 얻는다. 보다 입체적이고 구체적으로 괴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활로를 찾아간다. 이와 같은 선택으로 인물들에게 이입할 수 있는 여지또한 커지게 된다.



헤일리와 그의 아버지

두 번째론 환경을 다루는 방식이다. 우리가 영화를 보면서 생동감이 있다고 느끼는 기준엔 분명 환경, 배경과 인물들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방식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언더 워터에선 만조와 간조를 가장 중요한 환경으로 다룬다. 낸시가 암석 위에서 몇날 며칠이고 어떻게 버텨내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발견되어 구조된다면 별 스릴이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영화에 만조와 간조를 등장시킨다. 만조는 하루 중 해수면이 가장 높을 때, 간조는 하루 중 해수면이 가장 낮아졌을 때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이로 인해 낸시는 만조로 인해서 암석이 물에 잠기기 전에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이 외에도 해파리, 갈매기, 부표와 같은 것들을 등장시키며 이야기에 깊이를 더한다.


크롤에선 태풍이 가장 중요한 환경이다. 애초에 악어를 마을로 끌어들인 주원인이다. 위 사진에 헤일리와 그녀의 아버지는 지하실에서 마주한다. 지하실이라는 공간에서 머리싸움을 벌이며 헤일리는 악어들에게서 벗어나려 애쓰지만 곧 뒤이어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물이 차오르면 악어들의 행동 방식엔 큰 영향을 미친다. 지상의 악어보다 훨씬 수월하고 빠르게 접근하기 때문이다. 너무 당연한 사항이다. 하지만 크롤에선 모든 환경, 요소 하나하나가 인물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고, 이야기를 예상치 못한 곳으로 전개하도록 유도한다. 이미 언급했듯, 저예산 영화에서 장소와 환경은 아이디어와 창의성을 발휘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캔버스이다. 크롤에선 지하실, 집, 길거리, 비, 태풍의 눈, 댐 등을 이야기 전개의 도구로 사용하면서 한정된 상황에서도 예측하기 힘든 곳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크롤의 한 장면

마지막으론 낸시와 헤일리의 과거와 그것을 다루는 것에 있다. 사실 어찌보면 지금까지 언급한 요소들은 괴수물, 생존극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 두 영화의 접점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두 인물의 과거와 괴수들로부터의 해방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있다.


크롤에서 헤일리는 항상 1등을 강요하던 이혼한 아버지를 찾기 위해 태풍을 뚫고 아버지의 집으로 향한다. 낸시는 계속해서 의대를 다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헤일리 또한 수영선수로서 항상 1등을 사수하기 위해 본인을 몰아 세우는 아버지에게 감정이 생기고 관계가 소원해졌다. 어릴 적 아버지의 집착으로 인해 헤일리 본인도 습관이 그렇게 들어버렸기에,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아버지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 살아가는 전부인과 달리 과거 가족이 함께 살던 집을 팔지 못하고 여전히 그곳에 지내고 있었다. 헤일리는 그런 아버지가 실망스러웠다. 헤일리의 아버지는 고백한다. '수영에 열심인 너를 최고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엄마와 소원해졌다. 이 집은 우리 가족이 함께 했던 마지막 공간이다. 그래서 팔지 못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댐이 무너지고 물이 집안에 차오르고 악어들이 집안을 휘젓는다.


언더 워터의 낸시는 어머니를 잃고, 생전 어머니가 찾았던 해변으로 찾아가 변을 당한다.  낸시 또한 끝끝내 본인의 힘으로 백상아리를 물리치고 해변으로 떠밀려와 죽음의 경계에서 돌아오고 목격하는 것은 죽은 엄마의 환영이다. 폐에 가득찬 물을 뱉어내며 낸시가 엄마에게 말한다. '저 괜찮아요.'


이 상황에서 낸시와 헤일리가 괴수들을 물리치는 것엔 단순히 살아남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낸시와 헤일리는 모두 사랑하는 존재로부터의 부재로 인해서 트라우마가 있었고 자신의 삶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낸시와 헤일리는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부던히도 헤엄친다. 그 이유를 과연 무엇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낸시가 엄마에게 괜찮다고 한 이유. 헤일리가 아버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이유. 낸시는 백상아리로부터 큰 흉터를 얻었다. 헤일리는 아버지를 지켜냈지만, 아버지는 팔 한쪽을 잃었다. 그럼에도 낸시와 헤일리 그리고 헤일리의 아버지는 살아나갈 것이다. 몸에 새겨진 삶의 상처를 지닌 채로.



크롤의 마지막 장면

이 글에서 나온 내용들이 이 두 영화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특징은 아니다. 어찌보면 뻔하다고 할 수 있다.가족애가 꼭 등장하는 장르임에도 이 두 영화는 낸시와 헤일리, 이들의 고군분투에 초점을 두었기에 더 기억에 남는다. 또한 두 영화 모두 각각의 개성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언더 워터와 크롤 두 영화는 낸시와 헤일리가 다시금 삶의 이유를 찾아내고 갈등을 털어내고, 끝내 놓지 못했던 과거를 놓아 보내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살다보면 헤쳐나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괴수들을 마주한다. 아마 줄어들긴 커녕, 나이를 먹어갈 수록 더욱 즐비해지지 않을까. 그럼에도 끝까지 헤엄치고 지켜내야 하는 이유는 분명히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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