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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우 May 01. 2021

각자의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영화 프라이빗 라이프(2018)

어떻게 돼가? 잘 안됐어. 현대인들의 삶은 얼마나 취약한가. 사적인 이야기들은 어떻게 숫자로 치환되는가. 타마라 젠킨슨의 탁월한 각본과 감각적인 촬영 그리고 배우들의 호연으로 이루어진 프라이빗 라이프는 처연하면서 우스꽝스러운 우리의 사적인 삶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영화는 아이를 갖기 위해 분투하는 부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 리뷰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이미 가족에 관계에 대한 영화는 많이 등장했고 시대의 격변에 따라 그 형태도 변모해왔다. 이를테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들을 보자. 또 그의 전신이 되는 오즈 야스지로도 있을 것이다. 이 두 감독은 가족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고 그 정수는 바뀐 것이 없을지 몰라도 둘의 차이점엔 시대의 흐름이 있다. 프라이빗 라이프를 보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가 떠오른 이유는 분명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가족의 개념에 있을 것이다. 프라이빗 라이프의 주인공 리처드와 레이첼은 아이를 갖기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다. 유괴를 제외하고 갖은 노력을 다한 끝엔 항상 실패가 있었다. 그들이 아이를 갖고자 하는 과정에서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전이기적과 같은 결과를 보장하며 팜플렛에 적혀있다. 수많은 사람들은 그 팜플렛을 들고선 로비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좋은 난자 하나면 되는데 이토록 힘든 일인가. 레이첼과 리처드는 체외 수정에 실패하고 특정한 이유로 대리모도, 입양도 실패하게 된다. 그래서 남은 선택지로 다른 여자의 난자와 리처드의 정자를 수정시킨 뒤 레이첼에게 이식하는 방법을 권유 받는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현대인들의 자화성은 얼마나 처연한가. 가능성과 희망이 숫자와 퍼센테이지, 차가운 쇠막대기로 판가름 나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가. 현대의학의 발전은 그만큼 선명하게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방도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자긍심에 관해 치열한 블랙 코미디를 그리던 이 부부는 조카 세이디가 집에 찾아오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선댄스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영화에서 세대간의 격차에 대한 이야기도 주를 차지한다. 부부의 조카 세이디는 난자를 기증해 달라는 정신나간 부탁에도 흔쾌히 수락할 줄 아는 개방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그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영광이라고.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영화는 어느 쪽에도 편향되지 않는다. 영화엔 그저 도움을 바라고, 도움을 주는 그 사람들의 사적인 과정을 찬찬히 따라간다.



영화의 촬영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촬영감독 크리스토스 부드리스는 2004년도에 비포선셋의 촬영감독이기도 했다. 과하지 않은 핸드헬드로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고 음악과 편집을 동기화 시키면서 경쾌한 리듬을 잃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초점이다. 뒤의 배경과 사람들을 날리고 이야기를 주동하는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고 클로즈업을 하면서 그들의 상황을 감정적으로 더욱 증폭시킨다. 슬픈 감정은 더욱 슬프게, 우스꽝스러운 장면은 더욱 우스꽝스럽게, 사적인 영역은 더욱 사적으로 보이게 말이다.



영화를 감상할때 레이첼과 리처드가 함께 나오는 장면을 집중한다면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부부가 함께 카메라에 잡히더라도 한명은 초점이 나가 있거나, 등을 보이고 있거나,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들이 있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한명은 흐릿한 배우자에게 걱정거리를 얘기하고, 서로 등을 보이며 대화하고, 집의 끝과 끝에서 화면 밖의 배우자에게 언성을 높인다. 이러한 과정뒤에 찾아오는 마지막 장면을 본다면 이 영화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사적인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영화의 제목도 있겠지만, 결국 현대를 살아가는 작고 약하기만한 인간들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부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자리를 뜨고도 카메라는 로비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많은 부부를 바라본다. 모두가 각자의 연유로 인해서 같은 자리에 앉아 희망을 찾는다. 본인의 간절함의 가능성이 65%가 되던 4%가 되던 그들은 삶의 의미를 찾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본질은 뜻하던 결과를 보기 위한 과정이 아닌, 어디로 향할지 모름에도 불구하고 함께 걸어가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실패에도 또 다시 도전하는 것? 진심으로 무언가를 바라는 것? 딸을 위해 과잉보호하려는 엄마가 잘못 되었는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난자를 기증하겠다는 다짐이 잘못되었는가? 아니 어쩌면, 잘못된 건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종종 상황 밖에서 관찰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의견에 휘둘리곤 한다. 화면을 통해 관객들에게 본인들의 사적인 관계를 내보이는 이 부부는 적어도, 관객의 우려와 냉대를 대면하더라도, 걸어가기를 멈추지 않을 것을 난 마지막 장면을 보며 깨달았다. 세이디가 창 밖으로 부부를 보며 말하는 것 같다. 잘 하고 있다. 잘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절대적으로 현대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를 담은 프라이빗 라이프는 그만큼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로 보인다. 또 한번 새로운 형식의 훌륭한 가족영화를 보았다. 시대의 변모에 따라 가족의 형태도 바뀌어 갈까? 이 영화는 그렇다고 이야기한다. 잘못된 것이 아니다. 어쩌면 잘못된 것은 애초에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다 자기 삶을 살아간다. 다 사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러니 서로에게 초점을 맞추고 나란히 앉자. 또 다시 실패가 찾아와도, 우리의 절실함이 오류가 되더라도 함께 마주하자고 말 하는 것 같다.




ps. 이 영화에서 존 캐럴 린치는 왠지 모르게 파고에서의 그가 생각난다. 프라이빗 라이프는 현재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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