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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민중 May 15. 2022

엣헴, 제가 바로 브런치 작가입니다만

합격된 거 안지 이틀 째니 좀만 즐길게요


브런치 어플을 다.  낯설었다. 메뉴란에 '작가 신청' 사라졌다.  이제 작가신청을 못하는 건가?  여러개 와있고.


'가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당황스러움. 서야, 무야아아아아호!!!


처음이었다.


누군가에게 작가로 인정받은 게!



학생의 좌절


초등학생 시절 글쓰기가 재밌었다. 신나쓰다 보면 글이 항상 길어졌다. 글이 길어서 그런가 매번 상을 다. 글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줄 알았다. 


교복치마를 짧게 수선해입는 학생이 됐다. 전히 즐겁게 공들여 썼다. 글을 읽어본 이들 한결같은 목소리로 칭찬해 줬다. '열심히 네. 수고했다!' 


국어시간. 선생님 반 애들이 낸 독후감 중 하나를 소리 내 읽어다. 처음엔 딴짓하친구들이 하나둘 귀 기울. 나도 어느 순간 완전히 몰입해 버렸다. 마지막 문장까지 끝마쳤. 다들 '오~' 하며 감탄을 터뜨렸다. 난 린 눈으로 교과서만 괜히 뒤적거렸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고 저런 표현을 하지?'라며 입을 삐죽였다. 질투, 고통이었다.


에겐 빛나는 무언가가 있고,

내겐 없었다.


절했다. 이렇게 글 쓰는 게 재밌는데 정작 인정은 받지 못하다니. 내 화분엔 재능이란 씨앗이 없는 걸까? 결국 다 유전인 걸까? 자기혐오 탈출구가 이지 않았다.



재능이란 씨앗을 찾아서


벌떡 일어나 해결방법을 찾아 나섰다. 재능 까짓 거 만들면 되잖아? 남의 씨앗 복제하면 그만이. 바로 행동으로 돌입했다. 


본 씨앗은 초명품이어야 했다. 세계적으로 이름 떨친 톨스토이, 도스토스키, 빅토르 위고, 카뮈... 렵고 길었다. 퍽하면 졸았다. 누워서 들고  책이 얼굴로 사정없이 떨어졌다. 아픈 코를 부여잡으면서도(빅토르 위고는 별 의미 없는 풍경에 대한 묘사 왜 무려 10쪽이나 허비하는 걸까?) 그들을  힘껏 붙잡았다.


읽은 책이 늘어났다. 비례하게 글쓰기가 려워졌다. 좋은 글의 기준 쭉쭉 높아져갔다. 하늘처럼. 막막. 잭의 콩나물이 필요해졌다. 하지만 내게 그런 건 없었다.


 와중에 쓰기 수업에서 강사님에게 들은 말.


작가님은 그렇게 열심히 쓰는데도 어떻게 이렇게밖에 못 쓰나?


퇴사짤로 돌아다니는 애니메이션 <이누야사>의 한 장면

끝. 


디어 포기가 됐다. 손에서 힘이 풀렸다. 자유. 허망.


작가라는 안대를 풀었다. 자기혐오라는 캄캄했던 세상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없이 신비로운 우주가 눈앞에 펼쳐졌다. 세상은 생각보다 재밌는 게 넘쳐났다.



할배 저랑 놀아주세요


대학생활 내내 만 파느라 학점이 바닥이었다.


작가가 되길 포기한 자유인 눈을 부릅떴다.  길을 찾아야 했다. 공무원 준비를 택했다. 톨스토이 영향 탓인지 작가 다음으로 하고프던 일이 남을 돕는 일이다. 


1,2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공무원 시험 합격 못하면 죽음뿐'을 외치며 고시식당에서 급식을 먹고. 국 공무원이 돼서는 공문을 제대로 써보겠다며 야근을 불태도 하고. 대학동기 집에 여럿이 모여 이 술 저 술 부어가며 밤새 울고 웃고...


세상엔 책 말고도 재밌고 멋있는 게 한가득이었다. 대작가들의 위엄이 점점 잊혔다.


가끔 이런 말 입에서 튀어나왔다.


"톨스토이 진짜 맛깔나게 쓰네."


"카뮈 오빠는 영원한 오빠지. 뇌섹남."


고전을 성경마냥 조심히 다루던 린 신자 드디어 했다. 들의 책을  읽다 지루하면 덮버렸다. 흥미진진한 부분만 골라 읽었다. 예전엔 꿈도 꾸지 못할 짓. 감히 그들을 지루한 면이 있다고 인정(?)하다니!


을에서 이 된 나.  글쓰기도 다시 재밌어졌다.



생사 새옹지마


소한 에피소드를 브런치에 올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단한 글을 쓸 생각이 없으니 맘이 가벼웠다. 작가 신청을 다. 단순한 회원가입 승인 같은 건 줄 알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기다렸다. 미끄러져 떨어졌다.


예고도 없이 잭을 날려? 포기하기엔 글 너무 올리고 싶. 브런치 말고는 플랫폼이 마땅찮았다. 작가 신청 합격하는 법을 검색했다. 합격 비결 중 하나가 남과 구별되는 나의 개성을 어필하는 것이란다. 사적인 비밀들을 다 꺼내놓고 다시 신청했다. 큰 기대는 안 했다. 또 떨어지면 포기해야지. 웬걸 붙어버렸?


당황스러움. 의심. 기쁨. 각기 다른 감정들이 연이어 폭발했다. 작가에 마음 다 뜬 것처럼 굴더니. 엄청 들뜨는 내 모습이 웃겼다.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해 '작가님'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절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날들. 그리고 작가 합격. 어쩌면 나 글을 꽤 잘 쓰는 걸지도...?(자아도취 심한 편)


내 글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처음으로 생겼다. 아이러니하기도 작가를 놔버리고 나서 작가가 됐다. 인생사 새옹지마.



엣헴, 작가님 납시오!


 '난 작가님이니까 순댓국을 시킬게.' '작가화장실 좀 다녀올게.'며 친구들에게 한껏 오만하게 뻐기는 중이다. '작가님 잘 일어나셨어요? 해가 중천이에요.'라고 친구가 맞장구도 쳐다. 작가 타이틀을 맘껏 즐기고 있다.


면에 글을 올려야 한단 의무감슬슬 몰려왔다. 지만 작가신청을 할 때 드러냈던 내 사적인 비밀들을 여기 까놓자니 망설여진다.


그래서... 브런치에겐 미안하지만 작가신청할 때 쓰겠다고 한 소재와는 무관한 글을 써서 올린다. 작가 타이틀만은 잘 쓸게요.


 엣헴, 제가 바로 브런치 작가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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