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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chterin 여자시인 Aug 06. 2022

과거와 헤어질 결심

모든 것은 결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일지도


나는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는 편이다.

과거가 애틋하지 않고 아쉬움 한 점 남지 않은 사람이야 어디 있겠냐 마는 내 시간은 대체로 과거보다 현재가 나아지는 방향으로 흘렀기에 과거는 돌아보지 않으려 한다. 과거는 돌아보려고 작정하면 한없이 미로처럼 빨려 들어가게 되는 마성을 가졌다. 그래서 더욱더 의식적으로 과거는 추억할 것은 추억하고 성찰할 것은 성찰하되 애써 시간을 할애해서 돌아보려고는 하지 않았다. 사실은 두려웠다. 돌아보고 있자니 다시 겨우 빠져나온 시간의 터널 속으로 툭 던져져서 속수무책 타임머신을 타고 그 당시로 돌아가서 다시는 헤어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심지어 공포감마저 느꼈다. 종종 생각한다. 나는 과거를 그토록 증오했던 걸까. 과거가 수치스러워서 억압하고 외면하고 있는 걸까. 나는 과거를 부인하고 삭제시키려고 발버둥 치는 방식으로, 아니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를 동력 삼아 시간의 물결을 발차기해가며 오늘에까지 이르렀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과거의 많은 시간들을 함께 공유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종종 나에게 연락을 해 온다. 나를 잊지 않고 나와의 인연을 자발적으로 이어가겠다고 해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말해서 이 사람에게서 언제부터인가 다음과 같은 복잡한 감정들을 갖게 되었다. 애처로움, 먹먹함, 알싸함, 안타까움, 미안함, 그리고... 부담스러움. 혼란스러웠다. 왜일까. 반드시 그 왜에 대한 답을 찾아내어야만 내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동안 골몰히 생각해봤는데 그 결과 나는 다음과 같은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너는 과거에 묶여있구나.



여기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조금 더 솔직해져 보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무슨 과거에 묶여있다는 말인가?



너는 내가 오래전에 힘겹게 겨우 벗어 나온 바로 그 과거를 계속 들춰내는구나,
나는 그 시절이 싫었는데 너의 그 시절은 그리움의 대상이구나.
               

그래, 이게 정확한 답이다. 

서로가 공유하는 그 시절에 대한 의미와 감정이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내가 그 시절을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 했던 이유와 그 사람이 그 시절을 지금보다 더 좋았다고 기억하는 이유는 어쩌면 서로 닮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더 불편했던 것이다. 두 사람 다 그 시절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확인받는 것 같았다. 벗어나고 싶다는 것은 아직 그 시절이 자신의 삶의 일부분으로 매끄럽게 봉합되지 못한 채 치료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 그 시절이 지금보다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은 현재가 우울하여 과거를 미화하는 전략을 취하며 과거였다면 시간을 되감기 해서 여러 가지 가능성들이 펼쳐지기 전으로 돌리고 싶다는 마음. 그 두 마음은 모두 다 어딘가에 묶여있다. 그 두 마음은 모두 다 좌절된 욕구로 인하여 묶여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친구가 되었던 것일까? 우리가 한 처음에 서로를 알아보고 친밀함을 느끼고 그 긴 시간 동안 서로의 의지처가 되어주기도 조력자가 되어주기도 했었던 걸까? 가장 근원적인 부분이 닮은 사람들끼리는 다른 그 누구보다도 더 확실하게 깊게 친해지는 것 같다. 처음에는 서로의 닮음으로 인하여, 다른 누구에게도 못할 말들도 거리낌 없이 나눌 수 있고, 따로 구태여 설명하고 입증하려 하지 않아도 되고 '아' 하면 '하' 하고 서로 '아하' 이렇게 공명할 수 있고 초반부터 내 생각을 일일이 설득해야 하는 그런 수고로움을 건너뛰는 편리함을 누렸다. 그것을 특권처럼 뭉터기로 가져다 썼다. 그러느라 그때는 그게 마냥 좋아서 몰랐던 것이 점점 시간이 지나고 각자가 인생에서 내려가는 크고 작은 선택들을 지켜보며 유사함이 주는 반가움과 내편이 있고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든든함보다는 안타까움, 애처로움, 우울함, 좌절감 같은 것들이 이끼처럼 돋아나기 시작했다.




우리의 빛에 해당하는 밝은 면들 뿐 아니라 그 면들 바로 뒤통수에 턱 하고 달려있는 그림자도 닮았고 약점도 단점도 닮아있었다. 특히나 어린 시절을 지나 학생 시절도 지나오면서 성인이 되어 주체적으로 인생을 살아나가는데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는 장애들의 결이 닮았다. 그 장애들을 장애라고 인식하기 전까지는 별로 크게 의식하지 못했는데 일단 그것이 문제를 유발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우리가 이런 점들까지 닮았다는 것도 의식하게 되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그 문제를 의식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이제는 비로소 그 문제점들로부터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힘들고 어렵겠지만 방법을 모색하고 싶어지고 그렇게 고정적으로 머물러있던 의식 수준이 위기를 느끼고 변화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자 파장이 달라졌다. 그러면서 그 닮은 부분들이, 그 사람이라는 거울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을 목격했다. 


소녀시절, 부모님 슬하에서 케어 받으며 살던 시절, 대학교 다니던 시절, 갓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 시절, 20대 시절, 그리고 30대에 접어들어서도 30대 아직 초반기였던 시절. 그렇게 그나마 사람이 일생에서 보여온 여러 가지 미숙한 점들이 너그럽게 통용될 수 있던 시기가 지나갔다. 서른 중반으로 접어드는 지금이야말로 삶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미숙했고 연약했고 의존적이었던 자아와 결별할 기회. 이 기회를 그냥 넘겨버리고 계속해서 옛날의 패턴을 고수하면 이제 우리는 30대 후반, 40대, 50대 이렇게 점점 더 나이를 먹어 갈 것이고 더는 나이가 어려서, 경험이 일천해서, 아직 미성숙해서 그렇다는 변명조차 일절 통하지 않고 엄정한 삶의 시련을 형벌처럼 치러야 할 것이다. 


진정한 성장은 과거를 넘어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과거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묶여있는 상태로는 과거를 넘어서기는커녕 과거에 붙잡혀 매인 발목으로 한 걸음 제대로 떼어 내딛기도 힘들게 된다. 하여, 과거와 제대로 결별하여 헤어지고 과거를 과거로 두고 거기에 한점 거리낄 것 없이 가뿐하게 오늘을 살아내고 오늘이 모여 펼쳐질 미래를 맞이하는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 헤어질 결심을 세우고, 그 결심을 이행하고 그리고 뚜벅뚜벅 앞을 보고 나아갈 용기를 내야 한다. 이제는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이 말을 안 듣는다는 식의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눈 질끈 감고 정 안되면 허벅다리라도 꼬집어가면서 길을 나서야 한다.


넘어설 수 있게 되면 치유된다. 상처를 가리고 상처받은 사실을 부끄러워하면 상처는 절대로 낫지 않을 것이다. 환부를 활짝 드러내어 통풍이 잘 되게 해 주고 세척을 해주고 소독약을 발라주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떼어낼 부분을 떼어내고 도려낼 부분은 도려내고 잘라내고 다시 깨끗한 붕대를 둘러주고 그렇게 집중적으로 돌봐주어야 한다. 드레싱을 여러 번 거치고 난 뒤 그제야 비로소 상처에는 새살이 돋아 있을 것이다. 상처가 나기 전처럼 완전하게 매끄럽게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그렇게 해야 그 부위에 더 튼튼한 조직이 생기면서 더 이상 아프지 않을 수 있다. 


자존심이 다치는 것을 자꾸만 거부하기 위해 더욱더 음지로 숨어 들어가면서 살았던 것 같다. 과거에 나를 당혹스럽고 불안하게 했던 것들, 나를 화나게 했던 것들, 그 상황 속에서 속수무책 아무 힘 없이 울고 있던 바보 천치 같던 나에 대한 기억을 은폐하려고 하지 말고 드러내고 거기에 소독을 해야 한다. 엄청 따가울 것이다. 냄새도 엄청 고약할 것이다. 진물도 엉겨 붙어 난리가 났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소염진통제도 먹어주면서 끝끝내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거기에 새살이 돋아나는 것을 경험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결심을 하기만 하면 뒷일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심은 시간문제다. 늦게 하면 할수록 처리는 늦어진다. 아직 그 사람은 결심을 내릴 때가 오지는 않은 것 같다. 때가 아직 오지 않은 사람에게 괜히 섣불리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라고 하는 것은 상처를 더 덧나게 할 뿐, 아무도 도울 수 없다. 나도 오랫동안 방황했다가 이제야 겨우 정말로 결심을 내리겠다는, 말하자면, 결심을 위한 결심을 내리고자 한다. 여기까지 온다고 너무나 먼길을 돌아왔다. 가장 패기 충만했던 20대 전부를 홀라당 태워먹은 기분이다. 서른을 넘기고도 몇 해를 더 허비했다. 이제 더는 아니 된다. 


타인에게 뭐라고 하기 전에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됨을 깨닫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해본다. 내가 연약하던 시절 나와 공명하여 나의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사람에게서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나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내게 변화의 때가 찾아왔다는 신호이며 어쩌면 이것이 인생이 주는 마지막 변화의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경종이기도 하다. 하여, 내가 먼저 변하는 것이다. 과거에서 몸만 기를 쓰고 도망쳐왔지만 여전히 묶여있는 마음을 내가 먼저 풀어주고 내가 먼저 그 과거와 제대로 헤어져야 한다. 다시 신발끈을 고쳐 매고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 사람의 일생은 자기가 오늘 딛고 선 지점에서부터 점점 더 앞으로 나아가도록 설계되었지, 그 뒤로 가도록 되어있지 않다. 그것이 이치이다. 이치를 거스르려 하면 탈이 난다. 마음이 묶여버리면 두 발도 묶이고 정신도 묶여서 오늘을 살지 못하고 오늘이 없으니 내일도 모레에도 나는 계속 부재하게 될 것이기에.



우리 이제 그만 그만하자.

헤어질 결심을 콱 굳혀버리자.

이미 지나간 시간들, 뜻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들, 그리운 것들 다 지금 없는 것들 놔버리자.

과거를 이제 그만 보내주자.



우리도 이제 그만, 어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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