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과 상승

영화 <헤어질 결심>

by 비누


1부 추락


흔히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빠졌다고 한다. 정신 못 차리도록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나. ‘사랑에 빠졌다’라는 게 꼭 아이의 코가 아이스크림에 빠진 모양새로 그려진다. 그러나 영화 속 두 남녀는 달랐다. 해준과 서래의 사랑은 마치 깊은 안개에 빠진 것 같기도 하고, 깊은 바닷속으로 빠진 것 같다. 어둡고 차가운 공간 속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것 같았다. 사랑에 빠진 다는 건 어쩌면 추락하고 있는 걸 수도 있겠다. 그 결말이 붕괴일 수도 있겠지만, 추락하는 동안에는 추락을 멈출 수 없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사랑하기를 멈출 수 없는 것처럼.

고백하자면 나는 영화 내내 서래를 의심했다. 서툰 한국말마저 발톱을 숨기기 위한 것이겠지. 특히 서래가 해준을 산으로 불렀을 때. 남편을 절벽 아래로 밀어낸 그녀가 또다시 그러지 않으리라는 애매함은 없었다. 해준 역시 날 선 경사 위에 서보니 자신이 베였다는 걸 깨달았다. 해준의 연한 살을 찢고 새로운 감정이 드러났다. 그럴 리 없다는 막연함 아래 잠자던 그녀에 대한 의혹의 침전물이 일었다. 만약 해준이 그날 산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피어오르는 연기를 놓쳤겠지. 절벽 위에 서지 않았다면, 뒷걸음치지 않았다면, 그 차가운 입술을 포개지 않았다면 영원히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절벽 위에 섰고, 뒷걸음을 쳤고, 차가움과 닿았다.



2부 상승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걸 추를 달아 무게를 잴 수 있을까? 시소에 태운다면 기울기로 알 수 있을까. 아니면 사랑이 시작된 순간부터 끝난 시간에 타오른 속력을 곱해 번진 거리를 측정할 수 있을까. 저마다의 계산법이 있겠다만 서래는 부등호가 아닌 문장 부호로 정리했다. 서래가 쉼표를 찍을 때, 해준이 온점으로 끝냈다. 사랑이 시작됐는데, 사랑이 끝났다. 한쪽이 잡아당기던 줄을 놔버리면 한쪽은 다치기 마련이다. 그들의 타이밍이 엇갈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해준의 대사처럼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랑도 있지만, 잉크가 물에 떨어지듯 서서히 번지는 사랑도 있다. 아무리 커다란 파도라도 끝내 부서져 이내 잔잔해지겠지만, 번져버린 물은 탁해져버리고 만다.


사랑에 빠졌다. 해준은 짙은 안개에 빠졌다고 생각했겠지. 언젠간 옅어질 안개에. 이내 사라질 안개에. 걷힌 안개를 뒤로 하고 다시 사랑에 오르겠지. 흙먼지를 털듯 무너지고 깨진 것들을 쓸어 담고. 추락한 이는 어디로 가나. 서래는 깊은 굴을 팠다. 더 깊이. 감지 못하는 눈동자를 위해 잠을 내어 주고 싶다는 서래. 피로 물들여서라도 만나고 싶었다는 서래. 아무도 못 찾는 깊은 바닷속에 던져버리라는 서래.

끝내 잠기는.

깊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