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뇌과학>을 읽고
예전에는 확실하고 강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좋았다. 그 자신감 안에 확신과 마음, 헌신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점점 이전에 애매하게 말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좋아진다.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신중한 태도의 애매함인 경우에.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배제하거나 짐작으로 단언하지 않는 경우에. 주목받는 주제를 건드리면서 확언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이 그런 책이다. 그래서 믿음직하다. 이중언어자들의 뇌에 대해 말하면서도 제2언어를 빠르게 습득하는 방법은 말하지 않는다. 이중언어자에 대한 연구 결과를 풀어놓으면서도 나머지 사회적 요인과의 상호작용 가능성이 높아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책은 사실 <이중언어의 뇌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중언어자의 언어영역 뇌과학 일대기를 다룬다. 뱃속에서부터 이중언어환경에 처한 아기의 뇌, 성인이 되어 이중언어자가 되는 과정과 된 후의 뇌, 노화된 뇌를 다룬다.
어떻게 말도 통하지 않는 아기를 대상으로 실험을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을까?(심지어 말도 못하는 아기) 실제로 이중언어 연구에는 어려움이 많다. 우리가 영어나 중국어를 공부할 때 느끼는 어려움의 차이처럼 언어들끼리 비슷한 언어들도 있고, 크게 다른 언어들도 있다. 한국어-영어 이중언어자와 한국어-중국어 이중언어자를 같은 실험대상으로 놓고 연구하는 데는 찝찝함이 있다. 그렇다고 똑같거나 비슷한 속성의 실험대상을 가진 일정 규모 이상의 집단을 찾기도 어렵다. 재밌는 것은 아기 대상 연구의 해결방안이다. 아기들의 선호도나 관심도 조사에는 자극에 집중하는 시간을 확인한다. 아기들은 선호하거나 관심이 높은 대상에 시선이 오래 머문다. 빨기 반사도 있다. 아기들은 집중할수록 더 강하게 빤다. 두뇌의 산소소비량을 촬영하는 방법도 있다.
이중언어 환경에 처한 아기들의 뇌를 단일언어 환경 아기들의 뇌와 비교한 다양한 연구들이 소개된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이중언어와는 상관없는 부분이었다. 영어권의 생후 9개월 아기에게 중국어 선생님과 놀게 했더니, 아기는 중국어 소리를 언어로 인식했다. 방법을 바꿔 녹음테이프를 대신해 틀어주었을 때는 언어로 학습하지 않았다. 단순하게 소리에 노출되는 걸로 배우지 못한다는 거다. 사회적인 접촉을 하면서 상호작용이 일어날 때만 아기는 새로운 소리를 언어로 배웠다. (다시 한번 이 아기는 태어난지 9개월짜리다!) 이 사실은 아기에게는 다정하고 보호자에게는 슬프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어린 아기에게 이중언어 능력을 선물하고 싶다면 보호자가 직접 다른 언어로 놀아주거나, 다른 언어의 놀이선생님을 고용해야 한다.
아기는 자신의 언어환경을 고를 수 없다. 성인은 타고난 환경에서 이중언어자가 된 경우도 있고, 자발적으로 학습을 통해 이중언어자가 된 경우도 있기 때문에 한층 복잡하다. 더 눈길이 가는 것은 자발적 이중언어자의 경우다. 이 경우 이중언어자는 언어를 습득할 때 통제하는 연습을 하게 된다. 외국어로 말하다보면 특정 단어가 절대 떠오르지 않고 한국어만 맴도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한국어에 대한 언어 통제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언어통제는 언어를 익히는 과정에서 서서히 연습하게 된다. 이중언어 생활을 하다보면 언어를 변경해서 쓰는 시점이 있다. 이 때 언어변경비용이 발생한다. 당연히 이중언어중 비우세언어(외국어) →우세언어(한국어)로 바꿀 때 비용이 더 적을 것 같다. 사실은 반대다! 한국어는 내가 익숙한 언어고, 외국어는 불편한데 왜 그럴까? 이중언어자의 뇌에서 언어통제는 '억제활동'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한국어로 말하고 생각할 때 뇌에서는 영어와 관련된 뇌활동을 억제한다. 손쉽다. (내 뇌에서 영어와 관련된 부분은 아주 작으니까.) 그런데 내가 영어로 말할 때는 내 뇌에서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한국어와 관련된 뇌활동을 모두 억제해야 한다. 훨씬 어렵다. (이 사실에 자신있다.) 영어로 말하다가 한국어로 말하려면 억제되어 있던 많은 부분을 모두 복구해야 한다. 반대로 한국어로 말하다 영어로 말할 때는 억제되어 있던 아주 작은 부분들만 복구하면 된다.
사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치매예방 때문이다. 이중언어를 하면 치매가 예방될까? 답을 보기 전에 인지예비용량이라는 개념을 배워야 한다. 인지예비용량은 10년간 논란이 있었지만 현재는 인정받고 있는 개념이다. 우리가 흔히 치매예방 생활지침으로 접하는 풍부하고 자극적인 지적인 활동들이 인지예비용량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인지예비용량이 큰 사람은 신경퇴행성질환(치매 포함)을 겪을 때 증상이 늦게 나타난다. 좋은 점만 있지는 않다. 일단 질환이 시작되면 인지예비용량이 작은 사람보다 진행속도가 빠르다. 대규모 연구 결과를 보면 이중언어자는 잦은 언어통제로 인한 꾸준한 자극 때문인지 인지예비용량이 크다. 실제로 이중언어자는 4~6년 정도 치매가 지연되었다. 스코틀랜드에서 11살의 어린이 7만명을 대상으로 오랜시간 동안 추적조사한 국가연구를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이중언어 능력 자체가 어떤 경제적, 사회적, 교육적 여건의 결과물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책에서는 인도에서 평균학력이 낮으면서도 문화적으로 이중언어생활이 대부분인 지역의 연구결과도 제시한다. 여기서도 치매가 지연된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하지만 여전히 인지예비용량이라는 개념이 많은 부분과 상호작용하는 것은 틀림없다. 이 분야 연구의 어려운 점 중 하나다.
특이했던 건 마지막 5장이다. 갓난아기부터 노화된 이중언어자까지 뇌를 탐구했는데 마지막에 이중언어자의 의사결정 과정 부분이 나온다. 놀랍게도 언어선택에 따라 의사결정이 달라질 수 있다. 외국어(비우세언어)를 쓸 때 감정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어를 쓸 때 우리는 더 논리적으로 말한다. 모국어만큼 풍부한 감정이나 섬세한 표현을 하지 못하고 사실에 더 집중하게 돼서다.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다루어 유명해진 기차의 딜레마 문제가 있다. 달리는 기차의 방향을 바꾸어 다섯명을 살릴지, 바꾸지 않고 놔두어 선로에 서있는 한명을 살릴지가 문제를 제시한 언어에 따라 달라진다! 모국어로 문제를 본 참가자의 17%가 방향을 바꾸어 한 명을 희생시키겠다고 하고, 외국어로 문제를 본 참가자는 40%가 같은 선택을 했다. 도덕적, 경제적, 사회적 문제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불리한 협상을 성사시켜야 한다면 상대방의 모국어와 억양을 사용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중언어가 정말 이렇게 쓸모있다면 시간을 들여 배울 가치가 있을까? 요즘 나는 헷갈리는 문제들 앞에서 이렇게 가정해본다. 그래서 내 자녀도 이러면 좋을 것 같은지. 가상의 자녀는 생각보다 꽤 쓸모가 있다. 당장은 괜찮지만 중년에 접어든다거나 인지적 능력의 저하가 확 와닿을 때쯤, 뇌를 위한 부스터로 남겨두고 싶다.(사실 좋은 건 알겠는데 공부하기는 싫다..)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 강력한 연구결과가 있다. 과연 가소성의 화신인 뇌가 언어를 잊을 수 있을까? 한국에서 프랑스로 3~8살 사이에 입양됐던 아이들을 연구한 결과는 아주 희망적이다. 꾸준히 노출되지 않은 언어는 깨끗이 잊힌다! 미리 공부해두면 다 까먹어도 나중에 다시 공부할 때 빠르게 익힌다는 말도 들어봤는데 이건 일부분만 사실이다. 재학습시 초기에는 똑같다. 하지만 노출된 적 있던 언어는 학습이 진행되면서 소리를 효과적으로 구별한다. 뇌에 언어의 흔적이 남기는 남는다. 현재 확실한 건 소리에 대해서만! 그러니까 평소 밥벌이를 하면서 영어가 쓸모없는 나는 당분간은 여행전 벼락치기 회화공부로 충분하겠다고 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