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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르는불 Feb 17. 2021

그래서 나는 어제도 책모임에 나갔다

<신경가소성>을 읽고


 햇수로 나간 지 10년 되는 책모임이 있다. 한참을 쭉 나가다 한동안 쉬기를 반복했다. 지난 수요일에 했던 모임은 10명이 모였는데 한 명은 그날 처음 온 사람이었다. 그중 초반부터 같이 했던 멤버는 다섯, 5년 미만인 멤버가 셋이다. 특별히 가입 제한은 없어서, 대부분 문이 열려있다. 덕분에 모임에 오는 사람들은 세 가지다. 다양한 이유로 한번 왔다가 스쳐 지나가는 사람. 막연하게 이 모임이 좋긴 하지만 가끔 시간 될 때 오는 사람. 어쩌다 이 모임에 고여버린 사람. 막 이사 와서 친구가 필요해서 왔는지, 연인을 구하러 왔는지, 교양 있고 우아한 사교모임장을 찾아왔는지, 책을 좋아해서 왔는지, 격렬한 토론의 승자가 되기 위해 왔는지, 종교와 보험과 다단계 물건을 팔러 왔는지, 상상 속의 유니콘 같은 책모임을 찾아왔는지, 자기 계발을 하러 왔는지. 가입 문의가 왔을 때 한 눈에 알 수는 없다. 고인물들은 경험상 우리와 함께 고여줄 새로운 얼굴을 기다리면서도 두려워한다.


시냅스와 시냅스 강화. 강화 버섯을 먹으면 신경전달물질과 수용체가 증가한다. 시냅스 강화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평생! 일어난다.


 사람의 뇌는 신비롭다. 신경세포 사이에 신경전달물질들이 이동하는 곳을 시냅스라고 한다. 시냅스는 우리가 어릴 때 일단 폭발적으로 생성된다. 그리고 나중에 경험과 자극에 의해 가지치기를 하는 방식으로 발달한다. 만약 처음부터 방향성을 가지고 필요한 것만 만들면 다시 지울 필요가 없다. 시간도 단축된다. 가지치기 방식은 비효율적이다. 대신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 우리가 성장하면서 눈에 담은 것들, 감정으로 마음에 묻은 것들, 꿈으로 외워 머리에 새긴 것들은 시냅스 강화로 우리의 뇌에 남는다. 닿지 못한 것, 경험하지 못한 것, 관심받지 못한 것들은 가지치기당한다. 이렇게 번거로운 시스템 때문에 우리의 뇌는 고유하고 특정한 하나의 세계로 성장해볼 기회를 가진다. 그래서 우리 책모임은 누군가 어떤 세계를 몰고 올지 모르는 위험에 항상 처한다. 사람의 뇌와 책모임은 꽤 닮았다. 몇 개의 스위치를 사용해 하나의 신경망을 만들고 삭제하는 수고를 한다.



 책의 제목인 신경가소성은 신경계가 변화하는 성질이다. 뇌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환경에 반응하고 적응한다. 학생 때 한 번쯤 들어봤을 중추신경계, 교감신경계 이런 것들이 전부 다 신경이다. 중추신경계는 뇌와 척수로 구분하는데, 그래서 신경과학이라는 더 큰 범주안에 뇌과학이 들어있다. 신경계는 신경세포들의 모임이고, 신경세포는 신경계에서 가장 기본단위로 본다. 놀라운 건 신경가소성(변화)의 범위는 기능과 구조까지다. 구조도 바뀐다! 청소하고 땀을 흘리며 가구 위치를 바꾸는 게 아니다. 우리 머릿속에서 신경세포 하나의 생김새와 용도가 계속 바뀐다. 그 세포 하나들이 모여서 이루는 신경계와 확장하면 뇌 전체까지. 

피난 거 아닙니다. 활성화된 정도와 부위를 보여주는 fMRI 사진을 그린 그림.

 저자인 모헤브 코스탄디는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신경과학자, 과학작가다. <신경가소성>은 168쪽의 작고 얇은 책이다. 내용은 다르다. 방대한 내용을 간결하게 설명하면서도 연구방법이나 설계까지 충분한 설명을 한다. 특히 신경가소성에 대한 과거의 관점과 발달과정을 보여줘서 이해가 쉽다. 뇌과학은 현대의 기술과 장비가 발달하면서 크게 진전이 이뤄졌다. fMRI 방식은 수술로 머리를 열지 않고도 뇌를 촬영해서 활성화된 부분을 사진으로 찍을 수 있다. 이런 최첨단 기술 이전에는 뇌 연구를 어떻게 했을까? 후천적으로 뇌 손상을 입은 환자들을 연구해서 조금씩 발전해왔다.


 사고로 뇌의 특정한 부분이 손상된 환자들에서 찾은 성격 변화나 상실된 기능들은 그 부분만이 그 기능을 한다는 추론을 하게 한다. 과거 다른 연구도구가 없는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뇌는 어느 정도 큰 역할이 나눠져 있어 정상적인 경우 각자 맡은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일정 부분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되면 세포들의 구조와 역할이 바뀐다. 작은 손상이라면 주변의 다른 세포들이 점차 역할을 나눠가진다. 손상이 커 대체할 수 없는 경우는 완전히 다른 능력을 발달시키기도 한다.


 책에 2015년 FDA 승인을 받은 브레인포트 V100이라는 감각 치환 장치가 소개된다. 카메라가 달린 선글라스를 끼고 혀 위에 우표만 한 전극 장치를 올려놓으면 따끔거리는 자극을 준다. 시각을 촉각으로 바꾸는 장치다. 이 기계로 훈련한 시각장애인의 70%가 물체 인식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본다. 무엇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안다. 눈으로 세상을 보는 많은 사람들과 같지는 않아도 보게 되었다는 말이다. 어디에 어떤 것이 어떤 크기로 웅크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게 됐다는 것. 처음부터 비어있거나 잃어버린 기능의 자리에 새로운 감각과 방식이 자리 잡는다. 출발이 사람의 마음이든 단지 기술의 발달이든 기적같은 일이다. 책을 보다 보면 신경가소성의 관점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게 항상 같을 수 없고, 그러니까 언제나 달라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어떤 순간 이제 더는 잃을 게 없다는 확신이 있다면 앞으로 뭔가 더 얻을 일만 남았다는 확신도 된다.


 어려서 읽던 과학책은 신기한 지식으로 가득했다.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성인이 되어 읽어보는 과학책들은 다르게 읽힌다. 자연의 법칙은 삶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책을 읽는 것. 책과 내가 연결되는 것. '책과 나'가 여럿 모인 책모임. 신경세포와 시냅스, 신경계와 정확하게 같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만나봐야 한다. 만나서 서로의 가능성을 확장하고 확장해줘야 한다. 각양각색의 신경세포들과 시냅스를 강화하고 극단적이고 불통한 시냅스들은 용기내 시들게 해야 한다. 겨우 만난 소중한 인연과 꾸준하게 접촉해야 한다. 다른 사소한 것에 밀려 자리를 잃지 않도록 시냅스를 강화해가야 한다. 누가 언제 올지 모른다. 힘닿는 데 까지는 새로운 시냅스를 갈망한다. 치명적 손상을 가져온 사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겨우 쪼그라든 시냅스를 다듬고 신경계를 조정해왔다. 그래서 나는 일단 어제도 책모임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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