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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콩 Oct 13. 2022

독서록의 줄거리 요약은 어떻게 도와줄까요?

  요즘 초등학교 2학년인 제 아들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동화로 엮은 전집을 읽고 있습니다. 고대 역사와 설화가 담긴 책들이므로 비교적 여유 시간이 많은 초등 저학년에 읽어두면 좋을 것 같았거든요. 학교에서 매주 1회 제출하는 독서록 과제도 이 책들로 하고 있는데, 사실 줄거리를 요약하기가 쉬운 책은 아닙니다. 이런저런 부연 설명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저희 둘째가 ‘사랑을 지킨 도미의 아내’를 독서록으로 쓰겠다고 했을 때 부부의 정절과 사랑이 주제인 이 책을 과연 잘 요약할 수 있을까 염려가 됐습니다.

 “이 책을 왜 골랐어? 어떤 부분이 재밌었는데?”

 제 아들은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이 책은 아무도 읽으면 안 되는 책이야.”

 “아무도 읽으면 안 돼? 왜?”

 “너무 잔인하고 불쌍하거든.”

 “그런데 왜 이 책으로 독서록을 쓰려고?”

 “친구들한테 이 책 읽으면 안 된다고 알려주려고.”

 저는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뭐가 그렇게 잔인했어?”

 “여기 왕이 이 남편을 데려가서 눈을 못 보게 만들고, 여기 아내가 도망갔는데 하늘에서 배가 떨어져서 도망쳤는데, 도망쳐도 되게 불쌍하게 살아.”

 아이가 책장을 넘겨 가며 그림을 보고 설명해주었습니다. 사실 지금은 한 문장으로 제가 정리한 것이지만 아이가 줄거리를 얘기할 때는 장황하고 두서가 없었습니다. 저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독서록 첫 문장을 쓰게 했습니다.

 ‘사랑을 지킨 도미의 아내는 친구들이 안 읽기를 바란다.’

 아이가 첫 문장을 다 썼을 때 저는 ‘왜냐하면’이라고 접속사를 불러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잔인하다.’

 아이가 두 번째 문장을 썼습니다. 저는 뭐가 잔인했는지 알려줘야 친구들이 책을 안 읽지 않겠냐고 말해주었지요.

 ‘왕이 도미의 눈을 못 보게 만들고 배에 실어 ‘천성도’라는 곳에 왔다.’

 아이가 다음 문장을 썼습니다.

 “그런데 왜 왕이 도미의 눈을 멀게 만들었어?”

 “아내를 뺏으려고.”

 “그래 그걸 써야지.”

 저는 이렇게 아이가 문장을 완성하면 그 이유를 덧붙이게 해서 줄거리를 완성하려 했습니다. 백제시대의 ‘도미 설화’로 알려진 이 이야기에 따르면 왕은 도미를 궁에다 가둬두고 도미의 아내를 시험합니다. 신하를 왕처럼 꾸며 도미의 아내를 유혹하지요. 아내는 그 유혹에 넘어가는 척하면서 자신의 하녀를 자신처럼 분장해 가짜 왕에게 보냅니다.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왕은 화가 나 도미의 눈을 멀게 만들고, 멀리 쫓아버립니다. 그리고 직접 도미의 아내를 찾아가서 남편도 없으니 자신과 궁에서 호화롭게 살자고 회유합니다. 아내는 그 회유에 응하는 척하면서 몸을 단정히 할 테니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을에서 도망쳐 어느 강가에 다다르게 되는데, 도망갈 방법이 없자 하늘에 기도를 합니다. 그때 배가 한 척 나타나고 아내는 그 배를 타고 ‘천성도’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극적으로 남편을 만나고 두 사람은 고구려로 망명합니다. 하지만 고구려에서도 가난하고 힘겹게 살다가 생을 마감합니다.

 저는 원인과 결과를 따져가는 질문을 통해 아이가 줄거리를 요약할 수 있도록 도우려 했습니다. 아이가 문장을 쓰면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 묻고, 그 이유를 쓰면, 그 이전 사건은 또 어떻게 일어났는지 물어서 이야기를 요약하려 했지요. 그런데 아이가 쓰고자 하는 것은 제 생각과 달랐습니다. 저는 어떻게 도미의 아내가 왕을 피해 도망쳤는지 그 과정을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도미의 아내가 어떻게 남편에게 갔는지 그 과정을 더 쓰고 싶어 했습니다. 제가

 “아내가 가짜 왕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속였어?”

 “진짜 왕의 나타났을 때는 어떻게 도망쳤어?”

라고 질문을 해도 대답이 두루뭉술했습니다. 예를 들면

 ‘아내가 거짓말을 했어.’

 ‘아내가 왕을 피했어.’

라는 식의 대답이었습니다. 사건을 나열하거나 자세하게 설명하는 말 없이 뭉뚱그려 대답하는 모습이었지요.

 “아니, 그냥 거짓말이 아니잖아. 하녀를 자기인 것처럼 속인 거잖아.”

 “왕을 피할 때 꾀를 냈잖아. 다음날 궁으로 가겠다고.”

 이런 식으로 제가 대답을 알려주고 그대로 쓰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줄거리 요약은 더 수월하게 됐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에도 역시 아이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게 해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고민은 되었지만 제 의도대로 번듯하게 만든 결과물이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이번에도 아이를 믿었습니다.

 저는 그다음부터 줄거리 요약에 신경 쓰지 않고 아이가 쓰고 싶은 대로 쓰게 그냥 두었습니다. 아이는 노트 한 면을 다 채우고 다음 장으로 넘어갔습니다. 가만히 내용을 읽어 보니 도미의 아내가 남편에게 가는 고난과 여정을 길게 묘사하고 있더군요. 아이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바로 그 부분이었던 것입니다. 이곳에 아이가 쓴 ‘사랑을 지킨 도미의 아내’ 독서록을 옮겨보겠습니다.   

  ‘사랑을 지킨 도미의 아내’는 친구들이 안 읽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잔인하다. 왕이 도미의 눈을 못 보게 만들고 배에 실려 ‘천성도’라는 곳에 왔다. 처음에 왕은 도미의 아내를 뺏으려고 했다. 그런데 도미를 눈멀게 했다. 그 후 도미의 아내를 잡으려고 했던 왕을 피했다. 그래서 어느 날 도미가 배를 타고 ‘천성도’로 갔던 길이 보였다. 하지만 거기는 배를 타고 ‘천성도’까지 가야 됐다. 하지만 도미의 아내는 배가 없어 하는님에게 기도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오! 하는님. 제가 어떤 죄를 지었다고 이렇게 하신 겁니까?”
 그 순간! 배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도미의 아내는 기적 덕분에 ‘천성도’까지 가서 남편을 만났지만 힘든 일생을 마치고 하늘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나는 이 책의 이런 부분이 마음에 안 든다. 1. 잔인하다. 2. 불쌍하다. 3. 행복하지 않아서 싫다. 그러므로 친구들이 이 책을 안 봤으면 한다.

 

 혼자 쓰게 만들었더니 아이가 대화체도 넣고, ‘그 순간!’이라는 극적인 표현도 넣더군요. ‘길이 보였다’ ‘눈멀게 했다’ ‘기적 덕분에(기적같이)’ 등의 관용적인 표현을 스스로 활용해 쓰는 것도 눈에 띄었습니다. 마지막에 본인의 감상을 더 적어야 한다고 했더니 1,2,3 번호를 달아 자신의 주장에 대한 이유를 적은 것도 아이의 생각이었습니다. 그 부분이 마음에 드셨는지 학교 담임 선생님께서 밑줄도 그어주셨더군요.

 이날의 글쓰기는 비록 제대로 된 줄거리 요약에는 실패했는지 몰라도, 역시 글은 본인이 쓰고 싶은 대로 써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했습니다.

 혹시 독서록 작성에서 줄거리 요약 부분을 고민하고 계시다면, 저는 사건 흐름에 너무 얽매이지 마시라고 조언드리고 싶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순서와 상관없이, 결과를 먼저 적고 그 원인을 찾아가는 형태로 줄거리를 요약할 수도 있습니다. 또 일어난 사건을 모두 담으려고 애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건이 있다면 그 이야기가 중심이 되도록 쓰고, 다른 사건들은 언급만 하거나 생략해도 됩니다. 독서록을 쓸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가 어떤 부분을 재밌어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아내는 것입니다. 무척 어렵지요. 저도 대화를 하고 시작하지만 번번이 놓치고, 아이가 독서록을 다 쓴 후에야 알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아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말했을 때, 제 시각에 맞춰 ‘그것은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않으려 애씁니다. 독서록도 결국은 자신이 쓰고 싶은 대로 써야 하고, 그것을 존중해 줘야 합니다. 아이의 생각이 부족해 보이고, 중심 생각에서 벗어났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아이의 논리와 입장으로 얘기합니다. 반사회적이거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의견이 아니라면, 아이의 말과 생각을 수용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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