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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맵 매거진 Oct 12. 2022

죽음을 담은 정물화, 바니타스(Vanitas)

바니타스(Vanitas),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바니타스(Vanitas),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 (Vanity of vanities, saith the Preacher,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Pieter Claesz, Still Life. Skull and Writing Quill, 1628, 24.1 x 35.9 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바니타스’는 관객에게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유한함, 물질이나 세속적 즐거움의 무가치함을 상기시키는 여러 상징적인 오브제를 포함하는 정물화의 한 장르이다. 용어는 ‘헛되고 헛되다, 설교자는 말한다, 헛되고 헛되다. 세상만사 헛되다(Vanity of vanities, saith the Preacher,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라고 시작하는 구약 성경의 전도서(The Book of Ecclesiastes)에서 유래하였다. 이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철학을 담은 17세기 유럽 화가들의 정물화의 모태가 되었다. 해골, 꺼져 가는 촛불, 하루 살이, 시들고 있는 과일이나 꽃 등을 묘사하여 현세의 덧없음을 이야기하는 바니타스 정물화는 악기, 와인, 책 등 세속적 즐거움을 상징하는 여러 기물들과 함께 구성되어 삶과 죽음의 요소를 한 화면에서 보여 준다고 평가 받고 있다. 


David Bailly, Vanitas, oil, 1650


전도서에서 이야기하는 바니타스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모든 게 헛되다고 시작하여 헛되다며 끝맺는다. 


사람이 하늘 아래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으랴! (What profit has man from all the labor which he toils at under the sun?)

한 세대가 가면 또 한 세대가 오지만 이 땅은 영원히 그대로이다. (One generation passes and another comes, but the world forever stays.)

떴다 지는 해는 다시 떴던 곳으로 숨가삐 가고 (The sun rises and the sun goes down; then it presses on to the place where it rises.)

남쪽으로 불어 갔다 북쪽으로 돌아오는 바람은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다. (Blowing now toward the south, then toward the north, the wind turns again and again, resuming its rounds.)

모든 강이 바다로 흘러 드는데 바다는 넘치는 일이 없구나. 강물은 떠났던 곳으로 돌아가서 다시 흘러내리는 것을. (All givers go to the sea, yet never does the sea become full. To the place where they go, the rivers keep on going.) 

세상만사 속절없이 무엇이라 말할 길 없구나. 아무리 보아도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수가 없고 아무리 들어도 듣고 싶은 대로 듣는 수가 없다. (All speech is labored; there is nothing man can say. The eye is not satisfied with seeing nor is the ear filled with hearing.)

지금 있는 것은 언젠가 있었던 것이요, 지금 생긴 일은 언젠가 있었던 일이라. 하늘 아래 새 것이 있을 리 없다. (What has been, that will be; what has been done, that will be done. Nothing is new under the sun.)

“보아라 여기 새로운 것이 있구나!” 하더라도 믿지 마라. 그런 일은 우리가 나기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다. (Even the thing of which we say, “See, this is new!” has already existed in the ages that preceded us.)

지나간 나날이 기억에서 사라지듯 오는 세월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 것을. (There is no remembrance of the men of old; or of those to come will there be any remembrance among those who come after them.) 


안토니오 드 페레다(Antonio de Pereda)의 ‘바니타스 알레고리(Allegory of Vanity)’, 캔버스에 유채, 1632-1636


 바니타스화는 후기 르네상스 시대에 주로 해골이나 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여러 오브제들로 시작, 초상화의 뒷면에 그려지다 점점 진화하여 마침내 대중적인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였다. 비록 몇몇의 바니타스화는 인물을 포함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정물로 구성되어 있다. 예술과 과학을 상징하는 책, 지도, 악보를 비롯하여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지갑, 보석, 금 장신구, 세속적 쾌락을 상징하는 와인잔, 파이프, 카드, 죽음과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해골, 시계, 타고 있는 양초, 금방 터져 버리는 비누 방울, 시드는 꽃, 그리고 간혹 부활과 영생을 상징하는 옥수수 이삭이나 월계수 잎 등을 그려 넣기도 하였다. 초기 바니타스화는 그 힘을 강조하기 위해 책이나 해골 등의 몇몇의 간단한 오브제로 강하고 밀도 있게 표현되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물이나 색도 더욱 다양해 지고 분위기도 가벼워 졌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후기 바니타스화는 지나치게 꼼꼼한 묘사와 기교에도 불구하고 그 예술성이 더욱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램브란트(Rembrandt)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물질만능주의의, 종교, 철학의 권위가 약화되는 시대의 우리에게 바니타스화는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야 하는 인간의 본성에 관해 참으로 오래전부터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글 | 김윤경 (독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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