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물들을 찾아낸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찾아냈다."
(사진 출처 : © Courtesy of George Eastman House, International Museum of Photography and Film.)
“내가 사물들을 찾아낸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찾아냈다.
(I wasn’t looking for a thing, things were looking for me)”
워커 에반스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루이스 하인(Lewis Hine), 도로시아 랭(Doroathea Lange), 폴 스트랜드(Paul Strand), 알프레드 아이젠스테드(Alfred Eisenstaedt), 이모진 커닝햄(Imogen Cunnigham), 에드워드 웨스톤(Edward Weston), 안셀 아담스(Ansel Adams), 베레니스 애봇(Berenice Abbott) 등의 유명한 사진 작가들 사이에서 미국의 미니멀리즘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가장 잘 구현해낸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는 시골의 교회, 버려진 창고, 녹슨 자동차, 빌보드 간판, 포스터, 가게 앞에 한가로이 앉은 익명의 사람들 등을 찍으며 미국 문학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미니멀리즘 작가, 셔우드 앤더슨(Sherwood Anderson)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Whinesburg, Ohio)’, 헤밍웨이(Earnest Hemingway)의 ‘우리들의 시대에(In Our Time)’,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의 객관주의 시, 음악가 챨스 이브스(Charles Ives)의 전원주의적 음악,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말끔한, 마치 꿈과 같은 사실주의 등을 연상시키며 자신의 사진의 독특한 미니멀리즘 양식을 정립하였다.
윌리엄스는 말이나 개념보다 보이는 사물에 존재하는 것들을 중시하는 시를 쓰곤 하였는데, 이는 워커 에반스의 서정주의 다큐멘터리 사진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존재의 시각적 순수 속에서 어떤 말이나 개념도 중요치 않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워커 에반스가 자신의 사진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었다. 소설가 제임스 에이지(James Agee)와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진 대공황 시대의 알라바마의 소작농 가족의 초상은 그 맥락 자체가 매우 단순하면서도 직접적이다. 상징적인 이미지, 이를테면 폐허 위에 지어진 농장 가옥, 남북 전쟁 기념비, 파괴된 무덤 등의 포착을 통한 과거의 기록은 평온함 가운데에 회상되는 미국의 혼돈의 역사의 사건들로 관객을 인도한다.
워커 에반스는 집의 내부를 집요하게 관찰하는 시점을 선택하여 보이지 않는 집의 인물의 특징을 추측케 한다. 더러운 공장의 내부, 버려진 자동차로 가득 메워 진 공터를 마치 넘어져 있는 인물인 양 피사체로 삼아 우리의 눈을 놀라게 하는 휴머니스트이다. 그는 오히려 이러한 부재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공간의 주인인 사람들을 더욱 드러나게 하며 때때로 집의 내부가 누군가의 거주의 암시로 인해 채워지는 느낌을 부여하고 싶다고 말한다. 과도한, 가식적인 암시를 피하고 예술의 매너리즘을 타파하는 그만의 독특한 방식은 그와 동시대 사진가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의 소위 ‘예술 사진’에 반하는 양식을 구축하려는 충동에서 출발하였다. ‘예술’이라는 이름의 치장을 피하며 금욕적, 청교도적이었던 당시의 소작농들의 일상적 배경을 가감없이 포착하려고 애썼다. 즉, 스티글리츠에 의한 자극으로 인해 예술적, 낭만적으로 간주되는 ‘예술 사진’의 정의를 다시 세우고자 한 것이었다. 1964년 예일대학교에서 있었던 ‘서정주의 다큐멘터리’라는 주제의 강연을 통해 그는 스티글리츠와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하였다. 즉 자신이 제시하고자 하는 순수, 나름의 엄숙함, 운동감, 직접성, 명료함 등의 단어를 낭만적이고 의식적인 치장이 아닌 자신의 눈에 들어온 사물 자체로서 정의한 것이다. 감정이나 사진 기술의 실험에 의한 관측이 아닌 진솔한 사물 그 자체의 포착은 말없이 그 단순함, 직접성, 그 속에서 드러난 역사적 정황 등으로 인해 언어에 의한 설명이 아닌 순수한 시각적 형식의 기록으로 보는 이를 서서히 압도하며 워커 에반스가 인생에 걸쳐 추구한 미학이 되었다.
우리는 종종 우리 주변의 자연과 환경, 그리고 인간이 지닌 아름다움을 무심히 지나치고 살아간다.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자연 재해와 인위적으로 행하는 파괴, 그리고 우리를 팬데믹의 상황으로 몰아 넣었던 코로나와 같은 질병은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경험하게 한다. ‘과거’라는 그리움과 환상을 불러 일으킬 수 밖에 없는 워커 에반스의 흑백 사진들은 마치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는 혼돈의 세상, 그 속에서 헤쳐 나가야 할 난관들과 너무도 동떨어져 보인다. 경쾌한 재즈 선율이라도 흘러나올 것 같은, 남북 전쟁의 횡포가 극심했다던 미시시피의 폐허 위에 지어진 한적한 이발소 앞 벤치에 앉은 익명의 흑인 남녀, 무수한 수평선을 이루는 판자집과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서 있는 대공황 시기의 소작농 가족의 평온한 얼굴 위에 내려 앉은 햇볕은 마치 오래된 영화 속 장면처럼 아름답게만 여겨진다. 사물들이 말을 걸어 왔을 뿐이라 이야기하는 워커 에반스는 오히려 이러한 적막한 평화로움 속에 감추어진 동요를 더욱 커다란 울림으로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Less is more’이라는 미니멀리즘의 소박한 화법을 빌어 가장 큰 음성으로, 기록 사진가로서 전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글 | 김윤경(독립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