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배기능사 공부를 기록합니다
도배벽지잘하는우화
변화를 싫어하고, 정착과 안정을 중시하지만 정작 사람들 사이에 끼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혼자 됨을 꺼리는 이들만이 남았다. 그러니까 영등포 시장에. 그러니까 온갖 개들을 걸어놓고 팔던 그 곳에. 화장실을 거쳐 들어가야 나오던 육천원짜리 곰탕집이…. 죄다 사라져버렸다. 우리(두 여자)에게 유독 불친절하던 마끼다 지점도 갔고, 우리에게 같은 이유로 호의적이었던 중앙골목의 철물점도 없어졌으며 그 옆의 피스 천국도 함께 높은 건물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안전도구 파는 곳, 원형 사포를 팔던 곳, 그리고 갖가지 톱을 팔던 곳의 간판은 그대로였고, 검정 아니면 남색의 패딩을 입은 구부정한 아저씨들은 언제나 늘 그렇듯 가득했다. 도배 공구를 파는 집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었는데, 여러 용구들을 모빌처럼 걸어두어 사진을 찍은 곳이었다. 처음 가서 필요한 “솔 파세요?” 라고 물으며 준비물 항목을 보여주자 아저씨는 말했다.
“도배기능사 딸거여?”
“네, 뭐 그렇죠.”
“아주머니 나이가 있는데 왜 갑자기 이 일을 하신대?”
(물론 나는 내가 아줌니로 칭해지는 상황을 어색해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예전에 목공일을 했는데, 겸해서 배워서 돈 벌려고요.”
“목수일은 얼마나 했는데?”
“3년이요.”
“3년이면 갓 햇병아리 수준인디”
“알아요.^^.”
그리고 긴풀솔이니 짧은 풀솔이니 온갖 난장판이 된 곳에서 하나씩 던져 줄 적마다 나도 한마디씩 곁들였다. 뭐 이를테면 굳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 와서 재료를 사는 이유는 여기 물건이 질이 좋아서 라느니, 옛날에도 물건을 사러 자주 왔었다느니 하는 말들 말이다. 아저씨는 정배솔은 한 번 사면 10년을 쓸 수 있다며 좋은 것을 건넸고(그때부터 가격 협상이 들어가기 시작해서) 도배 로라도 고급품으로 얻어냈다. 심지어 쇠 헤라는 끄트머리의 모난 부분이 도배 공구집에 들어가면 튀어나와 다칠 우려가 있으니 그것을 자르고 갈아주기까지 했다. 페인트 솔이 필요하다고 해서 아저씨가 그게 뭐당가, 하다가 “아! 다찌 솔!” 하면서 솔을 챙겨주었다. 여기에선 그렇게 불렀지만 확실히 목공 때에는 그 솔을 페인트 붓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여하간 새로운 용어를 아는 건 즐거운 일. 나는 아저씨가 모든 용품을 한 데 넣는 것을 구경했다. 그리고 아저씨가 직접 만든 공구집은 이중으로 구멍을 내어 막았고, 직접 만든 국방색 걸레주머니는 속이 펼쳐질 수 있도록 테이프로 안을 고정해 두었다. 도배용 벨트도 따로 주었는데, 멋있기는 역시 목공용 벨트가 멋지지만, 도배 일을 할 때에는 목공 벨트의 쇠 걸쇠가 녹이 슬어 벽지에 묻는 경우가 있어 플라스틱 재질을 쓴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그리고 아저씨랑 맥모골 한 잔 하면서 두평 남짓한 가게 사무실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영수증을 써달라고 했고, 계산이 번번이 맞지 않아서 난감한 모양을 하셔서 그냥 되는 대로 달라고 했다. 아저씨는 다음에 들르면 쇠각자를 두 개 그냥 준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미 정배솔을 좋은 놈으로 고르고, 도배칼을 일제 제품으로 골랐을 때부터 호칭은 아가씨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아가씨는 그 집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용구들을 얻고 돌아왔다. 솔이라는 게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고, 칼받이니 헤라까지 넣었을 때에 무게가 제법 나갔다. 도합 2Kg는 나갔다.
그 다음에는 작업복 상의를 샀다. 내가 좋아하는 얼룩덜룩한 카모플라주 무늬…. 주인 아줌마는 패딩을 벗고 입어보는 내 나머지 의상(정장)을 보고 이런 일을 할 것 같진 않은디…. 하고 말을 흐렸다. 잘 맞는 옷이었고 2만원으로 깎아서 더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으로는 작업화를 샀는데, 아까 들렀던 안전화 파는 데에서 가격을 5~6만원 선으로 불러서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 아무리 10년 전이라도 그때는 만 원이었잖아? 우연히 작업복을 산 곳 앞에 작업화들을 늘어놓고 파는 할머니가 있었는데, 때마침 그곳에 있던 235mm 짜리 신발이 내게 꼭 맞았다. 주인장은 어차피 맞는 사람이 사가야지 하면서 아까 안전화 가게에서 불렀던 가격의 절반을 불렀다. 내, 내 이래서 영등포시장의 생리를 늘 겪으면서도 늘 어처구니가 없다. 아무튼 안전화를 사고, 끔찍한 색상 배합의 끈도 다이소에서 바꿔 사서 갈아끼웠다. 이제 도배 벽지 수업을 들을 모든 준비를 끝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기술일을 할 때 쓰는 서로 다른 용어다. 왜, 출판계에서 도비라라든지 스티커 도무송이라든지 하는 말 말이다. 내일 모레부터 일을 하러 나가게 되는데 아주 기대가 된다. 그리고 본래는 매일의 도배일지를 올리려고 했는데, 물건을 산 것부터 자체가 이미 우리의 시작이라고 생각이 되어 이 글을 처음으로 올린다.
기술을 배우는 일은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꽤 유용하다. 물론 아주 심각한 경우(보행이나 시각적 인지, 기억 자체가 어려운 경우 외에)에는 해당하는 심각 정도에 따른 맞춤형 업무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다. 왜냐면, 나는 약물 부작용인지 조현정동장애의 발현인지 음성증상의 발발인지 모르겠지만, 시청각 사용 자체가 불가하고 기억 자체가 반년동안 소실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운전을 배우다가 사고를 낼 뻔한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어떤 시점에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무리한 행동을 하다가 정신적 외상만이 아닌 실제 사건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을 배우는 것이 도움을 주는 이유는, 기술의 세계는 절대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이 코딩을 ‘왜 그렇게 굴러가는지 원리는 알지 못하지만 잘 굴러가면 손댈 수 없는’ 것처럼 여기듯이, 기술 또한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을 초월한 형태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럴 때에 기술자들은 실패를 느껴, 모두 엎고 다시 만드는가? 아니다. 그들은 가장 빠르게 지금의 난국을 수습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 그러니까, 절대 실수 했던 직전으로 돌아가 그것을 반복해 하면서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현 상태의 문제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의 관점으로 본다. 그래서 기술을 배움에 있어서는 실수, 수정, 오류, 오차 같은 것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그것에서 더는 좌절만을 경험하는 것이 아닌 ‘그 다음’을 상상하거나 함께 방법을 고안하는 형식으로 운영된다. 그래서 나는 기술 익히기를 좋아한다. 이것이 쓸모 있고, 앞으로 나를 직업적으로 먹여 살릴 것이라는 생각도 있겠지만,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내가 실수해도 다시 처리할 수 있는 심적 여유를 기르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