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배일지Day5
드디어 1주간의 수업이 끝났다. 오늘 장폭과 실크 재단을 하고, 몇몇은 천장이나 벽면에도 붙였다. 그 사람들은 마음이 급하고 손도 빠르다. 반면 나는 마음도 가볍고 손놀림도 재지 않다. 오늘은 8시 5분에 문 열고 들어갔다. 누가 그랬거든. 제일 먼저 들어가 마지막에 나온다고. 그러나 공간을 반대로 잡아 시도한 결과는 처참했다. 어제는 네 시간. 오늘은 세 시간 반. 초배에 왜 이리 시간이 많이 걸리냐는 불평은 들어도 들어도 끝이 없다. 재단 실수는 자르고 잘라도 끝이 없다. 내 힘받이는 왜 9개인지(9개 맞다) ABC 정면 중 어디에 붙여야 하는지(끝선을 10㎜ 잘라야 하므로 중요한 문제인데 이런 디테일을 잡을 때 늘 대충 하려 한다) 운용지는 왜 8개가 아니라 12개 같고, 12개는 사실 도수초배지인데 도수초배지는 풀을 쳐 발라도 시발 말라버리기 일쑤고, 공간 초배지는 이제껏 3번을 했는데 한 번도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다. 여기에 있는 인원들 중에 나만 제일 실패하는 것 같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건 일하면서 당음료 안 먹기와 담배 줄이기인데 이것이 도배기능사와 관련이 있는가? (물론 시험 시간 3시간 20분 중 담배 피울 시간도 여유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초배는 오늘도 망했다. 공간초배를 30개 붙여야 하는데 이미 테두리 풀 붙이기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다. 이런 흐름세가 한층 더 기술배우기를 고달프게 한다. 너는 절대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없어 같은 생각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러니까, 일 마치면. 그래서 남는 시간에 점심도 먹지 않고 예술 기금 지원서나 작성하고 있었다. 너는 먹을 자격이 없어 라기 보다는, 3시간 반을 투자했는데 결과물이 이따위라니 라는 마음과 그로인해 팍 저하된 식욕과, 의욕의 집산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별로 먹은 게 없었다. 아침에 산 커피만 무의미하게 녹고 있었다. 얼음 정수기에서 얼음만 빼먹으며 커피를 온종일 마셨다. 실크>장폭>소폭으로 재단할 때도 매한가지였다. 선생이 하는 걸 보면 쉬운데 막상 내 눈 내 손앞에 두면 정갈하지 못한 길이와 수직이 될 수 없는 칼질과 갖은 것들이 고통스럽게 한다. 심지어 장폭은 발라보기까지 했는데 풀을 가득 먹어서 무거웠고 그걸 들고 천장 몰딩에서 수직을 유지하며 내려오는 것, 동시에 미미선만큼의 여백을 두는 것도 거지같았다. 마지막 폭은 그냥 중간에 찢어버렸다. 한심해서.
그리고 한 숨 돌리고(지원서 썼다는 뜻) 다시 장폭을 재단했다. 장폭과 실크는 무늬 벽지이기 때문에 무늬를 맞추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내가 얻어걸린 장폭 벽지는 흰색에 은색 무늬라서 다른 것 찾아 헤맸지만 결국 이놈을 자르게 되었다. 희끄무레한 게 다 똑같잖아? 그래, 가까이에서 보면 이것은 포도고 저것은 포도잎이지, 하면서 자르는데 수치가 헷갈려서 거듭 칠판을 확인해야 했다. 이 재단 작업을 할 때에는 깔지를 갈고 신발을 벗은 다음에 하는 게 좋다길래 그렇게 따라 하다가 장 수 헷갈려서 사람들에게 묻고 직접 보러 갔다오고를 반복했다. 외워라 장폭은 2,500㎜이 2개. 2,700㎜이 하나다. 2,700㎜은 커튼받이로 올라가는 놈이다. 문제 1) 앞의 장폭을 다 바르면 3폭에 붙일 장폭이 일부밖에 남지 않는데 그 풀 묻은 무거운 것을 들고 커튼받이를 잘라야 하는가? 보를 덮는 장폭을 보 밑 10㎜을 자르고 다시 붙여야 한다던데 맞나? 아무튼 이 붙인 주황 꽃무늬 장폭은 검사도 맡지 않고 떼어 버렸다. 북북 찢어 버렸다. 심기가 불편하고 그럴 때 대체하던 담배 대신…지원서를 쓰는 것인가?
다음주 월요일에 시험 신청이 있다. 사람들이 다들 신청하고 수업 온다고 해서 나도 그러겠다고 했다. 사람들이 선생더러 물었다. 사람마다 시간을 주고 실습하나요? 우리의 선생은 다음주부터 오전 오후로 나뉘어 수업을 할 거냐는 질문에 한숨을 쉬며 답했다.
"여러분은요. 리셋되었어요. 전부 리셋되었어. 다음주부터 다시 할 거예요."
1주일을 가르친 보람이 없다는 뜻이다. 지식이 축적되지 않고 산발하고 있다. 아마 다들 같은 문제를 경험하는 것일까? 실크는 2,500㎜ 두 개. 장폭은 2,500㎜, 2,700㎜. 소폭은 2,000㎜이 다섯개, 2,400㎜이 세 개? (봐봐라 오늘 배운 것도 까먹는다. 3장 맞다), 800㎜ 1장(두 개 나눠 문으로 한다던데 못 해봄) 그리고 그 전에 하는 초배는 40장을 8장 힘받이, 밀착초배 11장 100㎜,100㎜,100㎜,50㎜,50㎜,로 자르기, 도수초배 하고. 공간초배용 15장 1/2해서 삼각형 만들기. 운용지 4장 반 접어서 칼등만큼 자르기. 초배 작업 재단 순서 기억하기, 초배 작업 시공 순서 기억하기. 그리고 기억하기. 그리고 기억하기.
그리고 기억하기…그러나 시각도 촉각도 맥을 못추리고 오직 잘하는 건 풀 섞고 풀바구니 닦는 것 밖에 없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