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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rant lulu Feb 01. 2024

우리는 누구나 예술가

feat. 카페 그림

지난 연말이었다. 몇 년을 다니며 이런 적은 한 번도 못 봤는데? 도어를 활짝 열어젖히자 정면으로 내달리던 시선이 아래로 꽂혔다. 시원하게 일자로 뻗은 서비스 바의 아래에는 덕지덕지 그림이 붙어 있었다. 카페의 브랜드 로고를 형상화하거나 떠오르는 이미지를 심상화한 그림들이 아무 맥락 없이 나열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아마추어가 분명한데.


저어, 이거 무슨 그림이에요?

아아, 네에. 손님들이 그리신 거예요. 


바리스타는 사뭇 호기심 어린 나의 눈빛을 읽으며 짧지만 정성껏 답해 주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겹쳐서 카페에 이벤트가 있던 모양이다. 진작 알았더라면 나도 참여를 할 것을... 하얀 복사지 한 장에 심을 돌려서 색연필을 한껏 그어대면 내 작품도 저기에 전시될 것을. 내가 그리면 저것보다는 잘 그리겠다. 어린아이스러운 욕심이 앞선다.


그런데 그건 그 순간의 생각이고. 뒤로 물러나 그림들을 훑어보니, 생각이 완연히 달라진다.


내 작품이 진열될 것은 자명하다. 손님의 그림은 감사의 의미로 몽땅 디스플레이할 것이므로. 그러나 내가 그리면 다른 작품들보다 나을까? 아아니이! 얼핏 내가 그린다고 감을 잡았을 때, 저들보다 잘 그릴 자신이 없었다. 그 작품들은 정말 창의적이었다! 프로가 흉내 내지 못할 원초적인 창조성(primative creativeness)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하나의 모티브로 가지고 그리는데도 어쩜 제각각 아이디어가 풍부한지. 기발하다! 누구의 작품인지 일일이 인터뷰를 하고 싶다. 어떤 의도로 이 컬러를 집었어요? 이건 뭘 그리신 건가요? 여기에 어떤 이야기를 담으셨나요? 그림을 선물한다면 누구에게 주고 싶으세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한 것 같아 보인다. 그림에는 각자의 내러티브가 그려져 있었다. 어른도 아이가 되어 그린 것처럼 나이를 초월해 보일지라도. 상단의 바에 붙어서 바닥까지 비추는 눈부신 조명도 그림에서 뿜어 나오는 눈부심보다 밝을 수는 없었다.



우리는 누구나 예술가이다.



누가 한 말이더라? 워낙 여러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말을 여러 번 인용해서 우려내는 느낌이 듦으로 원조를 밝히려 애쓰지는 않겠다. 아무코롬, 저 말에 백 퍼센트 공감한다. 


그러자 나 자신도 완벽한 아마추어라 뻔뻔하게 자신감이 솟아오른다. "나도 예술가이다." 그림을 그리는 데 절대 자긍심과 자존감을 치켜세울 것!


지금껏 카페 안을 데코했던 멋들어진 오브제들이 모두 별로였네. 우리 누구나가 그린 순수한 작품이 내가 본 가장 예술적인 오브제였네. 이런 극단적인 생각들이 뒤를 이었다. 카페를 디자인한 프로꾼들이 들으시면 왕왕 서운해하시겠다. 그럼에도 이 말은 끝끝내 고수해야겠다. 



우리는 누구나 예술가입니다.
당신도 그중의 한 사람입니다.

 



p.s. 당시에 찍었던 사진을 올리지는 않겠습니다. 카페의 상호가 그대로 노출이 되는 바, 저마다 자신의 예술성을 드높여 상상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참에 무엇이라도 그려서 직접 예술가가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행복을 즐기시면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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