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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피아니스트 Feb 13. 2022

서른 즈음에

청춘이라는 축복받은 시기에

최근에 소설 <바람의 그림자>의 작가로

유명한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또 하나의

소설 ‘마리나’를 읽게 되었다.


10여 년 전쯤이었을까

독일에 있던 한국 문화원에서 그의 소설

<바람의 그림자>를 우연히 발견했던 것이.


그때 읽었던 ‘바람의 그림자’가 굉장히

흥미로웠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기에

기회가 된다면 작가의 다른 소설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지금은 해외에서도 전자책이나 오디오북 등 한국어로 된 책을 구할 수 있는 방법들이 더 다양하고 많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해외에 살면서 원하는 한국 책들을 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악기를 하며 이사를 하게 될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하는 나로서는 이사할 때 큰 짐이 될 수 있는 책들을 사다 모으는 일은 되도록 자제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보니 자연스럽게 읽고 싶은 책이 생겨 찾아보다가도 그만두는 일이 많아졌고 언제부터인가는 기억에서 잊혀가는 책들도 점점 많아졌던 것 같다.


하지만 1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을 돌아서

다시 이렇게 그의 작품을 만나게 된 것을 보니 사람이 책을 선택하는 것뿐만 아니라

책이 사람을 선택하기도 한다는 작가의

의미심장한 말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소설 <마리나> 작가가 그의 나이 서른셋 무렵에 집필한 책으로 청소년을 위한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글의 서문에서 그는 <마리나>가 그가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는 말과 함께 ‘청춘이라는 축복받은 시기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같았다는 말로 청춘을 떠나보내는

심정을 고백하고 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처음 듣게 된 것은 23살 무렵이었다.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하다가 선배가 무심코 건넨 말. “나이에 ‘ㅅ’ 받침이 들어가면

20대 중반에 들어서는 거래” 하던 선배의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서 맴돌았다.


그렇게 틈틈이, 가끔, 자주 꺼내 듣던

이 노래를 살다 보니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한참이 지나서 다시 우연히 듣게 된 것이 새해를 한 달 앞둔 작년 12월.


이제는 가사가 정말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조금은 두렵고 싱숭생숭한 가을을 보내고 또 꿋꿋하게 겨울을 버텨내고 나니

올해 어느덧 서른을 맞이했다.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생각해와서일까

아주 섭섭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다. 오히려 10대를 보내며 우울해하던 10년 전 보다도 덤덤한 모습에 나조차도

조금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간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어김없이 돌고 또 돌며 세월이 가는 내내

매번 다른 느낌으로 다시 찾아오는 것이

계절이다.


추운 겨울엔 여름을

여름엔 추운 겨울을 다시 그리워하듯

변덕스러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하나하나 뜯어서 살펴보면 모든 순간이 정답고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20대 초반, 제각기 띄엄띄엄 떨어져 위치한 유럽 대학의 건물들 때문에 제대로 된

캠퍼스 생활을 한 번도 못해보았다 늘 아쉬운 소리를 했었는데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며 서른 살까지 이렇게 캠퍼스에

머물게 된 걸 보니 소원이 늦게라도 이루어진다는 말은 정말인가 보다.


다시 곧 개강을 앞둔 2월,

오랜만의 여유로운 캠퍼스 산책 속에서

어렴풋이 다시 봄기운이 느껴지는 듯하다.

살포시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따사로운 봄바람에 오늘도 또 하루 멀어져 갈 청춘에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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