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쇠에 가부장적이었던 아버지는 군것질을 좀처럼 허락하지 않으셨다. 특히 ‘불량식품’이라는 표현으로 내 요청을 싹둑 잘라버렸다. 반항심리인지, 금지된 무언가에 대한 호기심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늘 군것질에 진심이었다. 엄마가 아침마다 손에 쥐여 준 버스비를 매점에서 탕진하고 걸어서 하교하는 일이 허다했다. 달달하고 새콤하고 바삭하고 쫄깃하고 짭짤하고 매콤한 맛들의 향연. 나는 도저히 그 유혹들을 이겨낼 수 없었다.
학교에 가면 쉬는 시간마다 매점에서 아버지가 ‘불량식품’이라 일컫는 것들을 구경했다. 버스비는 1000원 남짓이라 많아야 3개 정도의 간식을 살 수 있었는데 나는 아껴 먹는 방법을 모르는 아이였다. 수업은 6교시까지 있었고 졸리고 지루한 오후에 간식이 없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최대한 버티다 급식을 먹고 바로 매점으로 달려갔다.
잔돈이 남지 않게 야무지게 조합한 간식들을 주머니에 넣고 매점 밖을 나올 때의 기분이란…. 햇빛은 축복 같고 온몸이 밝고 따듯한 기운으로 가득 차서 둥실둥실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입꼬리를 오리 궁뎅이처럼 실룩대며 교실로 돌아가는 길은 어떻게 먹어야 맛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다. 선택지는 다양했다. 친구들 몰래 숨어서 혼자 먹기, 꺼내기 쉽게 주머니에 털어놓고 수업시간에 한 개씩 몰래 먹기, 친구들에게 선심 쓰듯이 하나씩 나눠주면서 왕처럼 먹기, 사자마자 입에 가득 넣고 마구마구 먹기, 감질나게 쉬는 시간마다 조금씩 먹으면서 음미하기 등이 있었다.
그중에서 선생님 몰래 수업시간에 먹는 게 가장 좋았다. 부모님이 학교 선생님인데 수업시간에 ‘감히’ 그런 짓을 한다는 배덕감이 짜릿했다. 도박에 빠진 사람처럼 ‘이러면 안 되는데’와 ‘이번이 마지막이야’를 오가며 도전했다. 몰래 먹다 걸려서 자로 손바닥을 맞거나, 교실 뒤에서 손들고 서 있거나, 복도에 나가 서 있기 같은 벌을 받아도 키득키득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이런 내게 치킨은 좋아하는 맛의 집합체인 궁극의 음식이었지만 버스비로는 먹을 수 없는 가격이었다. 어찌어찌 돈을 모아도 혼자서는 다 먹지도 못하는 양이었고 남은 치킨을 아버지가 발견하면 혼날 게 분명했다. 치킨은 학교에서처럼 몰래 먹을 수 없는 하늘의 별 같은 음식이었다.
항상 치킨을 먹고 싶었지만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부모님은 나보다 장녀인 누나의 요구를 잘 들어주는 편이었다. 배달음식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렇기 때문에 치킨을 쟁취하려면 반드시 누나를 조력자로 만들어야 했다. 이건 상당히 어려웠는데, 그 이유는 하루가 멀다 하고 누나와 싸웠기 때문이다. 집은 콜로세움이나 다름없었다.
운동 애호가 아버지와 운동부 출신 어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누나는 초등학교 내내 반에서 키가 가장 크고 운동 신경도 좋았다. 체육 선생님의 스카우트를 받아 도민체전에 투포환 선수로 출전할 정도였다. 이런 누나는 나와 시비가 붙으면 육탄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별명이 갈비뼈를 뜻하는 ‘깔비씨’였을 정도로 왜소했던 나는 굴욕적으로 누나에게 깔려 엉엉 울며 발버둥치는 경우가 잦았다.
치킨이 먹고 싶을 때조차 누나에게 부탁하는 모양새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투는 대단히 띠꺼웠다. 예를 들어, “야, 치킨 먹고 싶지 않냐?” 라던가 “아, 치킨 땡기네”라고 혼잣말을 하며 주변을 맴돌았다. 싸가지없는 동생이 치킨을 먹고 싶을 때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먹고 싶긴 하다는 뉘앙스를 보여주면서 이것저것 시키거나, 알겠다고 해 놓고 아버지가 퇴근하시면 갑자기 먹기 싫어졌다고 말하는 식으로 농락했다. 그러면 약이 바짝 올라 아버지 몰래 누나에게 시비를 걸었는데 누나는 철저히 아버지의 시야에 머물거나 방문을 잠가 날 차단했다. 이런 경험이 몇 번 쌓이다 보니 내 말투는 더욱 띠꺼워졌고 치킨 쟁탈 미션은 극악의 성공률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야, 오늘 치킨 먹자고 하자.” 마늘과 쑥만 먹고도 버틸 곰 같은 누나가 웬일로 치킨을 먹자고 했다. 치킨을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반사적으로 군침이 흘렀지만, 속마음과 다른 대답이 나왔다.
“싫은데?”
그렇다. 우리는 냉전 중이었다.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고 싶었던 나와 드라마를 보고 싶었던 누나가 충돌해서 대판 싸웠고 결국 누나가 드라마를 보고 나온 뒤였다. 아마 치킨을 먹자는 제안은 아빠가 오기 전에 냉전을 끝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게 아니라 드라마에서 치킨을 먹는 장면이 나와 먹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중요한 건 싸운 당일에 치킨을 먹고 싶다고 누나가 ‘부·탁’ 했다는 거였다.
너 잘 걸렸다 싶었다. 아빠의 퇴근 시간을 떠올리며 어떻게 복수할지 구상을 순식간에 끝냈다. 지금까지 받은 굴욕과 수치와 설움을 되돌려주고 싶었다. 그 시작을 위해 조롱이 섞긴 눈빛과 자신만만한 미소를 띄고 누나를 쳐다봤다. 내 예상은 누나가 당황하고 짜증을 내고 동시에 나에게 매달리는 거였다. 그런데 누나가 말도 안 되는 대답을 해버렸다.
“싫음 말고.”
쿨하게 돌아섰다. 아쉬울 게 전혀 없다는 표정. 이건 계산 밖이었다. 나는 치킨을 먹어야 했다. 누나의 똥 씹은 표정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야 하는 운명이었다. 이렇게 시시하고 허무하게 끝나서는 안 됐다. 방으로 향하는 누나의 뒷모습은 공포스러운 어떤 선고 같았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야, 먹고 싶다며. 아빠 오면 먹자고 하던가”
아. 이건 망했다. 멘트부터 말투, 목소리까지 패배 선언이었다.
“니가 싫다며”
멈추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대답하는 누나. 말투에 조롱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 아닐 거다. 쾅. 문이 닫히고 내 자존심도 다쳤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수치심, 굴욕감, 당황스러움 기타 등등…드응신새끼.
그냥 먹자고 하지. 괜히 시비 걸다가 치킨도 못 먹겠네. 자책이 밀려왔다. 치킨이 너무 먹고 싶었다. 나는 배고팠다…
“야. 치킨 먹고 싶다고”
닫힌 방문에 대고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이제 전세 역전. 적국의 처우를 기다리는 전쟁포로나 다름없었다.
“말 똑바로 안 해?”
적국의 암묵적 요구사항은 존댓말과 호칭 부르기였다. 이것만큼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치킨이 날 부르고 있었다.
“치킨 먹고 싶다고. 요누나”
마지막 자존심으로 고로 문장 끝내고 ‘요’와 ‘누나’를 붙여 말했다. 찌질해도 어쩔 수 없다. 이건 내 정신 건강을 위한 선택이었다. 방문 너머로 누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패전국의 수치, 나중을 기약하며 이를 꽉 깨무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럼 양념 반 후라이 반으로 니가 주문해라잉”
난 미용실에 가도 어떻게 자를지 엄마가 대신 말해주고, 음악 수행평가 때는 눈을 꼭 감고 바들바들 떠는 부끄럼쟁이였다. 전화 주문도 대본을 적고 충분히 연습한 후에나 했는데 이 잔인한 기집애는 그걸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치욕을 안겨주었다.
“이?”
대답도 못 하고 부들대고 있는데 문을 열고 낄낄거리는 표정으로 대답을 강요하는 누나. 어디까지 할 셈인지 지독하다.
“ㅇ ㅡ ㅓ”
응도 아니고 어도 아니고 엉도 아닌 대답을 대충 흘리고 나도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기분이 나쁜데 기분이 좋다. 기분이 좋은데 기분이 나쁘다. 치킨…먹을 수 있다. 방에 들어와서 종이를 꺼내 주문 멘트를 적었다.
안녕하세요. 거기 또래오래죠. (대답)
여기 덕성그린아파트 102동 201호인데요. (쉼)
양념 반 후리이드 반 주문할게요. (대답)
현금이요 (대답)
네. 감사합니다.
기분이 나쁜데 기분이 좋다. 기분이 좋은데 기분이 나쁘다. 치킨…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