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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의 J Sep 06. 2022

이름이 눈 부시는 순간

내 목소리의 파동이 네게 닿아 눈 부시게 빛나던 그 때에 대하여 

2020.07. 



삶의 첫 순간, 눈을 뜨고 바깥 세상을 마주한 그 때를 기억한다면 처음 들었을 말이 무엇일까? 아마 부모님이 벅찬 감정을 담아 불렀을 우리의 이름이 아닐까. 

우리는 태어나 하나의 이름을 받았을 때 인격체로 인정되고 타인과의 관계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이름. 혼자 존재할 수 없는 것.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소리 내어 불려질 때, 그 소리의 파동이 다시 내게 닿을 때, 우리가 그만큼 가까이 있구나를 알 수 있을 그때서야 의미가 생기는 것. 


나는 이름에 대해 고찰할 때면, 나의 이름보다 너의 이름을 떠올리고는 한다. 그 이름 세 글자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하여. 그 둥그런 세 글자를 혀를 굴려 발음할 때 네가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어땠는지.

김애란의 <잊기 좋은 이름> 이라는 책을 무심코 둘러보다가 책의 맨 마지막 장의 한 문구가 강렬하게 뇌리에 박혔다.

"당신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다가 눈부신 순간을 맞이한 적 있나요?"

그 문장 한 마디에 나는 너의 이름 세 글자를 발음하며 수많은 감정을 느끼던 순간으로 강제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2017년. 스무살과 새내기라는 낯선 호칭으로 걱정 반과 설렘 반으로 인생의 두번째 막을 시작하던 그때로. 처음 도착한 캠퍼스를 같이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시험공부에 지칠때면 어두운 교내를 정처없이 산책하던 그 때로.  나는 유독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참 좋았다. 딱히 할 얘기가 없어도 우리가 대화중이었어도, 이미 네가 나를 보고 있어도 나는 시도때도 없이 제각각 다른 높낮이와 발음으로 네 이름을 불렀다. 유난히도 둥그런 네 이름은 언제나 끊어부르기보다 한번에 이어 부르는 것이 좋았다. 


돌이켜 생각했을 때 네 이름을 끝없이 부르고 싶었던 것은 내 옆에 계속 있는 너를 확인하고 싶어서, 너를 부르는 나를 돌아보고 알아주었으면 해서, 너를 사랑해서 였다. 그 때는 너를 부를 때 퍼지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 행복은 내 부름에 대답해주는 너의 존재에 느꼈던 안도감이었다. 너와 함께한 긴 시간들에서 수천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자주 불렀을 그 이름에서 나의 눈부셨던 순간이 있었다. 혀를 굴려 한 음절씩 음미하면서 너를 부를 때 그 3개의 음절 안에 담긴 너의 모든 것을 떠올리곤 했던 순간들. 이제서야 나는 그게 나의 사랑 고백이었음을 깨닫는다. 나를 돌아봐줘. 웃어줘. 옆에 있어줘. 대답해줘. 고마워.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너의 이름 3글자만을 부르는 것만으로 너에 대한 감정들이 쏟아져서 아찔하게 눈 부시던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나는 이제 이름이란, 홀로 존재해서는 의미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름이 불리기 위해서는 부르는 사람과 불리는 사람,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 3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이름의 어원인 '이르다'는 '움직이거나 흘러서 가 닿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만큼, '이르다'라는 단어 자체에서 이름의 주인과 그 이름이 흘러가 닿는 사람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름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 그 이름의 주인을 아껴주고, 보고 싶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불렀을 때에서야 의미가 생긴다. 부르는 사람과 불리는 사람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이름이란 완전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이제는 같은 감정으로 부를 수 없을 그 이름을 나는 여전히 떠올리고는 한다. 그러니 벅차는 감정을 담아 그 사람을 불렀을 때 마주한 시선이 너무 눈부셔서 눈물이 맺혔던 그런 순간에 대하여, 나는 기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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