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01
모든 것에는 때가 있었다.
특히 관계가 아직 정립되지 않은 초기의 이성 간에는 자주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받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두 번째 만남에서도 다음 약속을 잡지 않았고, 그 후로도 별다른 약속을 만들지 않는 것은
누가 보아도 ‘관심이 없는 건가?’라는 의심을 품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호기심이나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스스로가 준비가 되었는지 지금이 안정적인 상황인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상대방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확신부터 들지 않았기에 다음 행동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2023년은 내 삶에 많은 변화가 몰아친 해였다.
그래서 그 변화를 수습할 시간과 여유가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본 그 사람이라면 이런 템포를 이해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인연이 아닌 것이리라 여겼다.
두 번째 만남 이후, 1주일이 흘렀다. 간간히 안부를 묻는 문자를 주고 받았다.
그 날의 만남은 잔향(殘響)으로 남았다.
소리가 그친 뒤에도 잠시 동안 남아 들리는 메아리나 울림
어떤 일이나 감정이 끝난 뒤에도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는 여운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그 느낌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조금은 편안하고, 조금은 안정되는 기운.
굳이 비유하자면 숲속에서 맡는 피톤치드 같은 느낌이었다.
새로운 1주일을 보내고 있을 즈음, 만나자고 제안을 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한 번 뵐까요?"
"네, 그래요. 어디서 보죠?"
"가벼운 옷차림으로 남산 둘레길 가는 건 어떠세요?"
"네 좋네요."
두 번째 만남이 있고 2주일이 지나서야 세 번째 만남을 가졌다.
만남 장소인 동국대학교 앞으로 갔을 때 그 분은 양손에 물병을 하나씩 들고 서있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편하게 걸으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친 독립서점에서 책을 잠깐 읽기도 했다.
그리고 남대문 시장에서 갈치조림을 먹었다.
온누리 상품권으로 결제하는 내 모습에 신기해하는 듯 했다.
서로 걷는 것을 좋아해서 남대문 -> 시청 -> 종각 -> 광화문을 거쳐 서촌까지 이르게 되었다.
서촌에서 간단하게 칵테일을 한 잔씩 했고, 술을 깰겸 종로3가까지 걸어간 뒤 헤어졌다.
많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내가 전하고 싶었던 말은 하나였다.
“상대방의 행동이나 생각에 휘둘리기보다는 자신의 마음과 생각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다.”
상대방도 그 말에 동의를 하였다.
그렇게 세 번째 만남이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