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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Self (3)

by 강준

집을 계약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돈을 내는 것이 어려울 뿐...

일을 저질러 버리고 나서야 고민해야 할 포인트는 많았다.


1) 중도금, 잔금 시점에 맞춰서 어떻게 돈을 마련할 것인가?

2) 자금계획서 제출.

3) 세입자 전세금 반환을 위한 대출 가능 여부 확인.

4) 등기 절차

5) 인테리어는 어떻게 할 것인가?

6) 이사 시점은?

7) 상견례, 결혼식, 신혼여행 등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1번이었다.

사실 집을 살 때 내가 가진 돈이 100이라면, 80에 집을 사는 것이 순전히 자산 운용의 측면에서는 안전할 것이다. 하지만, 레버리지를 극대화하는 '우리나라'의 정서 상 80이 아닌 200을 사는 것이 올바른 선택(?)처럼 보였다.


우리는 늘 손에 쥔 돈보다 앞선 시간을 계산하며 살아왔다. 아직 들어오지도 않은 미래의 소득까지 미리 가정해 놓고, 소비는 가능한 한 최소로 줄인다는 전제 아래에서 모든 계획을 세웠다. 그러다 보니 작은 변수 하나만 생겨도 전체 계획이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안정적이라 믿고 싶었던 삶의 설계는 실은 늘 불안 위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매일같이 엑셀로 숫자를 입력하고 경우의 수를 돌려보며 고민하던 순간들이 숨 막히게 다가온다. 한 칸의 숫자가 바뀔 때마다 마음도 함께 출렁였고, 걱정은 언제나 계산보다 앞서 있었다. 숫자로 미래를 통제하려 했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더 크게 옥죄어 오는 기분이었다

.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또 다른 생각이 든다. 그때 조금 더 대출을 받아서 높게 선택을 해도 되지 않았을까?...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인간의 욕심과 후회가 얼마나 쉽게 자리를 바꾸는지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돌아보며, 욕망을 다스리고 마음을 조율하는 일이 결국 살아가는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고민을 가지고 가까운 지인에게 털어놓으면 너네가 말로만 듣던 영끌족아냐?라고 장난기 섞인 놀림도 받았다. 그럼에도 무리를 한 이유는 둘 다 부동산 투자에서 쓴 맛을 경험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20대 중반에 잠실에 신축 오피스텔을 분양 받았지만, 집 값은 오르지 않고 대출이자만 다달이 내고 있다. 물론 월세도 같이 올라준 덕에 소소하게 수익이 생기고 있지만, 이 돈이 묶여버린 바람에 더 큰 투자를 할 기회들이 사라진 것이 늘 아쉬움으로 있었다.
여자친구 역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이른바 ‘그 시절’에 서울 외곽의 구축 아파트를 고점에서 매수했다. 그때는 오르는 가격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기였고, 조금만 늦어도 더 비싸질 거라는 불안이 선택을 재촉하던 때였다. 그러나 이후 전세 시세가 계속 하락하면서, 세입자가 바뀔 때마다 보증금을 일부씩 돌려줘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집은 그대로인데, 현금은 계속 빠져나가는 구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2월 무렵 계약을 마쳤지만, 이미 세입자가 거주 중이었기 때문에 잔금은 6월, 실제 입주는 9월로 예정되어 있었다. 시간적 여유는 어느 정도 확보된 상태였다. 그 사이, 무엇보다 먼저 정리해야 할 문제는 결혼이었다.


처음에는 10월 추석 무렵으로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금 문제뿐 아니라 여러 현실적인 고민들을 차분히 따져본 끝에, 가족식을 5월로 앞당기기로 결정했다. 최대한 빠르게 가족식을 마쳐야 등기와 인테리어, 이사, 신혼여행까지 이어지는 일정이 무리 없이 순서대로 흘러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삶의 중요한 사건들이 마치 도미노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유난히 실감했다.


결정이 서자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3월 말, 각자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 5월에 가족식을 올리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4월에는 상견례를 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이후에는 말 그대로 손품을 팔며 가족식에 어울릴 만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찾았다. 여러 곳을 비교한 끝에 마음에 드는 한 곳을 정해 통째로 예약을 해 두었다. 하나씩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었지만, 그만큼 숨도 가빴다.


가족식을 어떻게 치를지 구상하며, 먼저 친척들에게 보낼 모바일 청첩장부터 만들었다. 빠르고 경제적인 방법을 택하고 싶어 무료 홈페이지 제작 사이트를 이용했고, 초대장은 직접 손으로 그린 그림과 글로 채웠다. 그런데 완성된 화면을 바라보니 어딘가 빈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남들처럼 웨딩 사진을 멋스럽게 담아 넣은 것도 아니고, 그림과 글만으로는 조금 허전해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고민하던 끝에, 우리는 웨딩 사진을 찍기로 결정했다.


아참!

웨딩 반지도 없이 사진을 찍어도 괜찮은 걸까? 그 질문 하나로 우리는 곧바로 반지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흔히 떠올리는 백화점 브랜드 대신, 디자이너 브랜드 몇 곳을 중심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여러 번 돌아보고 오래 고민할 시간은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두 번째 방문에서 우리는 그대로 결정을 내려버렸다. 가장 심플하면서도, 우리 형편 안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운도 조금은 따랐다. 금값이 급등하기 전이었고, 마침 여러 이벤트가 겹쳐 생각보다 좋은 조건으로 살 수 있었다. 흔히들 선택하는 백화점 브랜드 가격의 4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비용으로 우리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반지를 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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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웨딩 촬영이었다.

지금까지 현실적인 선택들을 해 왔다고는 하지만, 여자라면 누구나 웨딩 사진이나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조금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남자들은 대체로 최대한 간결하게 치르는 쪽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 나의 예상과 달리, 여자친구는 셀프로 간단하게 찍자고 먼저 제안했다. 속으로는 당연히 ‘콜’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쉽게 결정해도 괜찮은가? 나중에 후회하진 않을까? 하는 망설임도 뒤따랐다. 결혼은 한 번뿐이라는 말도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시간이 없다’는 가장 현실적인 핑계에 기대어 셀프 웨딩 촬영까지 하게 되었다.


문제는 드레스였다. 따로 준비된 웨딩드레스 같은 것이 없었기에, 급하게 당근마켓을 뒤져 그럴듯한 드레스 한 벌을 구했고, 나머지는 각자 가지고 있던 옷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그리고 20분 동안 셀프로 촬영하는 공간에 들어가, 우리 나름의 포즈와 자세를 이것저것 바꿔 가며 숨 가쁘게 셔터를 눌렀다. 보통은 앨범도 만들고, 수차례의 보정 작업을 거친 완성된 결과물을 갖는다지만, 우리는 그저 우당탕거리며 찍은 사진들 가운데 날것 그대로의 사진 두 장만을 건졌다. 나머지 사진은 추가 비용을 더 내야 했기에 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진과 당근 구매 비용을 모두 합해 약 10만 원으로 웨딩 사진을 찍게됬다.

돌이켜보면, 뜻 깊은 기억이나 추억은 비용의 크기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우리가 얼마나 진심으로 몰입했고 마음도 살짝 졸여가며(?) 참여했는가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준비된 것은 많지 않았지만, 우리는 가장 적극적으로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갔고, 그래서 그날은 오히려 오래도록 남을 추억이 되었다.


화면 캡처 2025-11-30 083709.jpg 셀프로 제작한 알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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