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가족식 날짜가 다가왔다.
그 무렵 가장 큰 고민은 단 하나였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보통 결혼을 하면 청첩장을 돌리고, 친구들과 식사를 하며 결혼 소식을 나누고, 예식에 초대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애초에 결혼식을 하지 않기로 했기에, 축의금이나 형식적인 절차에 대한 생각 자체를 내려놓은 상태였다.
그렇다고 아무 말 없이 지나간다면, 뒤늦게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서운해할 것도 분명했다.
메신저로 “우리는 결혼식을 하지 않기로 했어”라고 설명하는 것도 왠지 모르게 쉽지 않았다.
여러 방향으로 고민하다가, 결국 가장 단순한 방식이 가장 진심에 가깝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자.
그렇게 우리는 친구들에게 하나둘 연락을 돌려, 결혼 사실을 알리는 작은 모임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초지종을 차분히 설명하고, 식에 초대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작은 선물도 건넸다.
모든 친구를 다 만날 수는 없었기에, 거리가 먼 친구들에게는 조심스럽게 메시지로 소식을 전했고, 정말 가까운 몇몇 지인들만 가족식에 초대하기로 했다. 누구를 부르고 누구를 부르지 않는 일 하나까지도 쉽게 결정할 수는 없었지만, 최대한 우리의 방식에 맞게 그리고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신중히 선택했다.
가족식은 약 5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려 진행했다. 좌석 배치부터 메뉴 구성까지 모두 직접 고민하며 정했다. 어떤 분이 누구와 같은 테이블에 앉으면 좋을지 하나하나 떠올려가며 자리를 배치했고, 음식과 음료도 테이블별, 사람별로 미리 주문했다.
작은 예식이었지만, 준비 과정은 결코 작지 않았다.
모든 준비를 셀프로 하다 보니 당일 아침은 말 그대로 전쟁 같았다.
예비 신부는 새벽부터 화장을 받으러 나섰고, 나는 집에서 혼자 옷을 갈아입고 마음을 추슬렀다.
꽃집에 들러 직접 고른 꽃을 한 아름 안고 식당으로 향했다.
건물 입구에는 손수 만든 안내 표지판을 붙였다.
식당에 도착해서는 직원들과 동선을 다시 확인하고, 하객이 오면 어떻게 안내할지, 음식과 음료는 어떤 순서로 나갈지를 다시 한번 꼼꼼하게 상의했다.
그렇게 하나둘 사람들이 도착했고, 비로소 우리의 식이 시작되었다.
모두 사회자를 기대한 듯 했지만,
사회는 내가 맡았다.
일부 어른들께서는 “왜 신랑이 사회까지 직접 보느냐”고 의아해하셨지만, 이미 결혼식을 하지 않겠다는 선택부터가 기존의 틀을 벗어난 결정이었다.
그렇다면 이 의미 있는 날만큼은 누군가에게 맡기기보다 우리가 직접 우리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었다.
강연을 오래 해온 것이 빛을 발휘했다. 사회는 자연스럽게 발표하듯 흘러갔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어른들의 표정도, 식이 이어질수록 서서히 풀어졌다. 모든 순서가 마무리될 즈음에는 처음의 걱정과는 달리 따뜻한 박수와 미소가 남아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신랑과 신부가 서로에게 쓴 편지를 읽는 시간이었다.
미리 써온 글을 마주 앉아 천천히 읽어 내려가며, 서로를 향한 마음과 앞으로의 다짐을 솔직하게 전했다.
많은 분들이 그 편지 낭독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고 말해주었다.
화려한 연출도 성대한 무대도 없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누구보다 진심이 또렷하게 전달된 순간이었다.
우리는 식장이 장시간 대여된 점을 활용해, 하객 한 분 한 분을 직접 찾아가 5분에서 10분씩 대화를 나누고 작은 선물을 전했다. 바쁘게 스쳐 지나가듯 인사하는 대신, 일부러 시간을 충분히 들였다. 얼굴을 마주 보고 웃으며 안부를 나누고, 고마운 마음을 직접 말로 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의 가족식은 흔히 떠올리는 ‘결혼식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화려하지도 않았고 규모가 크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공기, 사람들의 표정, 그리고 우리가 직접 건넨 말과 마음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장면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