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올드보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내 머릿속에 뿌리 박혀 있는 고정관념을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나에게 충격적인 소재와 내용의 영화들은 틀에 박히지 않은 다른 사고를 하게끔 도와준다. 그래서 상상도 못 할 세계관을 가진 판타지물을 좋아하고, 현실 속에서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예를 들면, 상류층이나 범죄를 비롯한 지하세계 이야기. 그래서 어느 정도 충격적인 이야기에 면역이 생겼다 생각했는데, 올드보이는 지금껏 보았던 영화들 중 가장 상상 이상이였다.
군만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 <올드보이>는 2003년에 개봉했다. 그때 당시 나는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꼬맹이였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올드보이를 보지 않았지만 난 최민식 배우의 폭탄머리와 선글라스, 군만두 등을 알고 있었다. 도끼를 가지고 좁은 복도에서 싸우는 명장면도. 명작을 참 좋아하는 나로서, 남들이 말하는 명작 영화는 다 보려고 한다. 명작들을 머릿속에 다 저장해놓았다가 영화를 볼 마음가짐과 환경이 갖춰지면 하나씩 재생 버튼을 누른다. 하지만 황당하게도 <올드보이>는 내 머릿속에 없었다. 티비의 주입식 교육 덕분인가, 올드보이를 다 봤다고 뇌가 인식했던 같다. 정작 내가 알고 있는 건, 최민식의 외형과 아무 이유 없이 최민식이 어딘가에 갇혔고 군만두가 유일한 밥이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얼마전에야 제대로 올드보이를 보게 되었다.
영화 속 올드보이는 오대수이다. 내가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아버지 나이 때의 진상 아저씨이다. 술 먹고 경찰서에서 진상을 벌이던 오대수는 갑자기 어디론가 끌려간다. 영문도 모른 채 갇힌 오대수는 점점 미쳐간다. 온몸에 개미가 기어 다니고 자해를 한다. 그를 잠재우는 건 어디선가 흘러오는 하얀 기체뿐이다. 그렇게 15년이 지나고 그는 여행가방 속에 담겨 세상 밖으로 나온 게 된다. 그동안 자신의 아내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했고 남편인 자신이 유력한 용의자가 되었으며, 딸은 해외로 입양돼 양부모 밑에서 자라게 된다. 오대수는 자신과 가족의 삶을 망가트린 인간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초반에는 미스터리 코믹 영화인 줄 알았다. 피식하고 웃음이 나오는 장면들이 많다가 '이우진'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급격히 무거워진다. 잠시 잊고 있었던 오대수의 15년 인생이 떠오르며 이우진이 도대체 왜 그를 가두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곁에 있는 '미도'도 의심스러워진다. 단지 오대수와 사랑에 빠진 여자로 나오기엔 미도의 존재가 눈에 띄었다. 영화는 오대수가 이우진의 누나를 기억해내면서 전말이 드러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부분 나라에서 근친상간은 죄악이다. 남매가 서로 사랑하는 것도 충격인데 아빠와 딸의 사랑이라니. 물론 둘의 사랑은 다분히 의도된 결과이다. 이우진이 최면술사를 이용해 오대수의 딸인 미도와 오대수에게 최면을 걸어 둘이 사랑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대수를 15년 동안 가둔 이유는 딸인 미도가 오대수와 사랑할 수 있을만큼 자라기를 기다린 것이다. 이우진이 이 모든 걸 계획한 이유는 누나와의 관계 때문이다. 고등학교 시절, 이우진은 자신의 누나와 부적절한 행위를 하는 모습을 오대수에게 들키게 된다. 오대수는 이걸 가장 친한 친구에게만 말하고 서울로 이사 간다. 그 이후, 누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이 퍼졌고, 누나는 상상임신을 하게 된다. 자신의 자식이자 조카가 생기게 된 상황에 누나는 우진 앞에서 자살을 하고 우진은 이 모든 걸 오대수의 혀 탓을 하게 된다. 사실 이우진은 진심으로 누나의 죽음이 오대수의 탓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 같다. 그저 사랑하던 여자이면서 하나뿐인 누나를 잃고 상심한 마음을 오대수를 괴롭히는 방법을 푼 것 같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오대수는 이우진 앞에서 제발 딸인 미도에게만은 말하지 말아 달라며 빈다. 비는 도중에 오대수는 자신의 혀를 자른다. 처절하게 비는 오대수를 보며 이우진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결국은 미도에게는 오대수가 아빠라는 걸 알리지 않는다. 이우진은 15년 동안 준비한 자신의 복수가 성공하자 허탈하고 공허함을 느낀다. 그리고 자살한다. 시간이 흘러, 오대수는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던 최면술사를 부른다. 그리고 최면을 통해 미도가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최면술사가 떠나고 미도는 오대수 품에 안겨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영화가 끝난다.
처음에는 역겨웠다. 사실 이 이야기를 아직도 이해하기 힘들고, 혹여나 실제로 이런 일이 있을까 봐 무섭기까지 하다. 미도가 딸인 게 드러나기 전에, 둘의 사랑을 보여준 장면들이 영화가 끝나도 생생히 보여서 괴로웠다. 영화가 너무 슬퍼서 감정 소비를 심하게 한 적은 있지만 너무 충격적이어서 한 적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우진이 도대체 그를 왜 15년 동안 가둬놨어야 했는지는 이해가 갔다. 자칫 허무하고 개연성 없게 결말이 날 수도 있었는데 누가 봐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줬다. 박찬욱 감독이 대단하면서도 '변태는 곧 창의적인 사람'이라는 봉준호 감독님의 말이 와닿았다. 정말 변태 같은 영화면서 적나라하고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고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잔인함을 잘 표현한 영화였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며칠 동안 여운이 남았다. 물론 좋은 기분의 여운은 아니었지만, 어찌 됐든 이제 나에게 평생 잊히지 않을 영화가 된 건 확실했다.
하나 덧붙여서 말하고 싶은 건 영화를 보면서 배우들의 불필요한 노출 장면들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여자 배우들도 그렇고 남자 배우들도, 물론 나는 감독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장면이 꼭 필요했는지 아닌지에 대해 왈 가발가 할 순 없지만, 확실히 옛날 영화는 지금과 정서적인 부분에서 안 맞는 게 많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