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린이 다이어리 53
클로드 모네.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다. 그는 자연, 풍경, 정원뿐만 아니라 수련과 지베르니의 다리 등을 화폭에 담았다. 주변 세상에 대한 순간적인 인상을 전달하기 위해 붓과 물감의 획의 사용하여 그의 작품에서 빛과 색상 변화를 포착하려고 노력했다. <출처 위키백과>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뜬금없이 웬 화가 이야기냐?'라고 의아해할 것이다. 잠시만 기다려 보자. 좀 더 부연 설명을 해보면 모네는 '주변 세상에 대한 순간적인 인상을 전달'하기 위해 성당, 연못, 건초더미 등 한 가지 주제에 대한 그림을 여러 번 그린 연작을 그렸다. 그의 대표작인 수련만 해도 약 250점에 달한다. 물론 다른 시각에서 그린 작품도 있지만, 그림을 그린 시점에 따라 빛과 풍경의 변화를 표현했다. 즉 그림을 그린 시간, 계절에 따라 변하는 모습을 연작의 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올해 초(2024년 2월) 눈 쌓인 일산 호수공원을 달리다가 문뜩 영감이 떠올랐다. 이미 달리기를 시작하고 1년 넘게 매주 주말 달려온 일산호수공원이었다. 올해도 매주 달릴 것이니 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정해 1년 동안의 계절의 변화를 담아보자는 것.
그렇게 시작한 것이 모네프로젝트. 일산호수공원에서 4군데 장소를 골라 주말 아침 달리다가 그곳에 잠시 멈춰 사진을 찍는 것이다. 구정연휴 기간인 2월 9일(금)에 첫 사진을 찍었다. 장소는 일산호수공원 장항 IC 방면 호수교 인근 장소였다. 내가 일산호수공원에 들어서는 웨스턴돔 인근 작은 도서관 입구에서 라페스타 방면인 오른쪽으로 달릴 때 2군데, 그 반대 방향으로 달릴 때 2군데를 정했다.
라페스타 방향으로 달리더가 호수공원 맞은편을 달리다 보면 자전거 도로 양옆으로 가로수 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는 길이 시작된다. 여기가 첫 번째 장소다. 그리고 두 번째 장소는 500m 정도 더 달려 호수교 밑을 지나자마자 작은 언덕길이 시작된다.
세 번째 장소는 반대 방향인 차병원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호수교 직전에 언덕길 선상이다. 마지막 장소는 일산호수공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타세쿼이어 길의 한 장소다. 첫 사진을 찍으며 곧이어 다가올 벚꽃 시즌에 벚꽃이 가득 만개한 일산호수공원의 모습을 담을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1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토요일은 라페스타 방향으로 달려 1,2번 장소에서, 일요일은 반대 방향으로 달리며 3,4번 장소에서 사진을 찍었다. 간혹 주말에 일정이 있어서 달리지 못하는 경우에는 1,2번 장소에서 찍고 방향을 돌려 3,4번 장소를 지나는 혹은 그 반대 코스로 달렸다. 일산호수공원이 한 바퀴에 4.71km지만, 1,2번 장소에서 사진을 찍고 중간에 방향을 돌리면 거리가 7~8km가 나온다.
사진을 찍는 시간은 웬만하면 비슷하게 유지했다. 내가 매주 주말 일산호수공원을 달리는 시간대는 5시 50분~7 시대다. 매주 비슷한 시간에 달리기를 하니, 사진을 찍기로 한 장소에 도착하는 시간도 비슷하다. 크게 오차가 나지 않는다. 매주 비슷한 새벽 시간에 달리면, 일출 시간의 변화를 담을 수 있었다. 처음 겨울철에 달리기 시작했을 때는 어두웠기 때문에 사진도 어두웠다. 하지만 봄이 다가오며 밝아지는 일출 시간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나무의 변화를 통해 계절의 변화도 담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일출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해가는 일산호수공원의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다음 계절이 궁금해졌다. 새로운 계절이 온다는 사실에 두근거렸다.
물론 사진을 찍기 위해 달리는 중간에 멈춰서는 것이 대한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2~3초 멈춘다고 해서 달리기 실력이 크게 줄어드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모네프로젝트를 완성해 가는 즐거움이 더 컸다.
게다가 자연이 눈에 들어왔다. 일산호수공원을 1년 넘게 달렸지만 계절의 변화에 큰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사진을 찍고 관심을 가지니, 일산호수공원의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작년 여름 태어나서 처음으로 초록의 푸르름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며 그 변화무쌍한 푸르름에 푹 빠져 버렸으니. 계절이 바뀌면서 그 색의 변화를 보는 눈이 뜨인 듯하다. 이렇게 달리기의 또 하나의 재미를 찾았다.
사실 모네 프로젝트는 내가 달리기를 지속하기 위한 하나의 동기였다. 아무리 달리기에 푹 빠진 나라도 주말에 괜히 나가기 힘든 날이 있다. 그럴 때 모네 프로젝트 사진 촬영이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마치 해야 할 숙제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1년간의 4계절의 변하는 모습을 담아보고는 것이 목표였다. 사진을 위해 비 오는 날 아침에 달리러 나가야 하나 고민할 정도였다. 그렇게 달리기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만들었다.
가을까지는 잘 진행됐다. 하지만 족저근막염이 발목을 잡았다. 지난 10월 마라톤 대회를 참가하고 나서 오른발바닥 통증이 심해졌다. 족저근막염이 악화된 것이다. 결국 달리기를 쉬기로 했다. 모네 프로젝트가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10월이면 가을철. 나뭇잎들이 빨갛게, 노랗게 변하는 시기였다. 내가 달리는 자전거 도로는 떨어진 낙엽들로 울긋불긋한 카펫을 깔 것이었다. 특히 계절의 변화는 사진을 찍는 가장 큰 재미였다. 그만큼 계절의 변화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계절이었다.
그래서 모네 프로젝트를 포기하기 아까웠다. 게다가 집 앞에 노란 은행잎이 한껏 만개한 은행나무를 보니 더 아쉬웠다. 그래서 새벽에 운동 겸 걸어서라도 일산호수공원을 돌고, 사진을 찍고자 했다. 한번 걸어 봤는데, 아무리 발에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걷는다 해도 발에 무리가 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쉬었다. 그 후 지금까지 달리기를 쉬고 있다. 모네프로젝트가 그렇게 중단됐다.
그렇게 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왔다. 행여 눈이라도 오면 일산호수공원은 어떤 모습일까 괜히 궁금해진다. 그래도 부상을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다. 사실 큰 마음을 먹고 새벽에 걷기 위해 나갔다. 하지만 올해 들어 찬바람에 발길을 돌렸다. 그나마 달리면 금방 몸이 달궈지지만, 걸으면 몸이 달궈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오른발에 아무 느낌이 없어질 때까지 쉬기로 했다. 이번 겨울은 이렇게 지나갈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주말 새벽에 계속 자니, 몸이 너무 편하다. 이 편함에 적응되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침대 안이 참 따뜻하고 편하다.
결국 나의 모네 프로젝트도 8개월 만에 종료되며, 미완성 프로젝트로 남았다. 그래도 지난 8개월간의 결과를 공개하기로 했다. 미완성을 실패가 아니다. 달리기와 마찬가지다. 오늘 내가 목표한 거리를 달리는 것을 실패하면, 내일 달리면 된다. 올해 비록 모네 프로젝트를 실패했지만, 다리가 나은 다음에 다시 도전하면 된다. 중단은 끝이나 실패가 아니다.
미완성으로 끝난 모네프로젝트의 찝찝함을 마음속에 간직하자. 그 찝찝함이 다시 나를 달리게 만들기를 기대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