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 이야기
나는 운동을 좋아하고 운동을 즐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운동에 대해 무지했다.
어려서 기회는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운동을 꾸준히 배울 기회를 놓쳤다. 일례로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수영 강습을 끊어 줬다. 한 달짜리 단체 강습이었다. 물론 친구들과 함께였다. 수영을 하고 나와 수영장 주변을 걸어가는데 물안경에 김이 뿌옇게 꼈다. 왜인지 벗을 생각을 안 했다. 아마도 귀찮아서였겠지. 그렇게 걷다가 넘어져서 계단에 무릎을 쪘다. 무릎이 깊게 파이고 피가 철철 넘쳤다. 그렇게 나의 수영 강습은 끝났다. 바로 첫날 벌어진 일이었다.
그 후 운동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 운동에 관심이 없다가 고등학교 들어서서 그만 농구에 빠져버렸다. 틈만 나면 운동장 농구공을 들고 운동장 농구 코트로 달려 나갔다. 농구는 친구들한테 배웠다.
그 후 대학교, 군대에서 간간히 농구를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니 운동 시간을 내는 것이 힘들었다. 아니 굳이 운동을 위해 시간을 내기 귀찮았다. 그러다가 한때 스노 보드에 빠졌다. 역시 친구한테 배웠다.
이후 회사에서 운동 절친 O를 사귀면서 크로스핏이라는 종목을 알게 되었다. 스쿼트, 런지, 마운틴 클라이머 등 기본 동작들을 O한테 배웠다. 이 역시 친구에게 배운 것이다. O가 피트니스에서 배운 동작을 가르쳐주면 따라서 혼자 연습했다. 제대로 하는 건지도 모른 채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동작을 따라 하기만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운동을 '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상스키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보트에 매달린 줄을 잡고 물 위를 달리는 수상스키 특성상 보트를 운전하는 강사한테 배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내 동작을 보고 자세를 잡아주니 좋았다. 미묘하게 자세를 만들어가는 즐거움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2020년부터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5년째 쭉 배우고 있다. 2021년부터 5년째 수업을 듣고 있는 일산 '모임필라테스'의 LS 원장님은 '운알못'인 내 기준엔 운동을 체계적으로 배운 능력자다. 게다가 필라테스 강사 경력도 길다. 그래서 수업을 들으며 운동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잘못된 상식을 바꿀 수 있었다.
LS 원장님에게 운동을 배우면 배울수록 느껴지는 것이 정말 운동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다.
첫째, 운동을 하면 격렬한 운동만이 운동인 줄 알았다. 농구처럼 정신없이 코트를 달리고 심장이 터질 같아야 운동을 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다른 방법도 있었다. 천천히 동작을 정확하게 하는 것도 운동이 됐다. 운동량은 약할지 몰라도 정확한 자세를 만들고 몸에 배게 하는 것 또한 운동이 되었다.
둘째, 몸을 최대한 써야 한다고 믿었다. 예를 들면 LS 원장님이 애정하는 오블리크 자세. 쉽게 설명하면 복횡근을 써서, 복근으로 몸통을 옆으로 회전하는 동작이다. 이 동작을 할 때 몸이 가능한 최대한 돌려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몸의 균형을 잃고 휘청하기 일쑤였다. 이제는 내가 내 몸의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동작을 만들면서 늘려가면 된다는 것을 안다.
셋째, 동작을 만들 때, 몸의 전체를 쓰는 것이 아닌 특정 타깃 근육만 쓰는 거라 믿었다. 예를 들면 스쿼트. 허벅지 근육으로만 하는 운동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전신을 골고루 다쓰는 운동이었다. 등을 꼿꼿이 세우고 복근을 조인 상태에서 골반을 뒤로 빼며 천천히 내려갔다가 발뒤꿈치로 바닥을 밀어내며 허벅지, 골반, 복근을 당겨 일어선다. 지금은 전신을 다 쓰는 느낌으로 스쿼트를 한다.
넷째, 어려운 동작만이 운동이 되는 줄 알았다. 필라테스를 배우면서 느낀 것이다. 서커스 곡예 같은 어려운 동작이 많았다. 이런 동작을 잘해야 필라테스를 잘하는 것이라 믿었다. 사실 어려운 동작이 멋있어 보이긴 한다. 하지만 잘 알려진 동작 속에서도 운동 강도를 높이는 방법은 많다. 예를 들면, 스쿼트 지세로 내려가서 발목을 세운다던지, 골반을 가볍게 튕기는 동작을 더 하면서 운동 강도를 높일 수 있다. 이제는 5년째 배우면서 단순 동작이라도 강도를 다양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됐다. 즉, 집에서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섯째, 나는 내 몸을 잘 쓴다고 믿었다. 착각이었다. 필라테스를 배우면서 강사의 큐잉을 받아도 내 근육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몰라서 당황스러웠던 적이 수차례다. 특히 서서 오른쪽 엄지발가락으로 엄지 척을 만드려는데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간힘을 써도 엄지발가락이 꼼짝도 하지 않을 때, 멘붕이 왔다. 필라테스가 좋은 점은 LS 원장님이 타깃 근육을 정확하게 짚어 준다는 것이다. 이 동작을 할 때는 어디 근육에 어떻게 느낌이 와야 하는지 설명하고 실제로 반응이 있는지 확인해 주면서 내가 동작을 제대로 하고 있구나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동작을 하면서도 세부 근육에 별 느낌이 없었다. 지금은 근육이 쓰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여섯째, 운동은 단기간에 효과가 나타난다고 믿었다. 하루 운동을 하면 바로 근육이 붙고 자세가 잡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매주 2회씩 꾸준히 하면서 몸이 조금씩 단련되어 갔다. 몇 번 해보고 안된다고? 그냥 연습이 부족한 것이었다
스트레칭이 그랬고, 달리기가 그랬다. 한 번에 된 것이 아니었다. 조금씩 조금씨 근육의 유연성과 지구력을 늘려갔다. 단기간에 되는 완벽하게 되는 동작은 없다. 몇 달에 걸쳐 꾸준히 반복하고 연습하다 보면 근육에 힘이 붙고 몸이 익숙해진다. 꾸준히 연습하면 중간 이상은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운동은 독학으로 해도 충분히 된다고 믿었다. 충분히 혼자 할 수 있지만 배우는 것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질 못할 수 있다. 필라테 슨 동작을 하면서 특히 골반처럼 평소 쓰지 않는 부위 운동을 하게 되면 근육에 힘이 없어 나도 모르게 보상자세를 취하게 된다. LS 원장님이 늘 매의 눈으로 인정사정없이 지적하며 자세를 잡아줘, 이제는 보상 자세에 대한 감이 생겼다. 수업을 안 듣고 동영상 보면서 했다면 결코 보상 자세가 잘못된 것인 줄 몰랐을 것이다. 결국 운동의 효과가 배울 때보다 반감되었을 것이다. 강사들이 괜히 강사가 아니구나 하고 느낀다.
그리고 나의 결론은 "필라테스는 비싼 만큼 돈값 늘 하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동영상을 보고 배우는 것보다 직접 가서 배우는 것이 좋다. 그룹 레슨을 배울 바에는 조금 더 주더라고 개인 레슨을 받은 것이 그 효과가 훨씬 좋다.
필라테스를 배우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앞서 나열한 착각이 맞다고 믿고 지냈을 것이다. 고정관념이 깨지니 운동이 더 재미있고 좋아졌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 그리고 배움에는 끝이 없다. 배울 것은 무궁무진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