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린이 다이어리 83
이번 주가 일산호수공원에서의 마지막 달리기다.
주말이면 일산을 떠나 강동구 명일역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일산호수공원과 달리기. 생각하면 많은 추억들이 떠오른다.
개인적인 사유로 갑작스럽게 일산으로 들어왔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일산호수공원 근처로 터를 잡은 것이 얼마나 행운이었는지 깨닫는다. 뭔가 내 인생의 신의 한 수랄까? 그만큼 일산호수공원이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달리기를 시작했고, 달리기에 익숙해졌고, 달리기에 푹 빠져버린 곳이 일산호수공원이다. 다른 러너들에게 그러하듯 일산호수공원은 내 달리기의 성지다.
처음 2022년 처음 일산호수공원을 달렸을 때, 100m도 겨우 달렸다. 500m, 1km, 2km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면서도 남은 거리가 어찌나 멀게만 느껴졌는지. 그랬던 내가 내 평생 처음으로 쉬지 않고 10km를 (천천히) 달려본 곳이 2022년 어느 겨울 밤새 눈이 내린 날이었다. 그를 계기로 마라톤 10km 대회도 참가했다.
2022년부터 호수공원만 달리다가, 2024년 경주 보문호수를 계기로 원정에 눈을 떴다. 그리고 내 관심을 사로잡은 코스는 고양특례시의 고양누리길 중 여덟 번째 코스인 '경의로누리길'이었다. 고양누리길은 고양시에서 조성한 산책로 북한산, 한북, 서삼릉, 행주, 행주산성역사, 평화, 호수, 경의로, 고봉, 견달산, 송강, 고양동, 오선, 바람으로 고양시 곳곳을 산책할 수 있는 14개의 산책로로 이뤄져 있다. 그 중 경의로 누리길은 정발산을 기점으로 황룡산 입구까지 이어지는 7.25km 거리의 코스였다.
경의로 누리길을 달리며 최대한 많은 고양누리길을 달려보고자 목표를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경의로 누리길과 호수공원과 그 주변을 도는 호수누리길 2개 산책로만 달렸다.
그리고 호수공원 맞은편에 있는 정발산 둘레를, 정발산으로 가로질러 달려보기도 했다.
또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호수공원 곳곳의 길을 달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자전거 도로를 따라 달렸다. 그러다가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더 바깥쪽의 메타세쿼이어길을 따라 달리기도 했다. 또한 메타세쿼이어길을 따라 달리다가 힐스테이트킨텍스레이크아파트를 따라 난 수변공원길을 달렸다.
그리고 경주 보문호수, 여수 오동도, 일본 삿포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싱가포르, 미국 워싱턴 DC 등 새로운 도시에서 러닝 코스를 찾아 달렸다.
오른발 족저근막염 발병하고 6개월 만에 달리기를 다시 시작한 곳도 일산호수공원이다.
2022년부터 매주 주말 호수공원을 달리며 호수공원의 사계절을 달렸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색깔, 소리, 내음이 머릿속에 새겨졌다. 벚꽃 시즌의 신비로움, 봄의 생동감, 여름이 푸르름, 가을의 알록달록한 화려함, 겨울의 적막함과 고요함을 보고, 듣고, 맡고, 느낄 수 있었다. 호수공원 덕분에 내 몸의 오감이 깨어나, 자연을 온전히 즐기는 법을 배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일산호수공원에서 시작한 달리기로부터 지난 4년간 나에게 많은 경험을 선물 받았다.
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브런치도 있었다. 달리기 덕분에 1년 넘게 매주 달리기에 대한 글을 꾸준히 쓸 수 있었다. 확실히 달리면 소재가 생긴다. 부상으로 강제 휴식을 취할 때 마땅한 소재를 찾는 것이 힘들었었다.
달리기에 대한 글을 쓰며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글로 잘 풀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새삼 깨달았다. 지금도 글을 쓰며 힘든 것이 일산호수공원의 지명, 방향을 설명하기가 참 난감하다. '어떻게 설명해야 읽는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화장실, 호수교, 메타세쿼이어길 등 구조물의 이름을 써야 할까? 아니면 장항 IC 방향, 킨텍스 방향 등으로 써야 할까?
또한 달리는 자세 및 주법에 대해서도 종종 쓰는데 '어떻게 써야 동작을 만드는 내 느낌을 그대로 전달할까?' 해부학적인 근육 이름을 써야 할까? 그러면 독자들이 어려워할 텐데, 그렇다고 동작을 설명하자니 근육의 세세한 부위를 지칭하지 않을 순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잘 짜인 글이 막상 쓰려니 턱턱 막혔다. 덕분에 글 쓰는 법에 대해 많이 늘었다.
그리고 와이프와 호수공원에서 산책, 자전거 데이트를 했고, 운동을 싫어하던 와이프가 난생처음으로 슬로 러닝으로 500m, 1km, 2km를 달린 곳이 일산호수공원이었다. 우리 부부의 추억의 한 장을 차지한 곳이다.
이제 서울을 중간으로 서쪽 끝 일산에서 동쪽 끝 강동구로 간다. 편도로 거리만 45km가 넘는다. 차로 꼬박 1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언제 또 달리러 올 수 있을까? 아마도 이번 주 달리기가 마지막일 것 같다.
비록 떠나지만 일산호수공원은 나 삶에 있어 소중한 곳이다.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어. 일산호수공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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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끝으로 '무슨 생각을 하며 달리십니까 5'를 완결합니다. 지금까지는 새로운 발행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매거진을 통해 틈틈이 런린이 다이어리 글을 올리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