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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돌 Aug 01. 2024

30대의 유럽 여행기 1

내 인생의 여행들 

20대 초반의 유럽 배낭여행 이후, 20대 후반에 ‘TAKE THAT’ 콘서트를 보러 런던에 일주일 다녀온 것이 마지막이었다. 30대 초반에 일본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시간이 남을 때, 친구가 유학 중인 스웨덴으로 가서 7월 한 달 동안 체류했었다. 스웨덴 남부의 룬드라는 도시의 기숙사에서 함께 지냈다. 룬드는 대학생들이 많은 곳이라 조용한 편이고, 쇼핑이나 구경을 하려면 열차를 타고 말뫼라는 옆 도시로 나가야 했다. 룬드에서 말뫼까지가 열차로 15분 정도인데 2011년 기준 편도가 1만 원. ‘서머 요요’라는 1개월짜리 정기권을 사서 이걸 타고 이동했다. 아니면 교통비 때문에 집에만 있어야 할 뻔했다. 북유럽 물가는 정말 무시 무시하는구먼.     

 

 그래도, 슈퍼 물가는 일본과 엄청나게 차이가 나지는 않아서 (외식비는 비싸다.) 거의 집에서 밥을 해 먹었다. 아침에는 오버나이트 오트밀. 친구는 통밀 크래커에 돼지 간 파테를 발라서 먹었는데 난 그것만은 귀국할 때까지 적응할 수 없는 맛이었다. 순대 간은 좋아하는데 차가운 간 페이스트는 별로였다. 점심은 카페에서 샌드위치랑 커피를 사 먹거나, 베트남 음식점 가서 쌀국수도 먹고, 저녁에는 샐러드 파스타나 고기를 구워 먹었다. 이 메뉴의 영원한 반복. 가끔 특별식으로 케밥을 먹었는데, 아랍계 이민자들이 많아서 그런지 정말 맛있었다. 여기 학생들은 술 먹고 해장으로 팔라펠이랑 케밥을 먹는다고 했는데, 술 한 방울 안 마시고 먹어도 맛있었다. 말뫼에 있던 채플린 케밥집 잊지 못해. 아저씨 잘 계시죠!? 마늘소스 기가 막혔었다. 하루는 이케아에서 본토의 미트볼을 먹는다고 설레었는데, 일본 이케아에서 먹은 것과 똑같아서 실망했다.      


 카페들이 많아서 낮에 디저트와 커피를 즐기기도 했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스웨덴의 ‘피카 타임’. 커피타임으로 생각하면 될 듯. 일반적으로 시나몬 롤을 많이 먹었고,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것 프린세스 케이크였다. 스펀지 케이크, 라즈베리잼, 크림을 층층이 올리고 녹색 마지팬으로 덮은 디저트이다. 겉을 덮은 매끈한 녹색 마지팬이 예쁘고, 크림도 맛있어서 좋아했다. 스웨덴 공주들이 즐겨 먹어서 프린세스 케이크라고 불렸다고 한다. 귀여운 유래로군. 가게들은 거의 오후 6시면 닫았다. 저녁 먹고는 할 일이 없어서, 슈퍼 구경을 가거나 동네 공원을 뛰었다. 북유럽 사람들이 왜 가족중심의 삶을 사는지 알게 되었다. 저녁시간에 밖에서 할 일이 없었다. 다들 집에서 뭐 하고 지내는 것일까?     


 한 달이라는 체류기간 동안에 ‘TAKE THAT’ 콘서트를 보러 옆 나라 덴마크 코펜하겐에도 갔다. 스웨덴 남부는 수도인 스톡홀름보다, 덴마크 수도인 코펜하겐이 더 가깝다. 비행기도 인천-코펜하겐으로 탑승했다는 사실. 탈퇴 멤버였던 로비 윌리엄스가 함께 하는 공연이라 우리는 2일 치 공연을 예매했다. 런던에서 봤던 공연에서는 로비가 없었기에 5인 완전체 콘서트를 본다는 의미가 컸다. 물론 덕후가 아니면 아무 감흥 없겠지만요. 와이프와 여자 친구한테 끌려온 남자들은 맥주를 마시면서 동태눈으로 공연을 보고 있었다. 화장실이 무서워서 공연을 가면 식음을 전폐해야 되는 입장에서 매우 부러웠던 부분.      


 첫날 공연을 감동적으로 보고 스웨덴 숙소로 돌아오니 새벽 1시. “다음 날 공연 또 봐야 되는데 죽겠다야.” 이라면서 취침. 이튿날에 삐거덕거리는 몸을 일으켜서 다시 코펜하겐으로 향했다. 이 날은 스탠딩석이라 미리 와서 몇 시간 동안 앉아서 줄을 맡고 있었는데, 오후 6시가 되어서 갑자기 스태프들이 나오더니 뭐라 뭐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절규하는 스웨덴 덕후 친구들. 우리는 무슨 얘긴지 몰라서 멍하니 있다가, 영어로 오늘 공연이 캔슬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절규했다. 로비가 랍스터 샌드위치 먹고 식중독에 걸려서 공연이 중지되었다. 햄 치즈 샌드위치나 먹을 것이지, 왜 여름에 해산물을 먹었어요 오빠... 그나마, 어제 공연이라도 한 번 봤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터덜터덜 돌아왔던 그날 밤의 기억. 한 번도 못 봤으면 열받아서 북유럽 랍스터 다 불태웠을 듯.      


 공연 때는 코펜하겐 시내를 구경한 것이 아니어서, 본격 관광을 위해 다시 도시를 방문했다. 기차 타고 한 시간이면 가니까 몇 번이고 갈 수 있지. 교통비가 문제 일뿐. 근엄 왕세자로 유명했던 덴마크 왕족들이 산다는 왕궁도 구경 가고, 국립 미술관에도 갔다. 좋아하는 화가인 마티즈의 작품들이 있어서 감상을 하고, 인어공주 동상을 보러 갔다. 동상을 보는 것이 일정의 하이라이트였는데 크기가 생각보다 작았다. 그래도, 동상과 바다와 요트들이 어우러져서 아름다웠다. 여기서 코펜하겐 카드 (관광객용 여행카드)로 배를 타고 반대쪽으로 건너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점심도 안 먹고 기다렸는데, 배가 오고 나니, 유료로 탈 수 있고, 코펜하겐 카드를 쓰려면 뉘하운(NYHAVN) 운하에서 출발하는 가이드가 있는 배를 타야 한다고 했다.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그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한다니. 하늘이시여. 콘서트 캔슬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큼 슬펐다. 덴마크랑 궁합이 안 맞는 것일까.      


 나는 네가 좋은데 코펜하겐아.      


 뭐 내가 힘이 있나. 다시 오던 길을 걸어 올라서 뉘하운(NYHAVN)으로 갔다. 코펜하겐 관광 스폿으로 유명한 곳으로 알록달록 예쁜 집들이 꼭 동화책 한 장면처럼 펼쳐져있다. 뉘하운으로 오는 길에 유명한 인테리어 소품 가게들도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운하에 떠있는 요트 위에서 태닝도 하고, 뜨개질도 하고, 와인도 마시는 덴마크 인들을 보면서 북유럽의 클래스를 다시 한번 느꼈다. 어느 나라에서 태어날지는 내가 고르는 것이 아닌데 너네는 로또 맞았구나.      


 아까 못 타서 한이 맺혔던 관광객용 배를 타고 인어공주 동상 뒷모습도 보고, 코펜하겐 카드로 전철을 타고 이동해서 티볼리라는 유명 놀이공원에 갔다. 이곳 역시 코펜하겐 카드가 있으면 입장료가 무료. 놀이기구뿐 아니라 공원처럼 조경이 아름다워서 벤치에 앉아서 한참 쉬다가 중앙역으로 이동했다. 중앙역에서 스웨덴 가는 기차 기다리면서 저녁으로 먹었던 도미노 피자 한 조각과 칼스버그 맥주. 별 것 아닌데 이 날 혼자 먹었던 피자랑 맥주가 어찌나 맛있었던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여행이란 이런 사소한 추억들이 쌓여서 소중 해 지는 듯. 


 참, 스웨덴 온 지 1주일째에 베를린도 갔었다. 3박 4일짜리 호텔팩을 예약했다. 에어베를린이라는 저가항공이었는데 머핀이랑 커피도 줘서 좋았다. 코펜하겐에서 베를린까지는 1시간이면 도착했다. 은근히 가깝네요. 3성급 저렴한 호텔에다가, 공항 근처여서 비행기 소리에 첫날에 잠을 설쳤다. 게다가 침대가 트윈이 아니고 더블이었다. 친구랑 나랑 둘 다 예민 보스여서 옆 사람이 뒤척이면 침대가 꿀렁거려서 자다 깨다 난리. 

     

 그렇게 새 아침이 밝았다. 눈 뜨자마자 근처 슈퍼에 가서 체리 한 박스와 하리보 젤리부터 한가득 사 왔다. 서울에 있는 윤정이가 하리보 젤리를 좋아해서 선물로 미리 사뒀지. 듬뿍 줘야지. 내가 좋아하는 과일은 딸기와 체리인데, 유럽은 체리가 저렴해서 양껏 먹었다. 씻고 정신 좀 차리고는 TKMAXX라는 할인 스토어에 갔다. 북유럽 날씨가 생각보다 추워서 방수가 되는 등산복을 사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난 5만 원짜리 핑크 점퍼 하나 사고, 친구는 나이키 레깅스를 사서 나왔다. 그리고는 근처에 있는 커리부어스트 가게에 들어가서 소시지와 감튀 세트를 먹었는데, 기절. 정말 맛있었다. 이것이 바로 독일 소시지군요. 차후에 브란덴부르크문에서도 커리부어스트를 먹었는데, 이곳이 3배쯤 더 맛있었다. 마요네즈에 감튀 찍어먹으면 헤븐.      


 그리고는 카데베라는 백화점에 가서 식품매장 구경을 갔다. 세계 어디를 가도 슈퍼 구경하는 것이 제일 재밌다. 카데베 6층은 이런 나에게 완전 놀이터였다. 신선한 과일, 다양한 종류의 독일 빵, 예쁜 티세트, 초콜릿 종류는 또 왜 이리 많은지. 눈 돌아간다. 베를린에서 제일 즐거웠던 시간 ‘베스트 3’에 들어가는 식품 매장 구경이었다. 버켄스탁이 독일에서도 비싸서 한번 놀랐고, 브란덴부르크문에 대해 찾아보다가 예전에 나치 전당대회 열렸던 사진을 보고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다. 베를린 장벽으로 가는 길에 헤매고 있었더니, 이스트 갤러리까지 데려다줬던 착한 독일 아가씨도 만났고, 지하철에서 기물을 뽑아서 전철 문을 부수려던 무서운 10대들도 보았다. 쳐다보면 맞을까 봐 완전 눈 깔고 앉아있었잖아. 다이내믹한 베를린 도보여행이었다. 심심했던 스웨덴에서의 일상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걸!     


 친구랑은 낮에는 각자 다니고, 저녁은 같이 먹었다. 난 박물관, 미술관 구경을 좋아해서 하루는 ‘뮤지엄 패스’를 구입해서 두 곳의 박물관에 방문했다. 페르가논 뮤지엄, 이집트 유적들 특별 전시가 있었는데, ‘와. 개인이 이렇게 발굴을 할 수 있단 말이야?’ 이집트와 중동지역 유물을 발굴하던 때의 숙소 사진이 있었는데,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소설 배경을 사진으로 찍어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일 강의 죽음’ 참 재밌게 읽었는데요.       

 2층에 올라가서 아랍 유물도 구경하고, 점심으로는 테라스석이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연어 파스타를 먹었다. 근처 직장인들인지, 셔츠를 입은 남자들 한 무리가 식사 중이었다. ‘와. 진짜 잘생겼다. 게르만 인들은 키가 크니까 어깨도 넓구나. 역시, 남자는 어깨야.’ 파스타를 먹으면서 눈 호강도 했던 즐거운 시간. 점심시간 잘 맞춰서 밥 먹으러 간 나를 칭찬했다. 어째 유물 관람 감상보다 어깨 얘기가 더 길어지는 것 같다. 이런 것이 여행의 재미 아니겠습니다. 돌덩이 유물보다, 살아 숨 쉬는 미남 구경이 더 소중한 경험인 것이다. 현재를 살아라.       


 시간상 한 곳만 더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뉴에스 뮤지엄으로 이동. 이집트 유물들을 중심으로 한 곳이었다. 람세스와 네페르티티가 두 손을 잡고 있는 조각이 있었는데, 손만 나온 조각이 이렇게 다정하게 보일 수 있는지. 크디큰 파라오, 스핑크스 조각들보다 맞잡은 두 손 조각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베를린에 재방문한다면 ‘박물관 섬’에는 꼭 다시 가고 싶다.       


 스톡홀름에도 2박 3일 일정으로 여행을 갔다. 기차로 4시간이 걸렸다. 남부지방에서는 덴마크 수도인 코펜하겐이 훨씬 가깝구나. 가는 동안 지겨워서 몸을 베베 꼬면서, 노트북으로 미드 ‘얼음과 불의 노래’를 시청했다. 스톨홀름에서도 친구는 논문을 써야 돼서 거의 숙소에 있었고 나 혼자 구경을 다녔다.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마리 앙뜨와네뜨 초상화를 봤다. 나와 생일이 같아서 혼자 친근감을 느끼고 있는 마리 왕비. 그래도, 나는 곱게 죽어야지. 똑같은 그림을 지난번에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에서 봤는데, 스웨덴 여행 기억이 떠올라서 반가웠다.      

 

스톡홀름에서도 박물관들이 모여 있는 유르고덴섬에 가서 하루를 보냈다. 이곳으로 가는 트램을 탔는데 소매치기로 보이는 사람이 손에 재킷을 덮어쓰고는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이었다. 스페인도 아니고, 스웨덴에도 소매치기!? 놀라서 게걸음으로 옆으로 도망가서는 다음 역에서 내렸다. 방심은 금물. 유르고덴섬에서는 ‘빨간 머리 삐삐’의 박물관인 유니바켄과 침몰되었던 군함인 바사호를 전시하고 있는 바사 뮤지엄, 야외 박물관인 스칸센에 갔다. 11년 기준, 스톡홀름 카드가 10만 원이었는데, 이 카드만 있으면 뮤지엄과 교통비가 무료였다. 본전 뽑으려면 열심히 구경해야지. 바사 뮤지엄은 배가 통째로 전시되어 있어서 스케일이 어마어마했다. 박물관 자체도 어둑하게 연출해서 약간 무섭기도 했다.      


 스톡홀름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는 시청사 투어. 당일에 가서 예약을 하고 참가하면 됐다. 시청사 앞으로 호수가 펼쳐지는데 풍경이 멋지다. 매일 이런 뷰를 볼 수 있다니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 일하는 입장에서는 매일 봐도 감흥이 없으려나. 노벨상 시상자들의 무도회가 열리는 ‘황금의 방’ 와! 진짜 와. 황금이 블링블링. 이곳은 눈으로 봐야지만 이해가 갈 듯. 써놓고 보니 재수 없는 발언 같다. 층고가 매우 높은데 저 벽면들을 유리 조각과 금박 모자이크로 채우다니. “와!! 진짜 와!!” 스톡홀름에서는 역시 이곳이 제일 인상에 남았다. 여기서 드레스 입고 춤도 추는 것일까? 노벨상 받는 사람들은 좋겠다. 나도 한 번만 끼워줬으면 싶네.     


 2011년에 한 달 살기를 하면서는 스웨덴 말뫼, 룬드, 스톡홀름, 덴마크 코펜하겐, 독일 베를린 여행을 했었네. 시간에 쫒기는 여행이 아닌 현지인처럼 여유롭게 지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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