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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병훈 Jul 29. 2022

공간기획을 위한 뇌과학

사실 저는 학부 시절 뇌과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가서 뇌과학과 인공지능 책들을 몇십 권을 탐독하면서 인류 혁신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부푼 꿈을 꾸었었지요. 인간의 기억, 연산, 감정, 및 사고방식을 뇌과학, 생물공학, 및 인공지능이란 기술로 제어 및 향상시킨다면 인간이란 종족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해낼 수 있는 초월생명체가 될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학교로 다시 복학하고 뇌과학 수업을 듣자마자 진로를 다시 바꿔야 겠다고 생각이 들었는데요, 꿈 자체가 허황된 것이 아니라 제가 가지고 있는 역량과 성향이 제가 가지고 있었던 꿈에 도달하는 데 조금은 비효율적이란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저는 학구적인 활동이나 기술 연구보다는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과 같이 유기적으로 기획할 수 있는 활동들에 더 관심을 가졌었습니다. 또한 군대에서 읽었던 기초 상식 및 재미있는 뇌과학 사실과는 다르게 학부에서의 뇌과학은 복잡한 화학, 생물학, 신경과학이 결합되어 공부하기 매우 힘든 학문으로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모든 과학자를 존경하고 혁신의 최전선에 있는 역군이라고 늘 생각하지만, 그 길이 단지 저의 성향과 축적된 역량과 다른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를 저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빠르게 다른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 시절 배우고 공부했던 뇌과학의 기초가 지금까지 제가 어떤 일을 하든 매우 유용한 지침서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어떤 일을 하나 인간은 뇌를 쓸 것이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본인과 다른 사람들의 행동 및 심리의 근원을 잘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재 뇌가 작동하는 원리는 공부해보면 생각보다 간단한데요, 이는 왜냐하면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뇌는 지난 몇십만 년간 축적된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의 종의 현재 진행형이라 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 30만 년 전부터 뇌는 급속히 발달했는데요, 이 때 인간은 직립 보행을 하며 손으로 도구를 쓰고 복잡한 작업들을 시작하면서 뇌가 커지고 다양한 뇌 기능이 발달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때 그 시절 인류 조상이 무엇을 필요로 했고, 무엇을 좋아했으며, 무엇을 기피하였는지 역사를 살펴보면 현재 뇌가 어떤 상황에서 왜 그렇게 작동하는지 유추할 수 있습니다. 뇌의 역사와 원리를 모두 설명하기엔 글이 길어질 것 같아서, 제가 읽어본 책들 중 무리 없이 읽을 만한 작품을 추천하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하겠습니다('마음의 미래' by 미치오 카쿠, '이상한 나라의 뇌과학' by 김대식,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by 올리버 색스).


본론으로 들어가서, 뇌과학과 좀 더 확장된 개념인 심리학이 공간기획 및 개발에 유용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공간기획 및 개발업 특성 상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협력, 협의 및 협상을 해야 하기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심리를 잘 파악해야 합니다. 이해관계자는 때로는 우호적인 관계일 수도, 때로는 적대적인 관계일 수도 있으며, 또한 프로젝트 진행사항 및 역량 필요도에 따라 접근 방식, 표현 방법, 및 협상 전략이 달라져야 할 수 있습니다. 개개인은 모두 다르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내면 가치 및 삶의 궤적이 모두 상이하기에, 이를 효과적으로 파악하고 그에 맞는 가치를 제시해야 되는 수단으로서의 뇌과학과 심리학은 유용한 지침서가 됩니다. 예를 들어, 공간 개발을 의뢰한 클라이언트가 급전이 필요한 것인지,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은 것인지, 추억이 깃든 부모님의 유산을 더욱 가치 있는 자산으로 만들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공간 개발을 하고 싶은데 아직 역량이 없어서 지원을 요청하는 것인지는 겉으로 보여지는 행동과 언어의 표현으로는 알 수 없을 때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렇기에 꾸준히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이 사람의 내재된 가치와 심리를 빠르게 파악해서 그것에 맞는 프로젝트와 방법론을 기획해야 하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뇌과학과 심리학이 개개인을 파악하는 데 유용한 도구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Source: Highbrow)


공간업에서 제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뇌과학의 활용성은, 기획자로 하여금 잠재적 공간이용자의 심리를 파악하여 그들이 좋아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공간을 창조하게끔 하는 것입니다. 이는 최근 뇌과학과 건축학이 융복합된 신경건축학(neuroarchitecture)라는 분야가 생기면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학문은 특정 공간, 자연, 인공 건축물을 마주할 때 인간의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집중합니다. 이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더욱 안정적이고 편안한 공간이 어떤 것인지 진화발전 과정을 연구하여 이론과 원칙을 찾고, 뇌 분석을 통해 계량적으로 모델링을 하고, 이를 활용한 공간디자인을 제시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사람이 카페, 도서관, 비행기 안에서 창가 자리를 선호하는 것은 인간이 오랜 세월 동안 바깥의 빛을 받으며 감정을 안정시키고 생활리듬, 호르몬 분비 및 체온 유지하는 진화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지요. 음식점 같은 공간에서 벽 쪽부터 사람들이 앉는 이유는 예전부터 인간의 조상은 제한된 시야 각도에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한 쪽이 막혀 있어 공격 위험의 반을 상쇄할 수 있는 공간을 선호하기 때문이고요. 통상적으로 회사 사장님 사무실이 창문도 크고 높은 곳에 위치하는 이유는 조직심리학자인 외르크 펠페의 말을 빌려 "남들보다 더 눈에 띄고, 더 많은 것을 감시할 수 있으며, 우월해 보이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원칙을 사용하여 이제는 역으로 공간을 개조하여 인간의 심리 및 활동에 변화를 주려고 하는 시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간의 천장 높이가 인간의 뇌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신경건축학계의 유명한 실험이 있었는데요. 미네소타대학의 조안 메이어스-레비 교수에 따르면 천장의 높이가 다른 곳에서 참가자들이 창의적인 문제와 집중력을 요구하는 문제를 풀었을 때, 천장이 높은 곳에서는 창의적인 문제의 점수가 높았던 반면 천장이 낮은 곳에서는 집중력을 요구하는 문제에 대한 점수가 높게 나왔다고 합니다.


이를 직접적으로 경험한 사람은 바로 '소아마비 백신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냐스 소크 박사였습니다. 미생물학자였던 소크 박사는 1950 년대 초 피츠버그 대학의 지하연구실에서 소아마비 퇴치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기나긴 연구가 마땅한 실적 없이 벽에 부딪히자 그는 기분 전환을 위해 이탈리아 중부의 13세기 중세 수도원으로 떠났는데요, 높다란 기둥 사이를 한가롭게 거닐던 순간 소크 박사는 '사균 백신'의 영감을 떠올렸고, 결국 소아마비 정복의 길을 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창의성을 끌어내는 공간의 힘을 직접 체험한 소크 박사는 이후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루이스 칸과 함께 태평양이 내다보이는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해안 언덕 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생물학 연구소(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를 지었습니다. 그냥 저런 생물학 연구소가 아니라 예술성과 심미성이 감미된 건축물이었지요. 소크 박사의 요구는 "파블로 피카소가 감상할 정도의 공간을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높은 천장과 큰 창, 열린 공간으로 이뤄진 소크 연구소의 풍광은 생물학계의 보석으로 불릴 정도였지요. 그러나 소크 연구소를 무엇보다 유명하게 만든 것은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만 5명을 배출한 탁월한 지적 성과였다는 것입니다. 건축과 공간의 힘이 연구자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친 지는 정확히 측량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심리를 기반으로 한 공간이 잘 기획되면 탁월한 성과를 낼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주는 좋은 사례인 것 같습니다.


요나스 소크 연구소 (Source: ArchDaily)



지속가능한 공간 기획과 개발을 위해서는 공간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구상해야 되고, 이를 위해서는 공간이용자들을 배려하는 철학이 깃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이 어떤 공간을 본능적으로 좋아하는지, 어떤 요소를 마음에 들어하고 어떤 요소는 불필요한 것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지역의 문화, 주요 방문객 타겟층에 따른 공간 차별화를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특정 공간에서 인간이 통상적으로 어떻게 반응하며, 또 공간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기저에 깔려 있다면 공간기획자는 더욱 효과적이고 창의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에게 그 관점을 주는 것은 뇌과학과 심리학이고요. 각자 관심사와 전공 분야를 활용하여 공간업의 부가가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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