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살에 갑자기 바리스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왜 하필 커피냐고요. 실제로 이런 질문을 던진 사람은 없었지만 왜인지 설명해야 할 것 같더라고요. 늘 나에겐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해오던 모든 것들은 그만두고 갑자기 툭 튀어나온 '커피'가 나에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꽤나 당황스러웠을 테니까요.
저의 첫 번째 꿈은 큐레이터였습니다. 그때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어요. 되고 싶은 것에 비해 나는 너무 부족한 사람이니까 그걸 들키는 게 두려워서 에둘러 말하곤 했죠. 그냥 작품에 둘러싸여 있고 싶다고. 늘 미술 작품과 아티스트들이 존재하는 그 마법 같은 세계에서 조연이라도 되고 싶다고. 그래서 그땐 뭣도 모르고 무작정 달려들었어요.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쓰고 기다리고, 그러다 정말 뜻하지 않은 큰 행운도 이따금씩 찾아왔죠. 꿈에 그리던 미술관에서 인턴으로 일해보기도 하고, 대기업의 문화예술사업부에서 근무해보기도 하고.(계약직이긴 했지만) 그런데 행운의 유효기간은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취업 준비 기간은 갈수록 길어졌고, 어렵게 정규직으로 들어간 회사는 인생 첫 사직서를 쓰는 법을 가르쳐주었죠. 그리고 마지막 직장. 앞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로 자존감은 이미 밑바닥을 친지 오래였고, 나를 써주는 회사에 송구스러워하며 하루하루 버티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죠. 답답해하던 상사들도 이해는 가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무례함과 짜증을 떨쳐내고 스스로를 계발시킬 더 이상의 힘이 남아있지 않았어요. 머릿속에는 오디오를 틀어놓은 것처럼 단 한 가지 말만 맴돌았죠. 살고 싶지 않다고.
대신 다른 선택을 하기로 했어요. 이 회사를 떠나기로. 나 스스로에게 향하던 불신과 혐오를 덜어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늘 퇴사 후 공백기에는 넘어가야 할 다음 스텝이 존재했는데 처음으로 다음을 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