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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고관절 Jan 01. 2021

집으로 찾아왔어, 바이러스가.

(7) 엑스레이


"코로나19는 엑스레이 같아. 

우리 몸에서 부러진 곳들만 콕 찝어 비춰주잖아."


누군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이런 글을 올려놨다. 내가 확진자로서 생활치료센터에 갇혀있는 어느 날, 이 문구를 보았고 그날 이후 종종 내 머릿속을 휘어잡고 있다. 발화자가 지적한 '엑스레이'로서의 코로나19의 기능은 아마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그대로 드러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일 듯 하다. 2020년 상반기, 코로나19는 종교계에서는 이단으로 분류하지만 극소수에게는 엄청난 삶의 의지가 되어줬다고 하는 특정 종교를 시작으로 한반도에 본격 상륙했으며 이후 다단계판매망, 요양병원, 이태원 클럽 등을 중심으로 존재감을 떨쳤다. 3차 유행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는 '특정집단' 사이에서의 감염이란 의미는 상대적으로 희석됐지만 여전히 육체노동자, 대면업종 등을 중심으로 거세게 유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를 감염시킨 바이러스는 우리 사회의 어떤 취약점을 노렸던 것일까. 

나는 상당기간 비대면으로 업무를 할 수 있어서 억세게 운이 좋은 경우에 속한다. 하지만 내게는 엄청난 핸디캡이 있었다. 아이 둘을 양육해야 한다는 의무. 주양육자로서 일-가정의 양립은 최근 수년간 나의 최우선 과제였다. 만약 맞벌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였다면 굳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육아와 가사를 감당해야 할 필요는 없었을지 모른다. 물론 감염의 원인을 자책하거나 후회하려는 글은 아니다. 보육기관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는 그 즉시 문을 닫아버리지만 나의 밥벌이는 그렇게 쉽게 멈출 수 없는 상황이 우리 가족의 감염의 제일 큰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나름의 분석이다. 



가까운 지인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는 사교육에 대한 원한이라도 있냐. 교회도 문 열고 술집도 문 열고 온 데가 다 여는데 무슨 단계만 높아지면 무조건 학원하고 학교부터 문을 닫아. 학원이라는 곳이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생 등에게 보육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진정 그들은 모르는 거야? 정말 애 안 키워봤어? 아님, '니 애는 너가 키워야지'라는 아주 오래된 이 나라의 고정관념이 일터에 나선 여성들을 집에 끌어앉히려는 목적인걸까?" 


여기서 잠깐, 여기서 언급하는 '학원'은 아이의 취학준비를 위해 보내는 영어유치원이나 놀이학교 등도 당연히 포함한다. 모두가 국공립 /민간 어린이집에 떡 하니 합격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울며 겨자먹기로 선택한 영어유치원이나 놀이학교는 허가는 학원으로 났지만 실상 보습/입시학원보다는 원생의 특성상 보육의 역할을 상당부분 맡고 있는 곳이다. (나만해도 코로나19 상황을 미리 예견했더라면 긴급돌봄이 제공되는 일반 유치원이나 국공립 어린이집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내려 했을 것이다.ㅜㅜ) 초등생을 둔 워킹맘 역시 아이의 등교일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온라인 수업을 챙겨야 하면서 일 가정 양립의 균형이 뿌리부터 완전히 흔들리고 있다고 들었다. 실제로 아이 보육 공백이 길어지면서 일을 그만둬야 하는 궁지에 몰린 이들이 내 주변만 해도 수두룩이다. 일을 다시 하려다 코로나19의 파고에 다시 주저앉은 엄마들?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물론 아이가 감염될 수 있는 상황을 감수하면서 일터에 나가는 상황도 절대 유쾌하지 않다. 재택과 출근이 섞여있는 나로서는 재택하는 날에는 업무 집중을 위해, 출근하는 날에는 물리적 한계 탓에 두 아이 중에 한 명을 긴급돌봄이 있는 기관에 보내왔다. (나의 유일한 희망....) 하지만 '학원'으로 분류되는 곳을 다녔던 한 아이는 하루종일 일하는 나(어떤 날은 남편일때도 있었고)의 옆에서 말 그대로 시간을 뭉개가며....하루 하루를 보내야했다. 친구들과 만날 기회를 원천 봉쇄당한 다른 아이들처럼, 아이는 친구와 유치원을 그리워하며 그렇게 갇혀있어야 했다.  당장 생계가 막막한 이들 앞에서 아이가 배움과 성장의 기회를 잃고, 육아 외주를 통해 어떻게든 일-가정 양립을 해보려 했던 워킹맘이 전염병에 감염되는 상황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문제일 수 있다. 힘들어도 죽진 않았으니까. 그래서 이 글이 탐탁치 않은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니 까짓게 뭐, 우린 더 힘들다고! 넌 당장 죽을 지경은 아니잖아? 뭐가 불만이야?! 


내 부족한 경험에만 기대 협소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진 않다. 지인의 말에 따르면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하는 확진자 중에, 10살짜리 아이도 있다고 들었다. 아이 엄마가 함께 입소해 회복을 돕는 것이 원칙이지만 그 아이의 양육자는 그걸 선택할 '최소한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가족의 도움을 바라기 어렵고, 당장 일을 나가지 않으면 정부의 몇십만원 보조금으로는 '코로나 이후'의 삶을 보장받을 수 없는 워킹맘일 가능성이 높다고 그 지인은 추정했다. 학원을, 학교를, 행정적 힘으로 좌우할 수 있는 어떤 곳들을 닫는다해도 어쩔수 없이 어떤 아이들은 '어딘가'에 머물러야 하며 그곳이 "안전한 집"일거라는 보장은 누구도 해줄 수 없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싶다. 




그래서 용기내 적어본다. 여전히 워킹맘은 자아실현을 위해 일하는 팔자좋은 여자들이라고 폄훼하는 이 사회에서, 우리도 한 명의 노동자이자 생계를 위해 매일 출근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긴급돌봄을 보내면 아이를 전염병의 구더기 속에 내던지는 엄마로 욕 먹는 상황도 정말 기가 차는 지점이다. 그 아무리 정부에서 돌봄을 위한 휴가를 보장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이들의 일터가 실질적으로 그 특수한 휴가를 무한정으로 쓸 수 있게 해주는 곳은 아니라는 점도 덧붙이고 싶다. 혹시라도 코로나19를 잘 이겨낸 다음, 몇년 후에 또다시 팬더믹의 시대가 찾아온다면 정책결정권자들이 일-가정 양립에 자신들의 삶을 걸고 있는 수많은 양육자들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묘안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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