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 고관절 Jan 11. 2021

집으로 찾아왔어, 바이러스가.

(8) 결핍


결핍: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


요 며칠간 브런치가 뜸했다. 그전에는 너무 심각한 이야기만 풀어놓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래서일까. 나의 목과 어깨가 운동부족으로 단단히 굳어버린 것처럼 글이 재미가 없다.

보시는 분들도

어휴~ 지겹다, 하시지 않았을지. (ㅎㅗㅎ);;;;


아무튼 '격리 해제'라는 보건서 직인이 찍힌 서류를 방패삼고 일상으로 복귀한 나는 이제서야 겨우 생활치료센터에서의 경험을 간신히 웃으며(?) 풀어놓을 수 있게 됐다. 코로나19로 목숨을 잃거나, 심하게 아프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자. 각설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자. 코로나 생활치료센터에서 어떤 것이 가장 강력한 기억이었는가?


기억 속 0순위에 해당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도. 시. 락.


열흘 가량 이어진 나의 생활치료센터 격리기간은

바로 조리해 먹는 음식이 가장 결핍된 시간들이었다. 요리하는 것을 상당히 좋아하고 퇴근 후 아무리 힘들어도 가족들의 식사를 챙기는 걸 즐겼던 나는 그곳에서 요리할 자유를 잃었다. 그저 전자레인지 하나 있음에 무한 감사해야 하는 상황...


물론! 그 와중에도 아이를 먹인다며 어떤 짜장(오뚜기냐 베베쿡이냐 피코크냐 그것이 문제로다) 골라 데워줄 것인가 정도의 고민을빼놓지 않았던 나지만. 암튼 조리기구가 없어서 영하의 날씨에 차갑게 식은 밥을 데워 꾸역꾸역 먹었던 기억이 가장 강렬하다.

안타깝지만 전자레인지 크기와 도시락 틀이 맞지 않아 반찬은 데울 수 없었다. 밥 조차도 전자레인지로 데워도 어쩐지, 밥솥에서 막 지은 밥하고는 다른..몬쥬아시죠.........ㅎㅎㅎ


게다가 여러 회사의 도시락이 교차 지원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딱 한 회사 단일 공장(?)에서 제공되다보니 너무나도 뻔한 맛... 처음에는 "와 이런 도시락도 있네" 하다가 같은 밥 서른끼 가까이 먹다보면 "아 이것이 바로 짬밥인가" 싶은.

예를 들어 식단은 메인 반찬으로 제육볶음과 불고기, 너겟, 돈까스 정도가 나오는데. 이게 이틀에서 사흘 사이로 무한반복된다. 아마도 도시락으로 담을 수 있는 메뉴가한정적이라 그런거 같다. 오리로스 구이가 나왔던 날은 열흘 중 딱 한번이었다.


(그렇다 바로 이 펜로즈의 계단처럼, 비슷한 맛의 도시락이 연거푸 나오는 것. 신 메뉴에 대한 기대와 절망이 계속된다. 사실 뭐 그곳에서 할 것이 없어서

밥만 바라보고 있기에 이런 기억만 남아있는지도....)


아 그리고 또 다른 결핍.. 뭐가 있었나? 오호, 그래 커튼. 생활치료센터에는 커튼이 없었다. 방충망이 없다는 건 앞서도 적었다. 햇빛이 마구마구 공격해서 새나라의 어린이가 될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를 보고 아무리 방탕하게(?) 늦게 잤더라도 무조건 해뜨면 나도 눈 떠야 함....................(올빼미 족의 내적비명)


그래서 도시락으로 지급되는 상자를 뜯고 펼쳐서

대형 창문에 초대형 종이 커튼을 만들어 붙이기도 했는데 그걸 다음 분이 보고 '거적대기'라며 치워버리셨을 수도 있겠다.

(비상구를 알려주는 초록 불빛이 당신의 수면을 방해할 것이니 웬만하면 떼지 마시오)



그러고보니 청록색이나 황색 테이프도 없어서, 가족에게 부탁해서 받았다. 입식생활이 불가능한 공간이어서 바닥에 주저앉은채로 살아야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드러눕기 시전....

(이것은 빠른 회복을 돕기 위한 배려깊은 구조인지도 모르겠다)



다음은 공간의 결핍. 4평? 정도 되는 공간에 3명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보니, 대학시절 사용했던 기숙사도 떠올랐다.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 쓰기에는

상당히 좁은 공간이었는데 화장실 청소는 어떻게 배분할른지 급 다른 방 사정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우리방은...... 하녀 모드 장착한 내가(라기 보다는 배우자가 나보다 늦게 아프기 시작했다)

화장실 세제를 구해와서 열심히 쓸고 닦았던 기억도 난다. 방과 화장실이 워낙 좁아서 15분이면 끝난다.



그러고보니 나쁜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일상으로 돌아오니 모든 것이 다 감사하다.


-가족이 함께 한 방을 쓸 수 있었던 행정적 조치가 우선 감사하고.

-음식을 직접 해먹을 수 있다.

-배달도 시킬 수 있다.

-집이.... 5평보다는 넓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운동할 수 있다.

-욕조가 있다 ㅠㅠㅠㅠㅠㅠㅠㅠ

-식탁과 의자가 있다 ㅜㅠ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으아아앙)

-세탁기를 돌릴 수 있다. 손빨래 안녕

또또또 너무 많아서 다 적을 수가 없다.

2020년 한 해를 거하게 액땜한 나는 2021년,

새롭게 맞이한 위드 코로나의 삶을 행복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훈련을 마치고

일터로, 일상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저의 쾌유를 빌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혹한에도 진단검사를 위해 야외에서 고생하시는 모든 공무원 및 군인 여러분, 확진자와 밀접접촉자들에 연락을 돌리느라 불철주야 전화하시는 각 시도군청의 공무원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덕분에 잘 회복했습니다. :)



작가의 이전글 집으로 찾아왔어, 바이러스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