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없이, 당신과 함께
봄이 막 문턱을 넘으려던 어느 날, 아이들이 조심스레 내게 말했다. “아빠, 올해는 꼭 여행 가요.” 그 말은 마치 오래된 집 안으로 스며드는 바람결처럼 흩어져 들어왔고 나는 대답 대신 미소만 지었다. ‘여행’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을 스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녀가 떠난 뒤로 여행은 나와 상관없는 먼 세상의 일이 되었다. 짐을 싸는 일조차 마음의 닫힌 문을 억지로 여는 일처럼 버거웠고, 새로운 길로 나아간다는 것은 언젠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사람과 함께 보았던 풍경과 마주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우리는 예전에 얼마나 많은 길을 함께 걸었는가. 그녀의 손이 스치던 돌담길, 그녀의 눈빛 속에서 반짝이던 햇살, 그녀가 조용히 감탄하던 강물의 흐름, 그런 모든 순간과 장소가 이제는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풍경이 되어버렸다.
올해는 내게 칠순이라는 시간의 경계가 다가오던 해였다. 아이들은 강남 "조선 팰리스 호텔" 부페에서 수십가지의 다양한 요리가 펼쳐진 거대한 축하 자리를 만들었지만, 나는 기쁜 척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없는 칠순이라는 사실 자체가 마음 한편을 무겁게 눌렀기 때문이다. 케이크의 촛불이 흔들리는 걸 바라보며 나는 그녀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정숙 씨, 당신과 함께 이날을 맞이하고 싶었어요.” 아이들은 침묵으로 나를 이해했고, 생일밤은 그렇게 축하 속에서 조용히 지나갔다. 그런데 계절은 나의 마음과 달리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 겨울이 물러난 자리로 봄빛이 스며들고, 길가에는 벚꽃이 활짝 피어나며, 창문을 스치는 바람은 오래된 공기를 흔들어 깨웠다. 그 바람 속에서 문득 그녀의 향기가 묻어나는 것 같아 잠시 눈을 감게 되었고, 오래전 그녀가 미소 지으며 지나가던 모습들이 너무 생생하게 떠올라 가슴이 저릿해졌다.
그날 저녁, 아이들이 작은 노트북을 들고 와 화면을 켰다. 로마의 골목길, 베네치아의 물빛이 흔들리는 수로, 스위스의 산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아빠, 이 번에는 이곳으로 가요. 엄마가 좋아하던 나라잖아요.” 아이들의 말은 조용했지만 강직했고, 그 순간 오래 닫혀 있던 마음 한구석이 아주 작게 흔들렸다. 그녀와 함께 떠났던 마지막 여행은 스페인이었다. 그라나다의 붉은 노을 아래에서 그녀는 유난히 행복한 얼굴로 웃었다. 알람브라 궁전의 정원에서는 피어난 장미 한 송이 앞에서 한참이나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걸 만나면 살아 있다는 게 느껴져요.” 그녀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녀의 손을 조금 더 꽉 잡아주었을 뿐이다.
세비야의 좁은 골목을 함께 걸으며 그녀는 “이 길, 우리 다시 꼭 오자”라고 말했다. 그 말은 약속이 되었고, 지금은 기도처럼 남아 있다. 그때 우리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 여행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병은 이미 깊어져 있었고,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모든 걸 이해했다. 하지만 우리는 슬픔을 꺼내놓지 않았다. 남은 시간을 슬픔으로 채울 수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밝고 환하게, 오래 기억될 수 있도록 모든 순간을 마음에 새겼다. 사진을 찍고, 웃고, 음식을 나누며, 서로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채웠다. 마드리드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녀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었고, 나는 구름바다가 펼쳐진 창밖을 바라보며 속으로 빌었다. ‘이 순간이 영원히 머물러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시간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떠난 뒤, 집은 너무도 조용했다. 거실의 소파도, 식탁의 의자도, 침대의 한쪽 자리도 온통 그녀의 빈자리로 가득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옆자리가 비어 있었고, 저녁 식탁에 앉을 때면 맞은편 의자가 텅 비어 있었다. 그 빈자리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마음 한구석을 툭 하고 부러뜨리는 슬픔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생각할 수 없었다. 여행은 기쁨과 설렘이 있어야 하지만 그녀 없이 내가 그런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싶었다. 아이들이 권해도, 친구들이 조심스레 등을 떠밀어도 나는 늘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아니야. 아직은…”
그러던 어느 깊은 밤, 서랍을 정리하다가 낡은 사진 한 장이 손끝에 걸렸다.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에서 그녀가 은은한 조명 아래 환하게 웃던 모습이었다. 분수대 뒤로 반원형 건물이 빛을 머금고 있었고, 그녀의 미소는 그 건물보다 더 따스했다. 사진 한 장이 한 권의 책 보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고, 나는 오래도록 그 앞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속삭였다. “당신이 보고 싶어 하던 하늘, 이번에는 내가 대신 보고 올게요.”
나는 여행가방을 꺼냈다. 손끝이 떨렸지만 가방을 닦아내며 스페인에서 돌아오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 그녀는 작은 기념품들을 하나하나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 “우리의 추억이에요.” 그 말투가, 그 표정이, 그 눈빛이 아직도 눈앞에 남아 있다. 가방을 열자 와인빛 스카프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좋아하던 향수 냄새가 아주 희미하게 스며 있었고, 나는 그 스카프를 한참이나 손에 쥐고 있었다. 그것은 짐이 아니라 이번 여행의 동행이었다. 나는 스카프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비행기표와 여권, 그리고 그녀의 사진 한 장이면 충분했다. 그녀는 늘 내 곁에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아이들은 여행 일정을 건네며 말했다. “로마 4일, 베네치아 3일, 스위스 7일이에요. 엄마가 좋아하던 곳들로만 짰어요.” 딸은 덧붙였다. “그렌델발트에서 하루 더 머물 거예요, 아빠. 엄마가 꼭 다시 가고 싶다고 말했잖아요.”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아이들은 나의 슬픔을 억지로 고치려 하지 않았고, 대신 조용히 옆에 머물며 내가 다시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칠순의 여행이라니, 누군가는 늦은 나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이 여행은 새로운 삶을 여는 첫걸음이었다. 그녀 없는 세상을 인정하고, 그녀와 함께했던 기억을 품은 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시작이었다. 아이들과 떠나는 14일의 여정 속에서 나는 분명 그녀를 느끼게 될 것이다. 로마의 햇살은 그녀의 미소처럼 따스할 것이고, 베네치아의 물결은 그녀의 숨결처럼 잔잔할 것이며, 융프라우의 바람은 그녀의 목소리처럼 부드럽게 내 곁을 스칠 것이다. 그녀의 손길은 사라졌지만 그녀의 존재는 여전히 내 하루를 움직이고 있다.
이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그녀가 남긴 시간의 조각들을 따라 걷는 길이고, 내 안에 깊숙이 저장된 기억을 다시 숨 쉬게 하는 순례였다. 여행을 하는 내내 나는 셀 수 없이 그녀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그녀는 바람이 되어 내 어깨를 스치고 햇살이 되어 내 시야에 번질 것이다. 출발 전날 밤, 나는 그녀의 사진 앞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정숙 씨, 이제 가볼게요. 당신이 좋아하던 곳으로. 당신이 가고 싶어 하던 그곳으로.” 사진 속 그녀는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알았어요, 함께 가요.”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거리가 천천히 뒤로 밀려났고, 우리가 함께 걸었던 길과 함께 웃던 장소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 길들을 한번 더 눈에 담으며 나는 이제 더 먼 곳으로 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두렵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 속에서도 작은 설렘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사랑했던 풍경을 만난다는 것, 그녀의 기억 속에 원하던 곳을 내가 직접 걸어본다는 것이 내게는 확인할 수 없는 용기이자 새로운 희망처럼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지금, 다시 길 위에 선다. 그녀가 걸었던 마음의 길을 따라, 그녀가 남긴 미소의 끝을 따라, 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까지 이 여행을 글로 남기려 한다. 이 글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그녀와 나, 그리고 우리 가족이 걸어온 사랑의 세 번째 장이다. 칠순의 나이에 시작하는 새로운 이야기, 슬픔을 안고 추억을 품으며 사랑을 기억하는 길이다. 정숙 씨, 지금부터 당신과 함께하는 여행이 시작됩니다. 당신이 없지만, 당신과 함께. 그 모순된 진실을 안고 나는 오늘 비행기에 오른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는 로마에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