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리헨에서 클라이네 샤이덱까지
오전 내내 융프라우요흐 정상에서 만년설의 위용에 압도당한 채 내려온 길이었다. 유럽의 지붕이라 불리는 그 높은 곳에서 대자연의 서늘한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낸 뒤, 우리는 그린델발트로 내려와서는 곧장 맨리헨으로 향하는 곤돌라에 다시 몸을 실었다. 기계의 힘을 빌려 다시금 고도를 높이는 동안, 창밖으로 멀어지는 마을의 풍경을 보며 나는 내가 평생 지어 올렸던 수많은 건축물과 그 속에 담긴 직선의 시간들을 떠올렸다. 땅 위에서는 그렇게 커 보이던 것들이 고도가 높아질수록 한낱 점에 불과해지는 광경은, 내 인생의 성취와 고민들 또한 우주의 시선에서는 그토록 작은 것이었음을 암시하는 듯했다.
해발 2,230m의 맨리헨 정점에 다시 다다랐을 때, 곤돌라 문이 열리며 훅 끼쳐오는 냉기는 융프라우 정상의 그것과는 또 다른 결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 더 부드러워진 공기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어 내 안의 묵은 먼지들을 단숨에 씻어내는 것 같았다. 그것은 단순히 차가운 바람이 아니라, 수천 년의 시간을 머금은 빙하가 이방인에게 건네는 엄숙하고도 정갈한 인사였다. 그곳에는 붉은 창틀과 회색 벽면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베르그하우스 맨리헨' 휴게소가 웅장한 설산을 병풍 삼아 서 있었다.
나는 그 건물 앞에 서서 한참 동안 벽면의 질감과 구조를 바라보았다. 건축가로서의 오랜 습관이 도진 것이다. 척박한 고산 지대의 눈보라와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단단하게 뿌리내린 그 건물의 골조를 보며, 나의 70년 인생도 저처럼 모진 풍파를 견디며 버텨왔음을 새삼 실감하며 기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건물이 지닌 정직한 무게감은 마치 나에게 "당신도 참 고생 많았다"라고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융프라우 정상의 거친 바람을 견디고 내려온 직후여서 그런지, 그 휴게소의 붉은 창틀이 주는 온기가 유난히도 다정하게 느껴졌다.
휴게소 테라스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정면을 마주했다. 그곳엔 아이거, 멘히, 그리고 융프라우가 다시금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알프스를 상징하는 이 세 개의 거대한 설봉은 마치 세 명의 거인이 어깨동무를 한 채, 칠순의 고개를 넘어온 나를 굽어살피는 듯한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평생 건물을 세우며 수많은 구조물을 보아왔지만, 자연이 설계한 이 압도적인 수직의 미학 앞에서 인간의 언어는 한낱 미약한 소음에 불과했다. 저 거대한 바위산들이 뿜어내는 침묵은 그 어떤 웅장한 교향곡보다 깊은 울림으로 내 가슴을 쳤다.
이번 여행은 나의 칠순을 기념하기 위해 자녀들이 정성껏 마련해 준 자리다. 7년 전인 2019년, 아내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떠났던 스페인 여행의 뜨거웠던 태양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때 알람브라 궁전의 붉은 벽을 거닐며 우리는 다음 여행지로 이 눈부신 알프스를 약속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약속을 가슴에 묻은 채 먼저 먼 길을 떠났고, 나는 오늘 그녀의 환영을 품에 안고 자녀들과 함께 이 높은 곳에 올랐다. 방금 정상에서 보고 온 저 만년설의 휘황찬란함 속에 그녀의 영혼이 깃들어 있을 것만 같아 자꾸만 고개를 들어 산을 바라보게 되었다.
만약 그녀가 지금 내 곁에 있었다면, 이 눈부신 설경을 보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아마 특유의 고운 미소를 지으며 내 소매를 꼭 붙잡고 "여보, 우리 참 잘 살아왔네요. 당신 칠순 정말 축하해요"라고 속삭였을 것이다. 자녀들이 건네는 따뜻한 차 한 잔에 몸을 녹여보지만, 가슴 한구석에 들어찬 시린 그리움의 바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이 풍경이, 이제는 그녀에게 보내는 나의 긴 편지가 되어 발밑의 눈줄기처럼 흘러내린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우리는 맨리헨에서 클라이네 샤이덱까지 이어지는 약 2.5km의 '파노라마 트레일'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책로 중 하나로 칭송받는 이 길은, 다행히도 칠순의 노구가 감당하기에 충분히 완만하고 다정했다. 다만, 나이 탓인지 두어 번의 낭떠러지기 길을 걸을 때는 살짝 어지러움이 몰려오기도 했다. 그다음에는 정상에서 느꼈던 긴장감이 풀어지며, 길은 내 젊은 날의 가팔랐던 욕심을 타이르듯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내리막으로 이어졌다. 건축 현장에서 수평을 맞추기 위해 사용하던 트랜싯처럼, 내 마음의 중심도 이 길 위에서 비로소 흔들림 없이 수평을 찾기 시작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시선은 자꾸만 정면의 설산으로 향했다. 눈앞의 풍경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 내가 지금 땅을 딛고 걷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들었다. 10월임에도 살짝 더운 기운이 감돌아 웃옷을 벗고 걸어야 했지만, 덕분에 몸에 닿는 공기는 더욱 상쾌했다. 티 없이 맑고 파란 하늘 아래로는 끝없는 푸른 초원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 평온한 대지를 보며 생각했다. 나 또한 저 너른 들판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모진 계절의 변화 속에서도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단단히 뿌리내려 왔노라고.
직선의 삶만을 정답이라 믿어온 나에게 이 굽이굽이 휘어진 길은 속삭였다. 서두를 필요 없다고, 때로는 굽어가는 길이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 그리고 이 찬란한 풍경을 온전히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70년 생은 충분히 보상받았노라고 말이다. 길은 좁았으나 그 안에서 마주하는 대자연의 스케일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광활했다. 내 옆을 지키며 걷는 아들과 딸의 모습이 대견했다. 아들은 어느새 누군가의 스승이 되어 삶의 지혜를 나누고 있고, 딸은 제 몫을 다하는 당당한 사회인이 되었다.
아이들이 이만큼 자라는 동안, 나는 과연 어떤 아버지였을까. 건물을 세워 올리던 사람으로서, 아이들의 삶까지도 내가 다져 놓은 길 위에서만 움직이길 바랐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빠, 발밑 조심하세요. 여기 돌이 좀 많아요." 아들의 따뜻한 목소리에 나는 비로소 현실로 돌아왔다. 알프스의 바람이 무거워진 마음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 바람 앞에서, 지나온 날의 후회도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한 불안도 한순간에 가벼워졌다. 마치 손에 쥐고 있던 먼지가 바람에 흩어지듯이.
지금 이 순간, 자녀들과 나란히 서서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같은 바람을 맞는 것. 그것이야말로 칠순의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사치스럽고도 고귀한 행복임을 깨달았다.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오는 바람은 때때로 차가웠지만, 내리쬐는 햇살은 따스하게 등을 밀어주었다. 마치 먼저 떠난 아내가 하늘에서 지켜보며 내 등을 다독여주는 것만 같은 온기였다. "여보, 당신 몫까지 내가 이 아름다운 길을 걷고 있소.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나 잘 자랐소. 이제 걱정 마시오."
나는 마음속으로 수백 번도 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를 올렸다. 저 설산의 만년설이 녹아 강물이 되듯, 내 안의 응어리진 그리움도 조금씩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길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풍경은 매 순간 그 모습을 달리했다. 왼편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그 아래로 펼쳐진 그린델발트의 초록색 계곡이 보였고, 오른편으로는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만년설의 장벽이 버티고 있었다. 건축가로서 수많은 공간을 창조해 왔지만, 자연이 설계한 이 압도적인 공간감 앞에서는 경건한 마음마저 들었다.
어떤 정교한 도면도 저 산의 능선이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이길 수 없으며, 어떤 화려한 마감재도 저 만년설이 뿜어내는 순백의 빛깔을 흉내 낼 수 없다. 나는 그동안 내가 만들어온 결과물들이 얼마나 미약했는지를 인정하며, 대신 창조주의 위대한 작품 속에 잠시 머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약 한 시간 반 정도 이어지는 이 짧은 산책은 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명상의 시간이었고,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었다.
어느덧 저 멀리 클라이네 샤이덱 역의 붉은 지붕이 보이기 시작했다. 해발 2,061m. 이곳은 융프라우요흐로 향하는 열차와 지상으로 내려가는 열차가 만나는 교차점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노란색과 빨간색이 선명한 산악열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는 톱니바퀴를 맞물리며 다시 그린델발트를 향해 천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덜컹거리는 기차 창밖으로 조금 전 우리가 걸어왔던 맨리헨의 능선이 멀어져 갔다. 위에서 내려다볼 때는 세상을 다 가진 듯 광활한 대지였는데, 기차에서 멀리 바라보니 산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가느다란 실선 하나에 불과했다.
그 작은 길 위에서 나는 우주의 경이로움을 보았고, 일상의 자질구레한 번잡함을 잊었으며, 남은 생을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칠순이라는 나이는 인생의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장을 열기 위한 서막임을 알프스는 무언의 가르침으로 전해주었다. 다시 돌아온 그린델발트 마을은 여전히 평화롭고 따스했다. 거대한 산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침묵하며 서 있었지만, 그 산을 오르기 전의 나와 내려온 후의 나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 인생의 도면에는 이제 '알프스의 파노라마'라는 가장 아름다운 곡선 하나가 선명하게 추가되었다. 규격화된 수치와 딱딱한 질감의 콘크리트가 아닌, 부드러운 흙길의 감촉과 자녀들의 온기가 내 기억의 설계도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것은 70년 인생 중 그 어떤 프로젝트보다도 성공적이고 감동적인 완공이었다. 융프라우 정상을 마주하고 내려와, 맨발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걸어 내려간 그 길은 내 평생의 여정 중 가장 찬란했던 2.5km로 기록될 것이다.
이제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매일 밤 노트북 앞에 앉아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 오늘의 이 감동을 한 자 한 자 눌러쓸 것이다. 우리가 함께하지 못한 물리적 시간은 늘 아쉽지만, 내 영혼의 설계도 안에서 그녀는 언제나 나와 함께 걷고 있음을 고백하려 한다. 오늘의 투명한 공기와 아이들의 든든한 등, 그리고 멘리헨의 붉은 창틀 너머로 보이던 그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그녀에게 선물하고 싶다.
아직도 칠순 여행의 내가 걸어가야 할 여정은 여전히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직선의 강박을 내려놓고 알프스의 길처럼 때로는 굽어지고 때로는 멈추며, 내 앞에 펼쳐질 파노라마 같은 풍경들을 온전히 사랑하며 묵묵히 나아가려 한다. 자녀들이 선물해 준 이 귀한 시간 덕분에 나의 노년은 이제 그 어떤 화려한 건축물보다도 견고하고 아름다운 곡선으로 채워지고 있다.
오늘 본 설산의 평화로운 침묵을 가슴에 품은 채, 나는 이제 내일의 발걸음을 준비한다. 내일은 또 다른 절경이 기다리는 피르스트산에 오를 예정이다. 그곳에서는 또 어떤 하늘과 어떤 바람이 나를 맞이할까. 그리운 아내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아직 한 보따리 남았기에, 나의 여행은 내일도 쉬지 않고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