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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고 나니 반반으로 나눠가졌던 의사 결정권이 모두 나에게로 돌아왔다. 전 애인이 가장 그리운 순간은 팔짱 끼고 걸어가는 연인을 볼 때도 아니었고, 날마다 전화하던 밤이 올 때도 아니었고, 다름 아닌 급한 일이 생길 때였다. A와 B 중 무얼 선택해야 할지 고민될 때면 나는 그를 찾았다. 조언을 듣고도 반대로 행동할 때도 있었지만, 일단 남에게 한번 검사받고 결정하는 것에 신중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고민’에서 ‘고심’으로 변하는 순간을 나는 좋아했다. 그 사이에는 늘 조언을 구하는 나와 조언을 해주는 그가 있었다.
그런데 늘 곁에 있던 애인이 한순간에 증발해버리고 나니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었다. 나보다 도덕적이고 현명하게 느껴지던(다른 이들의 주장과는 다르다) 그 없이 지내자니 어쩐지 다리 한쪽만으로 생활하는 기분이 들었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그에게 연락하고픈 충동을 느꼈다. 떠먹여 주는 밥만 열심히 삼키다가 정작 내가 밥에 무슨 반찬을 올려놓고 입을 벌리지, 막막해진 것이다. 내가 혼자서는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었나 싶어 비참해지기도 했다.
그가 떠난 후에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작은 선택부터 내가 결정하자. 무얼 할까 말까부터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하는 결정까지. 고민이 있으면 카톡창에 내 이름을 검색했다.
같이 있으면 힘 빠지는 친구랑 약속이 잡혔는데 나가기 싫어.
답은 오지 않는다. 고민한다. 상대방이라면 어떤 대답을 했을까. 상황을 더 자세히 설명한다.
사실 공황 때문에 몸이 좀 너덜너덜하기도 하고.
공황 때문에 힘든 거면 핑계를 대서라도 다른 날로 미룰 수 있지 않나. 상대가 내 상황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인지를 떠올린다. 기분 좋은 날에 만나는 것도 방법이겠다. 그땐 함께 있어도 기력이 덜 빠질 것이다.
사정 설명하고 나중으로 미루는 게 낫겠네.
고민에 대한 답변의 카톡도 왼쪽 흰색 말풍선이 아닌 오른쪽 노란색 말풍선으로 온다.
한동안 이 일을 계속했다. 사고 싶은 물건들 링크만 남겨두던 나와의 채팅방이 이런저런 고민과 결정으로 가득 찼다. 가끔 그의 이름을 쳐서 너 없이도 잘 사는 방법을 알려달라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대신 그런 질문들도 모두 나에게 던졌다.
4년 만난 상대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어?
기대면 내 머리에 꼭 들어맞던 그의 어깨를 어떻게 잊을 수 있어?
고민한다. 이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뭐가 있을까. 느닷없이 떠난 남자의 곁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생각한다. 내 선에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을 떠올린다.
답장을 보냈다.
잔인하지만, 시간만이 해줄 수 있는 일들이 있어. 그게 이런 상황인 것 같아.
내가 나에게 한 말로만 가득 찬 채팅방을 보자니 뭐 하는 짓인가 싶어 눈물이 났다. 이렇게 스스로에게만 징징댔다면 그가 떠나는 일은 없었을까. 내 공황이 지쳐 떠난다는 그에게 그런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으면, 그럼 괜찮았을까.
네가 너인 게 어떻게 네 약점이 될 수 있어, <대도시의 사랑법>
질문하지도 않았는데 답장이 왔다. 사실은 내가 쓴 것이지만.
이제 내 채팅방은 다시 생활 꿀팁이나 장바구니에 넣고 싶은 물건들로 들어차기 시작했다. 나에게 묻고 나에게 답하는 일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아주 가끔, 천사 같다고 느꼈던 그의 환한 웃음이나 뼈가 으스러지듯 꽉 껴안아주던 품이 그리울 때만 들어왔다. 지난 대화들을 스크롤했다. 나풀대는 마음속에서도 명확하게 조언해 주던 또 다른 나의 말을 상기했다.
시간이 해결한다, 내가 나인 것을 어찌할 순 없다.
이제 그와 나눴던 대화창은 사라졌지만, 나와의 대화창은 부러 지우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나와 헤어지는 일은 웬만하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