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윤서 Nov 25. 2024

차라리 번아웃이라

  번아웃이 자주 찾아오는 편이다. 이전에는 왜 이렇게 중요한 순간마다 힘이 없지? 하고 책망했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번아웃임을 안다. 쉽게 열기가 붙고 또 쉽게 지쳐 식는 사람이라 일단 다 저질러놓고 울며 수습하는 것이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중국에 와서 한동안 에너지가 좋았다. 넘치는 힘으로 수용 가능한 거의 모든 걸 했다. 두 개의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토요일마다 인턴에 나가고, 쉬는 날이면 어김없이 상해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그것도 모자라 글수업에 유튜브까지. 지치지를 않으니 이 정도를 기본값이라 여겼다. 바쁜 내가 좋은 이유는 사사로운 감정에 빠지지 않아도 되어서였다. 막 이별한 데다 친구 하나 없는 복학생으로 학교생활을 하는지라 더더욱 바쁜 날을 빌렸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힘든 일도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것이 되곤 했다. 그래,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 싫어하는 걸 조금만 감내하자. 귀찮은 공부도 그렇게 생각하면 그래도 나았다. 중국으로 가는 일이 곧 죽음으로만 느껴지던 게 언제였냐는듯, 상해에서의 시간 또한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런데 방심하지 말라는 말이 그래서였을까. "오늘은 손님이 별로 없네요." 하는 순간 사람이 우르르 몰린다는 카페의 괴담(?)처럼 생활에 쉽게 마음을 먹은 순간 이런저런 일이 들이닥쳤다. 수십 번의 악몽과 체력 저하, 스트레스성 폭식, 갑자기 들이닥친 논문과 시험. 급해질수록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거리는 스타일이라 더 골몰을 앓았다. 아니, 스트레스 정도가 아니라 화병이 날 지경이었다. 운전을 할 때부터 가만히 앉아있는 순간까지. 가슴 안에 있는 묵직한 추가 계속 앞으로 쏠려 함께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속에 화는 끓는데 어떻게 터트리고 사는지는 모르고... 생활의 전반이 점점 일그러져갔다. 그나마 오토바이라도 타지 않으면 정말 이대로 가슴이 쪼르라들까 걱정했다. 그래, 다시 번아웃이 시작된 것이다. 


  번아웃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한편으론 존재가 고맙기도 하다. 나의 힘듦이 하나의 단어로 표명될 수 있을 때 느끼는 속시원함이라는 게 있으니까. 삶이 지치면 '그래. 이건 단지 _____ 일뿐이다.'에 들어갈 정확한 단어를 찾기 마련이다. 그런 이유로 '번아웃'이라는 명명이 있어 다행이다. 잠깐 푹 꺼졌지만 결국 올라갈 구간이라는 걸 전제하는 말이라서 그럴까. 지치는 얼굴과 묵직한 심장으로 글을 쓰는 지금도 차라리 이 정도의 깊이라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