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어느 날 점심시간.
거의 모든 아이들이 운동장에 놀러 나가고 교실에는 몇 명만 남아 있었다.
점심시간에 교실에 남아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조용조용 자기 할일을 하기 때문에 나도 막간을 이용해 내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반 무진이(야무진, 10세, 가명, 야무져서 야무진)가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순수한 대상 자체는 일상 세계에서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는 하이데거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질문의 내용은 각색하였습니다.
문제 발생.
내가 모르는 내용이었다.
보통은 아이가 한 질문의 답을 모르면
1. 역으로 아이들에게 질문을 해서 아는 아이가 답하게 하거나
2. 생각하거나 찾아볼 시간을 주고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한 다음 검색해 보고 알려주는데
그 날은 업무에 집중한 나머지 대충 대답하고 말았다.
"몰라?"
.
.
.
"헐."
무진이의 눈이 커지고 입은 벌어졌다.
무진이가 뒤를 돌아 성적이(내성적, 10세, 가명, 내성적이어서 내성적)에게 말했다.
"야.. 선생님이 모른대."
성적이의 눈도 커지고 입도 벌어졌다.
안 돼.
내가 무진이와 성적이의 환상을 깨버리고 말았다. 내 순간의 귀찮음으로 인해.
'선생님도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은 '선생님은 무엇이든지 다 안다'고 생각했던 열 살 무진이와 성적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무진이와 성적이가 '선생님도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 알게 되어서는 안 됐다.
이런 건 나이 들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어야 했다.
이날 이후로 나는 아이들 앞에서 '모른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교권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해도 여전히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내가 모르는 걸 다 아는 사람'이니까.
누군가 "선생님도 모르는 것이 있나요?"라고 물으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네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