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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Apr 15. 2024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 이 글에는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024. 4. 11.


곽에게서 연락이 왔다.

영화 예매권이 생겼으니 내일 같이 영화를 보자고 했다.

곽이 <파묘>를 봤는지 물어봐서 보긴 했는데 또 봐도 괜찮다고 했다.

곽은 아니라고 그러면 다른 영화를 보자고 했다.

집에서 가까운 영화관 상영 시간표를 확인해 보았다.

곽과 함께 볼만한 영화가 두 편 있었다.

<쿵푸팬더 4> 그리고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두 영화의 관람객 평점과 관람평을 확인해 보았다.

확인하기 전까지는 <파묘>를 또 보아도, <쿵푸팬더 4>를 보면서 시간을 떼워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상관이 있어졌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가 꼭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2024. 4. 12.


영화를 보기 전에 곽에게 감사의 표시로 커피를 샀다.

사장님이 키우는 고양이가 있는 카페였는데 고양이가 무지 예뻤다.

아직 다 자라지 않아 사람 나이로 치자면 청소년쯤 된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자다 말고 일어나서 카페를 한 바퀴 돌며 모든 테이블에 들러 사람들에게 관심을 표현했다.

사람들은 모두 고양이를 반기며 좋아했다.

처음 본 사람에게 다가가면 환영을 받고 냄새를 맡으면 기쁨을 주는 존재라니..

역시 나도 다음 생에는 삼식이로 태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카페에 올 때는 츄르를 사 와서 줘야겠다고 다짐하다가 사장님이 싫어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만뒀다.

오는 손님마다 고양이에게 츄르를 준다면 고양이는 삼식이처럼 뚱뚱해질 것이다.

'삼식이처럼 뚱뚱한 게 뭐 어때서? 왕크왕귀 몰라?'

나는 왕크왕귀를 안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에서 삼식이가 제일 귀엽다.


곽은 일본 영화를 본 적이 몇 번 없다고 했다.

나는 일본 영화는 특유의 감성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다고, 오그라드는 걸 싫어하면 불호일 수도 있다고 미리 말해주었다.

그런데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내가 지금까지 봐온 일본 영화들 중에서 가장 담백했다.

오그라드는 걸 싫어하지만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나는 담백한 일본 영화의 등장에 감동해 버렸다.

처음에는 '곽도 재미있게 보고 있을까?' 생각하면서 영화를 봤다.

나중에는 '이게 재미없다면 정말 뭘 모르는 놈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영화를 봤다.

곽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이런 영화가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곽에게 고마웠다.

이 날은 곽의 생일이었는데, 곽이 나에게 이 영화를 선물해 준 것 같았다.


'꽃'은 예쁘지만 결국 시들어 버린다.

그런 이유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꽃에 비유한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이 영화는 제목에서 이미 결말을 알려 주고 있다.

키누와 무기의 사랑은 꽃다발처럼 예뻤지만 결국 시들어 버리고 만다.

영화를 보면서 나와 고니를 생각했고, 나의 친구들과 그들의 연애를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키누와 무기처럼 사랑을 시작하고 변해 간다.

그런 점에서 키누와 무기의 사랑은 우리들의 사랑과 닮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키누와 무기처럼 헤어지지는 못한다.

그런 점에서 키누와 무기의 사랑은 특별하다.

우리들의 사랑이 무관심 속에 시들어 말라비틀어지는 동안

키누와 무기의 사랑은 한 송이 한 송이 정성껏 말려진다.

나는 고니와 헤어지지 않을 것이지만 내가 고니와 헤어지게 된다면 꼭 둘처럼 헤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곽은 나에게 그렇게 헤어질 수 있는지 물었다.

"아니."


고니를 만나기 시작할 때 나는 만나는 동안 우리의 사랑이 시들 때를 근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사랑이 시들 때를 근심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의 고니가 좋은데.. 고니가 무기처럼 변하면 어떡하지?'

'고니가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재미있는 영화를 보아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정 아저씨가 되어 버리면 어떡하지?'

하지만 고니가 변할 가능성만큼이나 내가 변할 가능성도 있다.

MBTI 뇌절에 따르면 아무래도 고니가 변할 가능성보다는 내가 변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니 생사람을 잡는 근심은 그만하기로 한다.

키누와 무기의 사랑이 예뻤던 이유는 역시나 그들이 철없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나도 계속해서 철없이 사랑하기로 한다.


2024. 4. 15.


오늘 알게 된 사실..

이 영화는 이미 3년 전에 개봉한 영화였다.

이 영화가 곽의 생일에 맞춰 재개봉을 해서 지금의 나이에 볼 수 있게 된 것이 마치 운명처럼 느껴진다.

아마 28살의 나는 이 영화를 봤어도 지금처럼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곽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곽아. 태어나 줘서 고마워. 그리고 나에게 이 영화를 선물해 줘서 고마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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