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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영 May 11. 2022

어쩌다 스웨덴 04

스웨덴 예테보리 여행



스웨덴에서 맞은 두 번째 아침.



'apricot'이라는 단어만으로 나는 1983년, 이탈리아 북부 어딘가로 떠나지곤 한다. 괜히 눈에 밟히는 말린 살구를 몇 알 집어서는 요거트에 퐁당 빠뜨렸다.




추적추적 겨울비 내리는 일요일 오전.



잔잔하던 물길은 떨어지는 빗방울로 파동을 그려내고 있었다.



유모차와 캐리어부터 휠체어와 지팡이까지. 다양한 모습과 색상을 한 사람들은 서로에게 손 내밀며 나아간다.



공사장 가림벽으로 볼 수 있는 예테보리의 옛 모습들도, 스웨덴 국기색을 품은 표지판도, 적막한 길을 걷는 내게 소소한 볼거리가 되어주었다.






왕관의 집(the crown house)이라는 의미의 크론후셋(Kronhuset). 예테보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이다. 400년 가까이 되어가는 이곳은 덴마크와의 전쟁을 치르는 동안 군용품 창고로 건축되었으나, 후에는 의회로도 쓰였다고 한다. 보아하니 지금은 오케스트라의 콘서트 홀로 쓰이고, 여러 카페들과 공예품 가게들이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도 열리는 문화공간인 듯했다. 하지만 그것들을 즐기기에는 다소 이른 시각이었는지, 카페 한 곳 빼고는 모두 닫혀있었다. 영업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던 문이 열린 카페만 빼꼼 들여다보다가 이내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향한 곳은 예타 광장(Götaplatsen). 그 앞에는 칼 밀레스의 작품, 포세이돈 동상이 있다. 바다와 맞닿은 도시인 까닭에 바다의 신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가까운 사람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조각에서는 어떠한 힘을 느낄 수가 있었다. 차들이 지나가지 않는 틈을 타서는 그와 같은 포즈로 사진을 한 장 남겼다.




포세이돈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큼직한 문화공간 - 예테보리 미술관(Göteborgs Konstmuseum), 예테보리 콘서트 홀(Konserthuset Göteborg), 예테보리 시립극장(Göteborgs Stadsteater) - 들은 시간이 이른 관계로 전부 닫혀 있었다. 이따 다시 오기로 약속하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비록 구상해놓았던 동선은 망가졌으나, 그마저도 괜찮았다. 얽매일 게 없는 시공이니까. 생각한 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잘못된 거라는 건 없으니까. 72시간 무제한 교통권이 주머니에 있으니까.



길가에 있던 No.1 Guitarshop. 넬의 <Tokyo>가 그랬듯, 만약 종완이 왔었다면 이것저것 만져보다 또 어떤 곡인가 나오지 않았을까 해서.




이곳은 국립과학관(Universeum).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통틀어 가장 큰 과학센터라고 한다.



전시관에 들어가려고 하니 롤러코스터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과학관이 크다는 게 감이 잘 안 잡혔었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면 이렇게 입장할 정도의 규모였던 것 같다.



"This is where water's way through Sweden begins." 아무것도 아닌 문장 같지만 사실은 엄청난 문장이니, 여기서부터 흐르는 물을 따라서 스웨덴의 자연환경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Many people probably think of mountains as being constant, almost eternal ... Mountains are born, live, die and are reborn in a constant cycle - just like most things here on Earth." 변하지 않는 것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나를 슬프게 하면서도 위안이 되어주곤 한다. 암석을 설명하는 글들 사이에 무심히 던져져 있던 자연의 법칙은 그날따라 새삼스러운 위로를 건네주었다.



이렇게 길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에는 계곡에서부터 대양까지가 이어지는데, 각 지형의 특징을 살려놓은 스팟들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지구 여행을 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엄마 아빠 손 잡고 걷는 꼬마 친구들 사이에서 스물하나는 감탄을 멈추지 못한 채 물길을 떠다녔다.




한편에서는 글뢰그(glögg)와 하트 모양 쿠키를 나눠주고 있었다. 글뢰그는 뱅쇼(vin chaud) 같은 따뜻한 음료이다. 안 그래도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서 사 마셨다는 글들을 여럿 봤었는데, 선뜻 내어주신 까닭에 기분 좋게 당 충전을 했다.









이곳은 열대우림관. 실제 우림을 방불케한 극사실주의적 전시관 조성에, 패딩과 후드티와 히트텍을 입고 있었던 나는 오래 못 버티고 나와버렸다. 들어가자마자 습기가 찬 렌즈로 인해 뿌옇게 나온 사진이 이곳을 대신 설명해준다.







너무너무 좋았던 우주관. 아이맥스에 온 기분이랄까. 이렇게 아름답고 유의미할 수가 없다. 고막만 더 튼튼했어도 우주여행을 보다 진지하게 고려해봤을 텐데. 역시나 아이들 사이에 껴서 우주 침낭 체험도 해보고 화성처럼 조성해놓은 스팟에서 사진도 찍고 했다. 아, 차마 트램펄린 위에서 뛰진 못했다.



아득한 진공 속으로 이 순간, 나의 존재를 남겼다.



건강관. 요리와 관련한 무언가를 진행하려는 듯해서 기다려봤으나, 시작하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듯하여 아쉬운 마음 안고 자리를 떴다.




입구 사진을 나올 때야 찍었는데, 그 사이 줄이 잔뜩 늘어져 있었다. 그걸 보고서야 깨달았다. 오늘은, 비일상자는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따뜻한 일요일이었다.






그렇게 오전 내내 알차게 과학관을 둘러본 후, 약속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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