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사소한 불편들,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십니까?"
[안내] 잠시 후 9. 19(금) 08:40부터 '김어준의 뉴스공장'- 3회 연속 (유튜브 라이브-클릭) 생방송에 출연해 추석 연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범죄 예방법에 대해 소개할 예정입니다. 많은 시청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서울경찰청 긴급 신고 112 입니다”
“여기는 중화요리 가게입니다”
“네, 경찰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짜장면을 한 그릇 배달시킨 손님이 가게로 찾아와서 면이 불었다며 환불을 요구하고 있는데 황당해서요”
“단순한 음식에 대한 환불 문제에 대해서는 경찰이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습니다만, 지금도 손님이 계신 건가요?”
“지금도 있습니다. 음식이 바로 나와서 배달원이 바로 가져갔기 때문에 배달 업체에 문의하라고 해도 계속 언성을 높이고 막무가내입니다”
“알겠습니다. 경찰관이 도움을 드릴 수 있는지 현장으로 출동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9일 저녁 9시경이었다. 하루 중에 신고가 가장 많은 시간대다. 지구대 안에 112 신고 알림음이 울려 퍼진다. ‘코드 2’ 신고다. 신고유형은 ‘시비’였다. 접수 모니터를 통해 신고 내용을 확인했다. 나는 현재 지구대에서 3년여 동안 근무하고 있다. 가장 황당한 신고 유형 중 하나였다. 중화요리 집에서 배달시킨 면이 불었다며 직접 가게로 찾아와 시비를 걸고 있다는 신고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얼마나 면이 불었으면 가게까지 찾아왔을까?’라는 생각과 ‘면을 배달시키면서 어느 정도는 면이 불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가장 가까운 순찰차가 출동하도록 무전을 쳤다. 지구대 내에서 상황 근무자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을 지원하는 업무가 가장 중요하다. 막상 112 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으로 출동해 보면 경찰 업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신고도 많기 때문이다. 그럴 때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의 연락처를 알려주기도 하고 자세한 지침을 무전으로 전파하고 법률적인 사항도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구매한 물건을 환불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는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상담센터다. 국번 없이 1372로 전화하면 된다. 물론 온라인으로 접수도 가능하다. 상담 후, 필요하면 지자체 소비자 보호과나 한국소비자원 분쟁조정으로 연결해 준다. 금액이 많거나 매장과 계속 협의가 안 되면 한국소비자원 분쟁조정위원회에 신청할 수도 있다. 이때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정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매장 점주와 고객이 직접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 경찰관이 출동했지만,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경찰관이 직접 나서 합의를 유도하거나 강제할 수도 없다. 개인 간에 발생한 민사 분쟁이기 때문이다. 가게를 찾은 손님에게는 절차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다. 그러나 계속 가게에 머무르게 된다면 오히려 손님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실제 그렇다. 이 경우 업무방해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타인의 정당한 업무를 고의로 방해하거나 중단시키는 행위에 대해 성립한다. 이때 음식점의 영업도 해당한다. 업무를 방해하려는 의도로 행위가 이루어져야 하고, 방해 행위는 물리적, 비물리적 방법을 모두 포함한다. 그러나 단순한 실수나 우발적 행동이 아니라, 명확한 의도로 방해하려는 행동이 있어야 성립한다. 처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형법 제319조 퇴거불응죄에도 해당할 수 있다. 남의 주거, 건조물 또는 점유하는 방실에 적법하게 들어갔으나, 정당한 퇴거 요구를 받고도 이에 불응하는 경우 성립하는 범죄다. 퇴거불응죄는 주거침입죄와 달리, 처음에 적법하게 들어간 뒤 퇴거 요구를 받고도 나가지 않을 때 성립한다. 주로 영업장, 모텔 등에서 퇴실 요구를 거부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때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받을 수 있다.
흥분한 상태에서 자신의 말만 하던 손님은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의 경고를 받고서야 가게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온라인 플랫폼 고객센터에 환불을 신청하겠다며 현장을 떠났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나는 사실 짜장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1년에 서너 번도 먹지 않을 정도다. 집에서 배달된 면 요리는 언제 먹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런데 문득 궁금했다. 이번처럼 직접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 말고도 중화요리 전문점에는 비슷한 이유로 항의하는 손님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
나는 현재 한동네서 10년 넘게 살고 있다. 그리고 1년에 한두 번 가는 중화요리 전문점이 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랬나. 마침, 휴일이다. 결국 인근에 있는 다른 가게를 검색해 방문했다. 오가다가 본 적은 있지만 처음으로 가는 가게였다. 짜장면 한 그릇을 주문해 맛있게 먹었다.
“사장님 처음 왔는데 짜장면이 맛있네요. 잘 먹었습니다”
“입맛에 맞았다니 다행이네요”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여쭤봐도 될까요? 면 요리의 특성상 아무래도 배달시켜서 먹다 보면 면이 불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그런 항의가 가끔 있나요?”
“우리는 직접 배달도 하면서 온라인 플랫폼도 쓰고 있는데 면과 소스가 따로 나가서 면이 빨리 불지는 않아요”
“아, 그렇구나. 아예 그런 항의 전화가 없겠네요”
“어떻게 없겠어요. 손님들이 백 퍼센트 만족하면 좋겠지만 아무리 주의를 해도 문제는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하세요?”
“도저히 말이 안 통하면 새로 음식을 해서 보내기도 하는데…. 속상하죠”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점주 처지에서 그걸 생각하는 자체가 스트레스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 신고와 반대인 경우도 있다. 자영업자 커뮤니티인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는 ‘40분 넘게 걸려 배달된 면 요리, 고객님 때문에 눈물이 또르륵’이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었다. 당시 초보 배달 기사가 초행길이라 배달이 늦어 점주가 고객에게 짜장면을 받아보고 문제가 있으면 연락 달라고 했다. 그러자 고객은 면이 많이 불고 식었지만 맛있게 먹었다며 이해하기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답장했다. 당시 관련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기사를 접한 많은 네티즌은 “훈훈하다”, “감동이다”, “좋은 손님과 좋은 사장님이 만났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흔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언론에 소개까지 됐을 것이다.
이전에 근무하던 지구대에서 있었던 일이다. 마트에서 밀봉된 손톱깎이를 구매하고 개봉해 사용한 뒤에 다시 매장으로 가져와 자기 손톱을 자르는데, 맞지 않는다며 환불을 요구하는 신고 현장에 출동했던 적이 있다. 가끔 이런 신고 현장을 출동하다 보면 중요한 범죄 신고에 늦는 것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얼마 전 경찰 내부 게시판에 ‘집 안에 있는 바퀴벌레를 잡아달라’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는 황당한 사연을 본 적이 있다.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 112 신고가 범죄 신고라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범죄와 전혀 상관없는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경우는 있다.
경찰은 ‘범죄 신고 112’ 이외도, ‘182경찰민원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곳에서는 경찰의 업무와 관련해 전화를 통한 문의, 건의에 대해 상담하고 안내 또는 중재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평일 일과시간에 가능하다. 그 외에 교통 관련 조회는 언제나 가능하다. 182로 상담하는 과정에서 현장으로 경찰관이 출동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는 바로 112로 전환되기 때문에 위급한 범죄 신고가 아니라면 182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한다.
112 신고 전화는 정말 급한 상황, 생명과 안전이 걸린 순간을 위해 있는 번호다. 그런데 짜장면이 불었다는 이유로 매장으로 찾아와 항의한다면 정작 긴급한 상황에 경찰의 손발이 묶일 수 있다. 음식 환불 같은 문제는 소비자 상담 센터 절차를 활용해야 맞다. 그래야 경찰은 본래 해야 할 일, 즉 범죄 예방과 대응에 집중할 수 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사소한 불편은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가게에 찾아와 언성을 높이고 영업을 방해한다면, 결국 형사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 손님도, 점주도 조금씩 양보하고 상식적인 해결책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서로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면 불필요한 신고도 줄어들고, 경찰도 꼭 필요한 현장에 더 빨리 달려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