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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로 먼저 간 아들, 할머니에겐 아니었다

by 박승일






“서울경찰청 긴급 신고 112입니다”

“강동구에 있는 ○○병원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지금 할머니 한 분이 병원 접수 창구에서 소란을 피우고 계세요. 막무가내로 소리를 지르고 다른 환자분들이 놀라서요”


“진료비 관련해서 병원 측과 시비가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할머니 아들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며 면회하게 해달라고 하시는데 말씀하신 환자가 없어서요”


“입원 환자 중에 없는 사람을 면회한다고 하신다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그런 환자는 없다고 여러 번 말씀을 드렸는데 말이 안 통하세요”


“일단 경찰관이 출동해 보겠습니다. 할머니가 폭행을 행사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네, 그런 건 아니고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970,000명’. 2025년 우리나라의 치매 환자 수다. 내년에는 1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최근 언론보도가 있었다. 실제로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근무하다 보면 치매 어르신들과 관련한 신고도 흔하게 접수된다. 대부분은 집을 나가서 가족이 찾지 못하는 실종 신고다. 얼마 전에는 치매가 있는 할머니가 마트에서 물건을 훔쳤다는 신고 현장에도 출동했었다. 다행히 주인이 치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선처했다. 가끔은 남의 집 앞에 놓아둔 화분이나 물건이 없어졌다는 신고 현장에서 CCTV를 확인해 보면 치매가 있는 어르신인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최근에도 치매 어르신들에 관한 이야기를 몇 차례 소개했었다. ‘현금지급기에서 교통카드로 돈 찾으려던 할머니’(https://brunch.co.kr/@85185340355448e/92), ‘길 잃은 치매 할머니를 가족에게 인계하던 날’(https://brunch.co.kr/@85185340355448e/107), ‘어제 서울 왔다는 할머니, 사실은 62년 전 일이었다.(https://brunch.co.kr/@85185340355448e/10)’ 그만큼 경찰에 112 신고를 통한 치매 어르신들의 신고가 많다.


이번 이야기는 지난번 치매 할머니를 가족에게 인계하면서 함께 현장에 출동했던 후배의 경험담이다. 재작년, 이전 지구대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었다. 당시 112 신고가 접수된 날은 추석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할머니 한 분이 관내에 있는 가장 큰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다는 ‘코드 2’ 신고였다.




현장에 도착하니 접수 창구 앞이 술렁이고 있었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과 보호자들이 웅성거리며 거리를 두고 있었다. 경찰관들은 급히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할머니의 옷차림은 계절과 어울리지 않았다. 가을 초인데도 겨울 코트를 입고 있었다.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단정히 빗은 머리와 반짝이는 구두는 잔뜩 멋을 낸 듯 정성스러워 보였다.


“할머니. 아드님 이름이랑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올해 나이는 모르겠고 이름은 김 아무개야. 여기 병원에 입원했는데 썩을 것들이 없다고 말하네….”


“아드님이 언제 여기에 입원했는데요?”

“몇 년 됐지. 가물가물하네”


“병원에서 입원한 환자들 경찰관이 다 확인했는데, 아드님은 없어요”

“아니 그럼 집으로 갔나…?”


“그럼, 경찰관들이랑 집으로 가서 확인해 볼까요?”

“그러던가….”


경찰관은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 할머니는 치매였다. 순찰차 안에서 할머니는 계속 중얼거렸다. “어디를 간 거야….” 그 목소리는 흔들렸지만, 확신에 차 있었다.


집에 도착해 문을 열자, 한기가 서린 듯 조용한 거실이 드러났다. 낡은 소파 옆 탁자는 유리가 깨진 상태로 있었고, 그 위에는 빛바랜 조화가 꽂혀 있었다. 부엌 싱크대에는 국물이 말라붙은 냄비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금방 식사를 마친 듯한 밥그릇과 수저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야말로 외로움이 쌓인 집안 풍경이었다. 그때였다. 할머니가 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혼잣말했다.


“아들이 방에 있나?”


방 안은 유난히 정갈했다. 사뭇 거실과는 너무도 다른 분위기였다. 두꺼운 이불이 곱게 덮인 침대, 전원이 켜진 전기장판, 그리고 그 옆에 앉아 액자를 두 손으로 꼭 쥔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액자는 중년의 남자 사진이었다. 경찰 조회 결과 실제로 사망한 아들이 맞았다.


후배 경찰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할머니, 아들이 언제 온다고 전기장판을 켜 두신 거예요?”


할머니는 자기 아들이 살고 있는 방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들 방을 매일 청소도 해줘야 한다며 투덜대듯이 말했다. 할머니는 아들이 살아있다고 분명히 확신하고 있었다. 어쩌다 아들이 사망했는지도 모른다. 단지 짐작하던데 아들이 병원에서 몇 년 동안을 투병하다 하늘나라로 떠난 게 아닌가 싶었다.


할머니에게 아들은 아직도 곁에 살아 있는 존재였다. 방은 ‘아들의 방’이었고, 매일 청소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 믿음이 얼마나 강한지, 아들이 이미 하늘나라로 갔다는 사실은 할머니의 일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경찰관들은 할머니의 가족을 한참 동안 파악했다. 그러나 경찰 조회 시스템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섰다.


당시 상황에 대해 챗지피티(AI)를 활용해 구현했습니다. 실제와는 다릅니다.




지구대로 돌아와 관내 주민센터에 할머니의 상황을 전달했다. 할머니께서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등록되어 있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정기적으로 지원을 받고 있지도 않았다. 할머니께서 치매가 있긴 하지만 일상적인 생활은 가능했다. 집안에서 생활하는 모습도 그랬다. 밥도 직접 해서 드실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분명히 사회적 관심과 돌봄이 절실했다. 후배는 그때의 출동 현장을 마치 어제 일처럼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그만큼 강렬한 사건이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앞으로도 분명 치매 어르신들에 대한 신고는 계속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내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그게 마땅히 경찰의 일이다.


치매 어르신을 만나는 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경찰이나 공공기관이 출동해 도움을 드릴 수는 있지만, 결국 그분들의 곁에서 작은 징후를 먼저 발견하는 건 이웃의 몫이다. 병원에서 소란을 피운 할머니처럼, 길에서 헤매는 어르신처럼, 우리 주변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올해도 추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후배가 만났던 치매 할머니와 같은 이웃은 분명히 존재한다. 아니다. 그보다 더한 환경에서 홀로 지낼 이웃이 있을지도 모른다. 경찰이나 주민센터에서 아직 모르는 그런 이웃 말이다. 우리가 한 번 더 관심을 두고 다가서면 그런 이웃을 찾아낼 수 있다.


특히, 명절을 앞둔 지금이 더 그렇다. 가족의 빈자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시기, 고립된 어르신들의 외로움은 심해진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큰 제도나 특별한 장치가 아니다. 이웃의 따뜻한 시선, “괜찮으세요?”라는 짧은 안부. 그것만도 충분하다.


소외된 이웃에 관심을 두는 것은 결코 대단한 일이 아니다. 우리 주변을 한 번쯤 주의 깊게 살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관계 기관에 신고해 주면 된다.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 한번 고개를 돌려 보자. 그리고 혹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없는지 고민해 봤으면 한다. 그것이 곧 우리의 안전망이고, 사회가 함께 지켜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다. 분명하다.


[덧붙이는 말] 이번 글은 함께 근무하고 있는 동료, 김기욱 경장의 신고 출동 사례입니다. 자세히 설명해준 후배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아울러,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서도 다가올 추석 행복한 시간 보내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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