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경찰관님에 대한 모욕 사건의 피고인을 담당하는 국선변호인 김 아무개 변호사입니다. 피고인의 친동생이 한번 찾아뵙고자 해서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변호사님 고생하십니다. 저는 합의에 관한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방문하신다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경찰관님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현재 피고인은 깊이 반성하고 있고, 대신해서 동생분이 사과하고 싶어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찾아오시면 이야기 잘 들어보겠습니다”
지난 5월 중순 무렵이었다. 남성 손님이 삼겹살과 소주를 마시고 104,000원을 계산하지 않고 있어 112 신고했다. 처음부터 계산할 생각이 없이 음식을 먹고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을 때는 사기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경범죄 처벌법 제3조 제39호에 따라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고 정당한 이유 없이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료 또는 과료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경미할때는 범칙금 5만 원이 부과된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테이블 위에는 먹다 남은 고기, 쓰러진 소주병 두 개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50대 중반의 남성은 의자에 비스듬히 앉은 채, 가게 주인과 대화하고 있었다.
다행히 술에 만취한 상태는 아니었다. 함께 출동한 경찰관이 음식값을 내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거부하면서 황당한 변명을 했다. 더 이상 계산을 요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인적 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 이 또한 강력하게 거부했다.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현행범 체포뿐이다. 체포하기 위해서는 행위의 가벌성이 있어야 하고, 범죄가 시간상으로 계속 진행되고 있거나, 범인의 범죄행위가 명백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체포의 필요성 즉, 도망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야 한다. 당시 현장에서는 모두 명확하게 충족했다.
결국 미란다원칙을 고지하고 체포에 나섰다. 현장에는 식당 직원과 다른 손님도 서너 명이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경찰이면 다야?”라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다 갑자기 일어나더니 얼굴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입에 담지 못할 욕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어떤 경우에도 ‘가족은 건들지 마라’는 말이 무색했다. 아무리 직업적으로 냉정을 유지하려 해도, 인간적으로서 넘기기 어려운 말이었다.
‘모욕죄’는 사실을 적시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할 만한 추상적 판단이나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단순한 농담이나 불친절, 무례한 말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공연성이 있어야 한다. 매우 중요한 점이다. 불특정 또는 여러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서만 성립하기 때문이다.
경찰관에게는 ‘짜바리’, ‘짭새’, ‘듣보잡’이라는 말도 모두 모욕죄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일반인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욕설이 포함된다. 최근에는 일반인들의 모욕죄 신고도 늘고 있다. 그러나 단둘이 대화하던 중에 모욕하는 말을 했을 때는 공연성이 없어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죄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명예훼손 등 다른 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나는 당시 명백하게 모욕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고민끝에 개인 자격으로 직접 고소했다. 그 뒤 정식 재판이 진행되었고 1심 판결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피고인의 변호사로부터 문자가 온 것이다. 지난 9월 9일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합의할 생각이 없었다. 보통 공무집행방해는 국가의 법익이 침해된 경우다. 그런데 모욕죄의 경우에는 경찰관 개인의 사익 법익에 해당한다. 그래서 나의 의견이 중요하다.
추석 연휴 기간에도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변호사가 말한 피고인의 동생이 찾아왔다. 그런데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70대 후반의 어머니와 함께 왔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아니, 변호사님은 동생분 혼자 온다고 들었는데, 어머니까지 모시고 오신 건가요?”
“제가 같이 가겠다고 했어요. 죄송합니다”
“갑자기 제가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아닙니다. 못난 아들을 둔 제가 죄인이죠”
“아닙니다. 어머니가 무슨 잘못이 있으세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술만 마시면 저렇게 돼요. 가족들에게도 함부로 하고, 이젠 경찰관님께까지….”
“아드님만 생각하면 전 합의해 드릴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부디 한 번만 선처해 주세요”
“일단 알겠습니다. 오늘은 그만 가시죠”
“진짜 죄송합니다. 못난 저를 봐서 용서해 주세요”
며칠 뒤 변호사에게서 다시 문자가 왔다. 합의가 가능한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합의를 해주겠다고 했다. 대신 그냥은 해줄 수 없고, 합의금으로 50만 원을 기부했으면 한다는 의사를 전했다. 변호사는 피고인 측에 물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변호사가 나를 대신해 직접 기부하고 영수증을 보내왔다. 자살 예방에 힘쓰고 있는 ‘생명의 전화’에 했다. 사실 어떤 결과가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한데는 확실한 이유가 있다.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깨우쳤으면 한다는 기대와 함께 며칠 전 만난 피고인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솔직히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대단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공개하는 이유가 있다.
누군가 자신의 잘못 때문에 가족이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는지 우리는 모두 알아야 한다. 그것은 나도 포함된다. 경찰관이라는 직업 때문에 법을 더욱 잘 지켜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 또한 가족이 있다. 잘못된 행동으로 가족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잘못은 순간이지만, 그 그림자는 가족의 삶을 길게 짓누른다. 술 한 잔의 실수로 인해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동생이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그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법은 사람을 벌하기 위한 도구이지만, 때로는 용서가 사람을 바꿀 수 있길 바라는 희망 말이다. 사실 나는 피고인을 용서한 것이 아니라, 그를 대신해 울고 있던 가족을 용서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러나 그 실수의 대가를 가족이 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위법한 행동 앞에서 잠시 멈출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단단해지고 따뜻해질 것이다. 나는 한 개인으로만 살아가는것이 아니다. 한 가정의 구성원이며, 함께 '으싸으쌰' 하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 한 사람 일 뿐이다.
[덧붙이는 말] 나는 여유있는 사람도 아니고, 기부를 자주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의 결단이 누군가의 삶을 다시 일으키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