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의 공동대응 요청으로 출동, “식당에서 갑자기 사람이 쓰러졌어요”
“남성이 호흡을 못 하고 쓰러졌어요. 빨리 출동해 주세요”
지난 18일 저녁 6시 30분께였다. 지구대는 보통 오후 5시 이전에 식사를 마친다.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면 도로는 순식간에 혼잡해지고, 112신고 역시 부쩍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날도 조금 서두른 식사를 하고 지하철역 주변에서 거점 근무를 하고 있었다.
퇴근까지는 약 한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 시간이 조용히 흘러가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다가올 경찰의 날을 맞아 오래전부터 잡혀 있던 동료들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지구대에 근무하다 보면 경찰관들 사이에는 묘한 불문율이 있다. 절대로 퇴근 시간을 앞두고 ‘오늘은 조용하네요’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면 꼭 중요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한다는 다소 황당한 이유에서다. 사실 과학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런데 나도 언제부턴가 그 말을 절대적으로 믿게 되었다. 그래서 조용히 마음속으로만 바란다. ‘부디 평온하게 마무리되기를’하고 말이다. 왠지 그럼 큰 사건이나 사고가 없는 듯하다. 물론 나의 일방적이고 근거 없는 확신이다. 매번 그랬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그날이 그랬다. 순찰차 안에 다급하게 울리는 긴급한 경보음, ‘코드 0’ 신고 출동이다. 소방의 공동대응 요청 신고였다. 인근 국밥집에서 한 남성이 호흡하지 못한다는 신고였다.
현장에 최대한 신속하게 출동해야 한다. 그런데 이미 도로는 차들로 빽빽했다. 교차로 서너 곳을 사이렌과 경광등을 켜고 통과했다. 이런 현장에 소방보다 경찰이 먼저 도착했을 때는 응급조치를 직접 해야 한다. 특히나 호흡이 없는 경우에는 심폐소생술도 바로 실시한다. 그리고 구급대원들이 도착하면 인계한다.
사고 현장이 가까워졌다. 다행히 구급차의 붉은 경광등이 보였다. 구급차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안도하는 마음으로 순찰차에서 내리는 순간, 다급한 119구급대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찰관님, 우리 좀 도와주세요”
무슨 일인가 싶어 곧바로 뛰어갔다. 식당 바닥에 쓰러져 격렬하게 몸을 뒤틀고 있는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매우 격렬하게 발버둥을 치는 듯했다. 구급대원이 그의 팔을 붙잡고 있었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동료와 나는 곧장 양팔과 다리를 붙잡으며 구급대원을 도왔다. 주변은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구급대원과 함께 나는 계속해서 안정시켜보려 했지만, 격렬한 몸부림은 계속됐다. 식당 안에서 식사하던 20여 명의 손님들은 숨은 죽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모두 숟가락을 내려놓고 그의 상태만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과 불안이 뒤섞인 눈빛들, 공기가 묵직하게 내려앉은 순간이었다. 지금도 그때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쓰러진 남성은 지인과 함께 저녁밥을 먹기 위해 식당에 왔다. 처음에는 갑자기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말하더니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다가 바닥에 쓰러졌다고 전했다. 한 달 전부터 저혈당약을 처방받아 먹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구급대원은 빠르게 혈당을 확인했다. 그리고 팔에 주사를 놓았다.
30여 초.
짧다면 짧고 길다면 참 긴 시간이었다. 남성의 호흡이 서서히 안정됐다. 몸의 긴장도 이완되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식당 한쪽에 앉아 있던 60대 중년의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힘껏 손뼉을 치며 외쳤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생들 하셨습니다”
그 소리를 시작으로, 식당 전체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다행이에요’,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몇 명은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도 있었다. 그 따뜻한 손뼉의 울림이 식당 안을 가득 채웠다. 너무도 뿌듯하고 감사했다.
사실 응급조치의 대부분은 구급대원들이 다 했다. 경찰관인 나는 그저 곁에서 안정을 돕고 상황을 통제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 박수는 내가 들은 것 중 가장 묵직하고 가슴에 남았다. 그 순간의 감정은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선명하다.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그리고 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
나중에 구급대원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다. 저혈당으로 쓰러지면 어지럼증이나 언어가 불명확해지고 경련과 함께 과격한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번 환자가 보인 과격한 폭력성은 저혈당 환자의 중증 증상 중 일부였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서야 환자의 상태가 이해됐다.
그렇게 응급조치가 끝나고 병원으로 이송하면서 현장은 정리되었다. 저혈당은 혈당이 정상 범위보다 떨어져 뇌와 신체가 필요한 포도당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는 응급상황이다. 특히 당뇨병 환자나 경구혈당강하제를 복용 중인 사람에게 자주 발생한다.
우리 주변에서도 언제든 이러한 응급환자는 발생할 수 있다. 초기 증상으로는 식은땀이나 심박수가 증가한다고 한다. 그러다 의식이 저하되고 경련을 일으키며 혼수 상태에 빠진다는 것이다. 단 몇 분, 몇 초의 대응이 한 사람의 생명을 가른다.
저혈당으로 쓰러진 환자가 발생했을 때 응급조치에 대해 구급대원으로부터 직접 들어봤다.
의식 있는 경우에는 설탕물이나 주스를 마실 수 있도록 하면 도움이 된다고 한다. 빠르게 흡수되는 당분을 섭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탕을 주는 경우가 있는데 전문가가 아니면 그것은 좋지 않다고 한다. 사탕을 입안에 물고 있다가 기도를 막아 오히려 호흡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즉시 119에 신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환자 본인은 당뇨병 환자 카드나 의료 인식 팔찌를 반드시 소지하거나 차고 있으면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는 응급상황은 어느 사람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다. 현장을 목격한 시민의 신속한 신고와 주변 사람들의 협조는 단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결정적인 힘이 된다. 바쁜 일상에서도 서로를 향한 작은 관심, 그것이 우리 사회를 더 따뜻하게 만든다.
그날 식당을 울린 박수 소리는 환자를 살린 구급대원의 노고를 넘어, 함께 숨을 멈추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봤던 사람들이 서로에게 건넨 위로의 박수이기도 했다.
하루의 끝을 향해 가던 시간,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경찰관의 일은 단순한 출동과 기록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일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렇게 2025년도 경찰의 날도 지났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 만큼은 오래 남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