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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검거 도운 시민을 찾습니다

지난달 30일 석촌역 주변에서 파란 점퍼 입은 60대 남성, 감사합니다

by 박승일





“멈춰! 거기 서라고요. 계속 도망가면 처벌이 가중될 수 있습니다. 멈추라고….”


지난 10월 30일 새벽 5시 10분. 아직 어둠이 짙게 깔려 있던 시간이었다. 무인가게의 지폐 교환기에서 현금을 빼가려던 절도범을 뒤쫓고 있었다. 범인들이 도주했다는 주변을 20여 분째 수색했다. 그때였다. 순찰차를 운전하던 후배가 용의자를 발견했다.


순찰차를 발견한 범인들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조수석 문을 열자마자 뛰어내렸다. 조용한 새벽 시간에 나의 외침이 크게 울려 퍼졌다. 그러다 용의자 두 명 중 한 명의 허리춤을 붙잡았다. 그때 함께 도망가던 다른 남성이 내 팔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그 순간 중심을 잃고 함께 바닥으로 넘어졌다. 시멘트 바닥으로 굴러 넘어지면서 오른쪽 신발이 벗겨져 나갔다. 그때였다. 옆을 지나던 60대쯤 되어 보이는 남성이 망설임 없이 범인의 팔을 잡아챘다. 그사이 순찰차를 세우고 달려와 시민이 붙잡고 있던 범인을 넘겨받았다. 불과 몇 초안에 일어난 순간이었다. 결국 두 명 모두 현장에서 검거됐다. 도망친 범인들은 고작 10대 청소년들이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숨을 고르며 짧게 인사했지만, 얼굴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새벽의 어둠과 긴박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급하게 범인들을 순찰차에 태우고 지구대로 복귀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른쪽 발목과 손목이 욱신거렸다. 양말을 벗어보니 복숭아뼈 주변이 심하게 부어올라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수사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어 발목 통증도 잊고 있었다. 아니다. 내가 너무 둔한 탓인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경찰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우측 발목(인대)의 염좌 및 긴장, 우측 손목의 염좌 및 긴장, 좌측 손 부분의 표재성 손상’ 진단이었다. 쉽게 말해 오른쪽 발목과 손목이 접질렸고 왼쪽 손등에 찰과상이 있다는 것이다. 다행이었다. 사실 병원을 갈 때부터 ‘골절만 아니면 됐지, 뭐’라는 생각이었다. 그저 ‘다행이다’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감사함으로 느꼈다.


병원.jpg 경찰병원 응급실, "다행히 골절은 아니었다. 그것만도 충분히 감사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치료 중이다. 병원에 가면 보통 3~40분 동안 누워서 물리치료를 받는다. 그런데 그때마다 도움을 줬던 시민분이 계속 떠오른다. 내 스스로 반성도 많이 하고 있다. ‘내가 10대라고 너무 방심했던 것은 아닌가. 급한 상황에서도 주변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중심을 잃지 않도록 힘을 더 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그 시민분에 대한 감사함이다. 물론 동료가 바로 뒤쫓아 왔지만, 그 짧은 사이에 시민분께서 다른 범인을 붙잡아 주지 않았다면 무슨 돌발상황이 발생했을지 모른다. 사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내가 더 크게 다쳤을 수도 있다. 짧은 찰나의 용기 덕분이었다.


몇 달 전에 일이다. 음주 운전으로 의심되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용의 차량을 발견하고 순찰차 확성기로 계속해서 정차하라는 방송을 했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도주했다. 그때 자신의 차량이 파손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앞쪽에 있던 차들이 속도를 낮췄다. 결국 음주 운전자는 주행을 포기하고 정차했다. 그때 운전자는 면허 취소 수치로 단속됐다.


어제 있었던 신고다. 은행 현금지급기에서 백발의 노인이 젊은 남성과 함께 돈을 인출하고 있는데 보이스피싱이 의심된다는 신고가 있었다. 현장에 출동해 확인해 보니 보이스피싱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보이스피싱 의심과 신고 덕분에 수많은 범죄가 예방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범죄의 현장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고, 순간의 판단이 한 사람을 구하기도 한다. 그래서 시민의 도움은 경찰에게 단순한 ‘협조’가 아니다. 시민들의 도움 덕분에 우리 사회는 조금 더 안전해진다.


이처럼 범죄가 의심된다는 신고는 물론이고 범인을 검거할 때도 시민들의 도움은 자주 있다. 아무리 10대 청소년이라도 60대 이상의 남성이 제압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아마도 반사적으로 했던 행동일 것이다. 위험할 수도 있다는 고민을 했더라면 절대 그렇게 바로 도와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검거 현장에서 넘어진 나를 도와준 60대 시민분이 더욱 고맙다. 당시의 CCTV가 없어 정확한 인상착의도 생각나지 않는다. 단지 파란 점퍼에 어두운색의 바지를 입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약간의 흰머리가 나이를 짐작게 했었다. 그분께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지난 10월 30일 새벽 5시 10분경 서울 송파구 석촌역 주변에서 범인 두 명을 검거할 때 도움을 줬던 시민분을 꼭 찾고 싶다.


주변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분이 있다면 꼭 의견을 남겨줬으면 한다. 경찰관이 범죄 현장에서 범인을 검거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일반 시민이 적극적으로 돕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이나 인사를 하고 싶다.


“당시 정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를 못했습니다. 제가 그때 바닥으로 굴러 넘어졌을 때 선생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한 명은 놓쳤을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제가 더 크게 다쳤을지도 모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날의 도움을 잊지 않고, 앞으로 시민의 안전을 위해 더욱 열심히 뛰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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