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특수절도 혐의로 현행범 체포합니다. 변호인 선임권이 있고, 진술거부권이 있으며, 변명의 기회와 체포적부심사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저 촉법인데요….”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뭐…. 뭐라고요?”
“저 아직 만 13살, 중1이에요”
지난달 30일 새벽 4시 50분께였다. 무인가게서 지폐 교환기를 부수고 있다는 ‘코드 0’ 신고가 떨어졌다. 현장으로 출동하면서 신고자와 통화해 자세한 내용을 들었다. 인형뽑기 가게 안에서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지폐 교환기를 파손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 장면을 목격하고 소리를 지르자 모두 도망쳤다며 다급하게 도주한 방향을 설명했다. 용의자들의 인상착의를 메모해 무전으로 전파했다.
나는 함께 출동하던 다른 순찰차와 지역을 나눠 수색하기로 했다. 수색 방법에 대해서는 수사기법이 노출될 수 있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주변에서 야간에도 순찰차가 경광등을 끄고 주변을 순찰 중이라면 대부분은 수색 중으로 봐도 무방할 듯싶다.
새벽 골목은 적막했다. 오직 가로등 불빛만이 긴장감을 높였다. 경광등을 끈 채, 어둠 속을 천천히 수색했다. 그렇게 20여 분의 시간이 지나고 대로변 쪽을 수색하고 있을 때였다. 옆자리에서 운전하던 동료가 내게 말했다.
“저기 앞쪽에 택시 타는 애들 인상착의가 비슷한 것 같지 않으세요?”
“맞는 거 같은데, 경광등 켜고 택시 앞쪽으로 가서 막아줘”
“알겠습니다”
“난 내려서 택시 뒤쪽으로 갈 테니 앞쪽으로 도주하는 범인들을 차단해 줘”
택시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 순찰차로 앞을 막아섰다. 이를 본 범인들은 택시에서 황급히 내렸다. 그리고 세 명은 매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신고 내용에 대해 검문할 여유도 없었다. 도망하는 자체가 자신들이 범인이라고 인정하는 것과 같았다.
새벽 시간이라 인도에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통행하는 사람이 많으면 범인을 검거하는 데 장단점이 있다. 장점 중 하나는 빨리 뛰어가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단점으로는 경찰관으로서 범인 검거보다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장애물도 없어 도주하기가 매우 쉬운 상황이다. 그렇게 70여 미터를 뛰어 쫓았다.
세 명 다 10대가 분명해 보였다. 택시에서 제일 먼저 내린 남성이 선두로 뛰어갔고, 그를 따라서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뒤따라 도주했다. 그러다 여자 한 명을 붙잡았다. 이를 알아챈 남학생이 주저앉듯 멈췄다. 그렇게 두 명이 도주 중에 검거됐다.
그 시간은 새벽 5시 15분이었다. 누군가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하는 어느 정도의 시간을 법에서는 범죄가 계속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바로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것이다. 이때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미란다 원칙’을 알려 주는 것이다.
너무도 당당하게 자신이 촉법소년이라고 말하는 13살 남자아이가 뻔뻔하고 당황스러웠다. 한두 번 해본 말이 아닌 듯했다. 그는 긴장하거나 반성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단지 검거된 것에 대한 불만이 있는 듯했다.
“야, 이 녀석아, 그래도 나쁜 짓을 하다 검거가 됐으면 범행을 인정하고 잘못했다고 해야지. 촉법소년이라고 자랑하는 거야?”
“안 그러면 수갑 채우고 체포할 거잖아요”
“너 왜 이렇게 잘 알아? 대체 얼마나 사고를 친 거야?”
“몇 번 잡혔어요. 다 절도로요”
“그래서 이번에도 범죄를 저지른 거야? 어차피 경찰 아저씨가 집에 보내줄 거로 생각하고….”
“아뇨. 그건 아닌데요. 도망가서 죄송합니다”
분명했다. 그 남학생의 눈빛엔 ‘법의 빈틈’을 알고 있는 냉소가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에게 범죄는 놀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인가게에서 지폐 교환기를 뜯고 돈을 훔치려 했던 범인들은 만 13세, 14세, 15세였다. 내게 자신 있게 자신을 촉법소년이라고 말한 남학생은 만 13세가 맞았다. 그 말인즉 촉법소년에 해당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장 경찰서에서 추가적인 조사는 받지 않았다. 청소년의 심야 조사 제한이라는 원칙 때문이다. 당분간 다른 사건에 대한 수사와 함께 이번 특수절도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그들은 몇 시간 대기하다 부모에게 인계했다. 그렇게 이번 사건은 일단락됐다.
촉법소년은 형사상 처벌을 받지 않는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소년을 말한다. 쉽게 말해, 법을 어겼지만, 아직 형사책임을 질 나이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들은 가정법원의 소년부에서 보호처분을 받는다.
물론 경찰에서 수사 자체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촉법소년이라 하더라도 성인과 똑같은 수사와 조사를 한다. 다만, 검찰로 사건을 송치하지 않고 가정법원 소년부로 보내는 것이다.
지구대로 데려와 도망간 15세 소년에 대해서도 인적 사항을 확인했다. 그리고 동의를 얻어 가지고 있던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깜짝 놀랐다. 그 안에는 이전에 범행했던 동영상과 사진들이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자동차 문이 열리는지 손잡이를 잡아 당겨보며 웃는 모습을 영상으로 촬영해 저장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무인가게에서 지폐 교환기나 키오스크를 부수는 장면과 그 안에 있던 현금을 모아놓고 사진을 찍어 저장해둔 장면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이전 범죄에 대해 여죄를 추궁했다. 검거됐던 근처 다른 한 곳에서도 범행했다고 자백했다. 그리고 휴대전화에 저장된 범행들과 관련해서는 이미 다른 경찰서에서 수사 중이라며 담당 경찰관 이름까지 말했다. 사실이었다. 이미 다른 경찰서에서 여러 건의 범죄에 대해 수사를 받고 있으면서 또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나는 참 먹먹했다. 촉법소년 제도는 분명 처벌보다는 교화가 목적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만 14세 미만 소년들의 강력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국회에서도 소년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지난 2022년 촉법소년 연령을 현행 14세에서 13세로 낮추는 내용의 ‘소년법’, ‘형법’ 개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논의만 계속하다 결국 임기 만료로 통과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과거에는 촉법소년들의 범죄 유형이 대부분 단순 폭행이나 절도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5대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 지난 2023년부터는 촉법소년들의 범죄가 한해 1만 건을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그러나 형법에서 ‘만 14세 미만의 자는 벌하지 아니한다’라는 규정 때문에 형사처벌은 받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헌법 위에 촉법 있다’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생겨났다.
형사미성년 연령 하향을 통해 형사처벌을 받게 하거나 소년부의 제도를 강화해 본래 취지에 맞게 제대로 교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할 때다. 범죄를 저지른 행위자에 대해서는 마땅히 처벌받거나 엄격하고 체계적인 선도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작정 촉법소년의 나이를 낮추는 것이 옳지 않다고만 하기에는 그들의 범행이 너무도 성인 범죄화 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나이는 어리지만 죄는 어른 같다’라는 현실 앞에서 머뭇거려야 하는지 의문이다.
소년법의 취지에는 나도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다만 교화의 이름으로 방치된 ‘무책임한 반복’을 멈춰야 한다. 교화가 진정한 회복으로 이어지려면, 책임의 무게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 범죄를 저지른 아이를 무작정 벌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아이가 스스로 반성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