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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대기 중 잠든 운전자, 깨어나자 퍼져온 술 냄새

by 박승일





“서울경찰청 112 긴급 신고입니다”

“지금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대기 중인 차가 멈춰있는데, 운전자가 잠든 것 같아요”


“직진신호가 켜졌는데도 출발을 안 한다는 말씀이죠?”

“네, 맞습니다. 뒤에서 경적을 울려도 반응이 없어요”


“차 안에는 운전자 한 명뿐인가요?”

“잘 보이지 않는데 조수석에는 사람이 없어요”


“경찰관이 현장으로 출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코드 0’다. 신고 유형은 구조 요청이었다. 경찰서 상황실에서는 위급한 응급환자일 수 있어 119구급대도 공동 대응을 요청했다. 근처 지하철역 주변에 있던 순찰차가 현장으로 출동했다. 그곳은 왕복 6차선 도로다. 하위 차선인 3차로 횡단보도 바로 앞에 승용차 한 대가 서 있다. 비상등도 켜지 않고 있어 뒤쪽에서 오던 차들이 경적을 울렸다. 그런데도 차는 미동조차 없었다.


정차해 있는 차량의 뒤쪽에 순찰차를 세우고 경광등을 올려서 주행하는 차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했다. 2차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뒤따라 지원하러 온 순찰차는 앞쪽에 세웠다. 이런 경우는 둘 중 하나다. 의식을 잃은 응급환자이거나 음주 상태로 잠이 든 경우다. 그런데 술을 마신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았다가 잠이든 경우가 훨씬 많다. 실제로 그런 현장 출동은 종종 있다.


“운전자분, 괜찮으세요?”


운전석 쪽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열리지 않는다. 조수석과 운전석 쪽에서 동시에 유리창을 두드렸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운전자가 그제야 깨어났다.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문이 열리자마자, 짙은 술 냄새가 파도처럼 밀려나왔다. 밤공기보다 더 독하게, 알코올의 냄새가 코끝을 때렸다. 술을 마시고 운전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운전자분 잠깐 내려보세요”

“죄송합니다. 신호대기 중에 잠이 든 것 같습니다”


“술 냄새가 심한데, 술을 마시고 운전한 게 맞아요?”

“오늘 회사에서 회식이 있어서…. 거의 마시지 않았는데….”


“음주 측정하겠습니다. 그 전에 물 좀 드세요. 그만할 때까지 부세요. 더…. 더…. 그만”

“후…. 후…. 후”


“혈중알코올농도 0.121 나왔습니다. 확인하셨죠?”

“죄송합니다”



음주 운전은 도로교통법 제44조(술에 취한 상태에서의 운전 금지) 에서 금지하고 있다. ‘누구든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하면 안 된다’라고 명시한다. 또한, 최근에는 운전하면 안 되는 약물을 복용하고 운전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같은 법 제45조(과로한 때 등의 운전 금지) ‘과로, 질병 또는 약물(마약, 대마 및 향정신성의약품) 의 영향과 그 밖의 사유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에서 운전하면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혈중알코올농도가 0.03% 이상일 경우에는 면허 정지 100일이 부여된다. 0.08% 이상일 경우는 면허 취소의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그리고 형사 입건되어 벌금이나 징역형의 처벌을 받게 된다. 지난 2018년 법이 개정되면서 처벌 기준이 한층 강화되었지만 음주 운전과 음주 교통사고는 매년 늘고 있어 안타깝다.




최근에는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잇따라 음주 운전 차량에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그러면서 음주 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무엇보다 음주 운전자의 재범률이 43% 이상으로 매우 높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덧 11월 중순이 되었다. 그 말인즉 연말연시 술자리가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술을 마신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는 경우도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음주 운전자를 단속하다 보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때를 많이 본다. 어쩔 수 없이 운전대를 잡았다는 것이다.


‘딱, 한잔 마셨어요’, 정말 그럴까. 음주 운전자의 상당수는 술을 한두 잔 마셨다는 핑계를 댄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사람 중에는 진짜로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은 그 이상을 마시고도 그렇게 말한다. 또한, 단 한 잔의 술을 마셨더라도 절대로 운전대를 잡아서는 안 된다.


‘택시나 대리가 없어요’. 연말이 가까워 지면 그럴 수밖에 없다. 수요가 많다 보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술을 마신 상태에서 직접 운전대를 잡는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평소에도 지역에 따라 대리운전을 꺼리는 경우가 있다. 그걸 알고 있다면 반드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일찍 귀가하는 것만큼 안전한 방법은 없다.

‘식당이나 주차장에 주차할 수가 없어요’. 주차장을 소유한 식당에서는 대부분 주차비를 받지 않지만, 하룻밤 주차를 해두는 것은 쉽지 않다. 유료 주차장도 그렇다. 다음날 다시 차를 가져가야 한다는 불편함 때문이다.


음주 운전에 단속된 운전자들은 차를 빼달라고 전화가 와서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를 댄다. 장시간 주차해야 한다면 처음에 주차할 때 다른 차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은 당연하다.


경찰의 음주단속 말고도 음주 의심 112신고가 나날이 늘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그런 신고로 출동한다. 그만큼 자주 있는 신고 유형이다. 그때 신고자는 너무 무리하게 음주 운전 의심 차량을 추격하지 말아야 한다. 간혹 음주 운전자가 자신을 추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과속하거나 반대로 위협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음주 운전은 어떤 이유도 핑계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술을 마실 모임에 간다면 아예 처음부터 운전하지 않고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부분의 음주 운전자들은 ‘나는 괜찮을 거야’라는 안전불감증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결국 그 생각이 자신을 위험에 빠지게 만든다.


이제 곧 연말이다. 술자리가 잦아지는 만큼, ‘한 잔쯤은 괜찮겠지’라는 말이 쉽게 오갈 수 있다. 그러나 경찰관인 내가 단속 현장에서 본 현실은 단 하나였다.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언제나 가장 위험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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