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 소음보다 더 큰 소리, "지금 내가 위험하니 도와달라"는 신호였다.
“층간 소음 때문에 아주 끝장을 보고 싶어서 왔어요. 누구 하나 없어져야 끝이 나려나….”
“무슨 일이신데요. 이쪽에 앉아서 천천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아니 위층 때문에 살 수가 없어요. 매일 뭘 하는지…. 너무 힘듭니다. 경찰관들이 직접 가지 말라고 해서 지구대로 왔어요”
“직접 찾아가지 않고 지구대로 오신 건 정말 잘하셨어요. 경찰관이 지금 위층에 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지난 11월 29일 저녁 8시께였다. 70대 후반의 어르신 한 분이 지구대를 방문했다. 다소 흥분한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주변에서 누가 시비라도 걸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싶었다. 나는 차분히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르신이 살고 있는 집 근처에 있던 순찰차가 현장을 확인할 수 있도록 무전을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는 10년 넘게 아내와 단둘이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위층에서 발생하는 소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쿵쿵거려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1년 동안 위층의 소음 문제를 해결해 달라며 112에 신고했던 기록들이 10여 차례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은 위층에 사람이 없거나 경찰관이 출동했을 때 소음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어르신은 현재 한쪽 귀의 고막에 이상이 있어 소리에 더욱 예민하다고 했다. 나는 사람마다 소음에 대해 다르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며 공감해 줬다. 그러면서 함께 살고 있는 아내의 반응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그랬더니 소리가 나지만 참는다고 했다. 잠을 못 잘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위층에서 112 신고한 이력도 여러 건 있었다. 대부분 내용은 층간 소음을 낸 적도 없는데 아래층에서 찾아와 협박한다는 내용이었다. 한번은 흉기를 들고 항의했다는 신고도 있었다. 결국 참지 못한 위층 거주자는 경찰에 해당 내용으로 고소했고 사건이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마도 그때 출동했던 경찰관들이 어르신에게 다시 한번 위층을 찾아가면 무거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강력하게 경고했을 것이다. 그래서 위층을 가지 않고 지구대로 온 것이었다. 다행이었다. 만약에 직접 위층에 찾아갔더라면 스토킹 처벌법으로 형사 입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르신에게는 아들이 두 명 있었다. 나는 이런 문제를 자녀들도 알고 있는지 물었다.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위층과 다툼이 있다는 것은 큰아들이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들들에 대해서 한참 동안 자랑을 이어갔다. 둘 다 서울에서 좋은 대학을 졸업했고 여의도에 있는 큰 회사에 다닌다고도 했다. 그 말을 할 때는 어르신의 표정도 조금 밝아졌다.
그렇게 20여 분 동안 어르신과 대화하고 있을 때 지구대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어르신의 집 위층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조금 전에 경찰관들이 우리 집에 왔던데 무슨 일이 있으신가 해서요”
“소음이 있다고 해서 확인차 방문했는데 아무 소리도 없더군요”
“네, 저는 지난 11일부터 20여 일 동안 집을 못 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집 앞에 설치한 CCTV에서 이벤트가 작동해 확인하고 전화를 드린 겁니다. 며칠 전 집에서 일부 짐을 가지고 나올 때도 경찰분들의 도움을 받았거든요. 그때 잠깐 말고는 집에 안 갔습니다”
“그럼, 지금 집을 비워둔 상태라는 말씀인가요?”
“계속 우리 집에서 소음을 발생시킨다고 찾아오셔서 뭐라고 하시는데 불안하고 무서워서요. 이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경찰관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나는 위층에 살고 있는 사람과의 통화 내용을 어르신에게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다만 어떤 소음이 들리는지에 대해서 계속해서 들었다. 의자를 끄는 소리, 대화를 크게 하는 소리, 벽에 못을 박는 듯한 소리, TV를 크게 틀어놓은 소리까지 내용은 다양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최근 열흘 이내에 모두 발생한 소음이라고 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어르신이 지금 단순한 층간 소음 때문에 지구대를 방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어르신은 지금 내게 층간 소음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닌 듯했다. ‘나 지금 어디가 고장 났나 봐. 내 말 좀 듣고 도와줘. 그렇지 않으면 당장 무슨 사고라도 크게 칠 것 같아….’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어르신의 일방적인 말을 들어줬다.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어르신에게는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냥 들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르신의 아들과 통화를 해보겠다며 동의하에 연락처를 받았다. 그리고 어르신은 지구대를 나섰다. 나는 절대로 위층에 찾아가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김 아무개 선생님 아드님이시죠? 저는 경찰관입니다. 아버지에 대해서 몇 가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아버지요? 무슨 일 생겼나요?”
아버지의 현재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줬다. 자녀들은 현재 아버지가 층간 소음 때문에 위층과 단순한 시비가 조금 있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사실 당사자가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귀에 이명이나 환청 등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전문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 보는 것도 권했다. 그리고 이사도 적극적으로 고민했으면 한다고 했다. 위층이 없는 곳이면 어떨까 싶다고 했다. 가족 간이라도 형사적인 문제에 대해선 직접적으로 언급할 수 없다. 그래서 아버지의 휴대전화 문자나 우편물 등도 잘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 지금은 가족의 도움이 필요한 듯하다는 말로 통화를 끝냈다.
처음에는 사소한 층간 소음 문제인 듯했다. 그런데 위층에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명확했다. 그리고 다른 집들도 재차 확인해 봤으나 일반적인 층간 소음에 대한 문제만은 아니었다.
어르신에게는 지금 가족 간에 깊이 있는 대화가 필요했다. 그리고 전문 의료진의 도움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만약 이대로 방치했다면 선량한 이웃이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가족들의 개입이 절대적이다. 그래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어르신에게도 찾아 올 것이다.
“지금 우리네 부모님은 어떤 고민이 있으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