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승일 Oct 16. 2024

경찰관인 내가 112신고를 하다 (下)

음주 의심차량 신고에 대한 결말과 올바른 112신고 요령입니다.

[들어가는 말] 지난주 ‘경찰관인 내가 112신고를 하다’는 글에 대한 반응이 좋았습니다. 주변 지인 몇 사람은 개인적으로 후속이 너무 궁금하다며 연락을 해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에 대한 결말입니다. 또한, 실화입니다.


지난 글 : 경찰관인 내가 112신고를 하다


저는 음주가 의심되는 차량에서 내린 남성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그 운전자가 다시 차로 타지 못하도록 운전석 문 쪽을 등지고 섰습니다.


운전자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선생님. 저는 서울경찰청에 근무하고 있는 박승일 경감입니다. 경찰관입니다. 선생님께서 올림픽대로 한남대교 쪽 지날 때부터 여기까지 뒤쪽에서 택시를 타고 따라왔습니다. 운전하시는 데 너무 정상적이지 않고 위험할 뿐만 아니라 음주 운전이 의심되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술 드시고 운전하셨나요?”


“제가요? 술 마시지 않았는데요”


“정말이세요? 지금 복장을 보니 장례식장에 다녀오시는 것 같은데 맞나요?”


“네, 고속버스터미널 옆 장례식장에 갔다가 오는 길입니다. 제가 운전을 하면서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중간중간 졸음운전을 한 것은 맞습니다. 저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졸려서 힘들게 왔거든요. 그런데 술은 정말 마시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가 직접 음주 운전을 했다는 자백을 듣기 위해 질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출동 중인 순찰차가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시간만 끌 생각이었습니다.


출동 중인 경찰관들이 음주에 대한 여부를 확인하는 게 맞습니다. 괜히 저와 운전자가 감정적으로 대화하다가 시비가 되어 싸움이 될 수 있어서 강하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 그러세요? 사실 제가 저기 택시를 타고 귀가 중에 112신고를 했거든요. 곧 경찰관들이 도착할 텐데 그때까지 기다리셔도 괜찮을까요?”


“그러시죠”


선뜻 운전자도 제 말에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30여 초 뒤 순찰차 두 대가 연속해서 도착했습니다. 이후에 2차례에 걸쳐 음주 감지를 시도했으나 음주에 대해서는 ‘미감지’로 확인되었습니다.


음주 운전은 아니었던 겁니다. 저는 너무도 머쓱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미안했습니다.


운전자는 출동한 경찰관들을 보면서 “제가 너무 늦게까지 장례식장에 있다가 운전하다 보니 졸음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졸음운전을 한 건 맞습니다. 그런데 술은 마시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운전자는 물론이고 출동한 경찰관들에게도 너무도 미안했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제가 소란을 피웠네요.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사실 나도 운전하는 내내 너무 졸려서 순간순간 졸음운전을 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운전자가 볼 때 충분히 오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고 자리를 떠났습니다.


출동한 경찰관들에게도 “제가 잘못 신고를 한 것 같아 미안합니다”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출동한 경찰관들은 “아닙니다. 감사하다”라는 인사를 하고 현장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저의 음주 운전 의심 차량에 대한 112신고는 운전자의 ‘졸음운전’으로 끝이 났습니다.


음주 의심차량은 음주 운전이 아니라, 졸음운전 이었습니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복귀 중인 순찰차와 제가 탄 택시입니다.




 택시 기사님께 밖의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집에 도착했습니다. 사실 3시 30분이면 도착했을 텐데 그때 시간은 4시 45분이었습니다. 택시 기사님께서는 추가로 요금을 받지 않겠다며 여러 차례 말했지만 냈습니다.


택시 기사님께서는 제가 있었던 일에 대해 글로 쓰는 것도 허락하셨습니다. 택시 번호를 공개해도 괜찮다는 말까지 해주셨습니다. 함께 해주신 택시 기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며칠이 지난 지금 그때의 일을 꺼내어 보니 저도 112신고를 하면서 마음이 급해지고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마음속으로 여러 번 ‘침착하자’를 반복했었고, 심호흡 몇 차례 했습니다.


‘경찰관인 나도 이런데 일반 시민은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몇 가지 112신고 요령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먼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육하원칙으로 말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가, 왜, 무엇을’에 맞게 신고해야 더욱 신속하게 경찰관이 출동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피해 상황을 먼저 설명하고, 가해자의 상태를 말해줘야 합니다. 가해자가 현장에 있는지 아니면 어디로 도망을 갔는지도 매우 중요합니다.


세 번째는, 말로 답하기가 어려울 때는 112신고센터 경찰관의 물음에 아무 버튼이나 눌러서 지금 듣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줘야 합니다. 신고자가 경찰관의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네 번째는, 반드시 음성으로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112 문자 보내기를 통해서도 음성 신고와 같게 신고할 수 있습니다. 경찰관과 문자로 대화도 가능합니다. 음성으로 신고하기가 어려울 때는 문자를 활용하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신고를 한 뒤에는 다른 사람과 통화를 자제해야 합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신고하고 무섭고 겁이 나서 주변 지인들과 통화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 출동 중인 경찰관이 전화를 해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 출동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112신고센터와 통화가 끝난 뒤에는 모르는 전화가 와도 받아야 합니다. 출동 중인 경찰관이 직접 전화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번에 신고한 음주 의심 차량에 대한 신고는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지구대 근무하면서 여러 차례 시민의 신고로 음주 운전자를 검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반 시민이 직접 음주 운전자를 검거하는 행동은 자제해야 합니다.


제가 택시 기사님께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차에서 내렸다가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으므로 내리지 않도록 했던 겁니다.


112신고를 한 뒤에는 출동 중인 경찰관이 도착할 때까지 상황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평생을 살면서 112신고 한번 안 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위험한 상황을 보고도 그냥 지나칠 수 있고, 그런 상황을 단 한 번도 마주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저는 후자이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에게 오늘이 그런 날이기를 바라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경찰관인 내가 112신고를 하다 (上)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