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eccos Jan 11. 2021

유럽 축구 직관기 (1)영국 런던

나의 첫 유럽 축구 직관은 토트넘이었다.

이번 겨울 세 번째 유럽 축구 여행을 계획했지만 코로나로 인해 엎어졌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나의 다음 축구 여행을 기다리며 과거 여행의 추억을 떠올릴 겸 글을 쓴다.


2018년 11월 30일, 육군 만기 전역을 했다. 복학하기 전까지 시간이 남던 나는 모아놓은 돈 조금과 부모님께서 지원해 주신 돈으로 유럽 여행을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평소 유럽 건축물과 문화에 관심이 많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았다. 순전히 축구를 즐기기 위해 가고 싶었다. 일정도 축구를 우선으로 생각했다. 제일 먼저 보고 싶은 선수는 바로 손흥민이었다. 당시 손흥민 선수는 프리미어리그 13라운드 첼시전을 시작으로 득점포를 가동하고 있었기에, 또 한 번쯤은 나도 태극기를 휘날리면서 현지 중계 카메라에 잡히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었기에 22라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를 제일 먼저 예매했다. 현지 날짜로 1월 13일이었다.


다음은 리오넬 메시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축구라는 스포츠의 열렬한 팬으로서 메시가 누 캄프를 누비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정말 죽기 직전까지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1월 20일 바르셀로나와 레가네스의 홈경기도 예매했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축구는 딱 세 경기만 보고 오려 했는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뛰고 있는 유벤투스의 경기를 볼까, 아니면 경기장 분위기가 유럽 제일이라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경기를 볼까 아주 오래 고민했다. 하지만 예산, 일정 모두 고려했을 때 이탈리아 토리노와 독일 도르트문트 지방은 일정상 불가능했다. 프랑스로 눈을 돌려 네이마르와 음바페를 보고 오기로 했다. 1월 26일 파리와 스타드 렌의 경기를 예매했다.

런던에서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에서 파리로 가는 다소 비효휼적이고 빡빡했던 일정. 하지만 경기 일정에 맞추려면 어쩔 수 없었다. [구글 지도 캡처]

이때, 나의 축구 여행을 훨씬 풍족하게 만들어준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비슷한 기간에 남미로 배낭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친구 놈이었다. 일정 중에 껴 있었던 베네수엘라가 정치, 경제적 문제가 심각해졌고, 유럽으로 행선지를 돌려 함께 가도 되겠냐는 전화였다. 축구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친구였지만 평소 아주 친한 친구였기에 내 대답은 당연히 오케이였고 우리는 단둘이 곱창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함께 가기로 구두계약을 맺었다. 다음 날 함께 숙취를 해소한 뒤 구체적인 계획 수립에 들어갔다.


1월 10일 인천공항에서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는 따로 타고 왔기 때문에 히드로 공항에는 친구보다 한 시간 먼저 도착했다. 지금은 히드로 공항에서 자동 입국 심사가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오래 기다린 뒤 면대 면 입국 심사를 받아야 했다. 오래 기다린 끝에 무난히 입국 심사를 마치고 친구 놈의 입국 심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오래 걸리지 않았고 우리는 영국의 지하철인 언더그라운드를 타고 숙소가 있는 런던 브릿지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부터 1시간가량을 달려 도착한 시간은 자정을 30분 앞둔 오후 11시 30분. 늦은 시간에 도착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예약해둔 게스트 하우스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빠르게 체크인했다. 지나치게 설레거나 기대돼 잠을 못 이루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오랜 시간 비행으로 힘들었는지 우리 모두 금방 잠에 들었다.      


런던에서의 둘째 날 – 런던의 플랫 화이트

말이 둘째 날이지 사실상 첫날이다. 눕자마자 깊이 잠든 탓인지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오전 7시에 눈을 뜨고 바로 나갈 준비를 마쳤다. 나는 축구만 보면 됐기에 나머지 일정은 모두 친구가 짰다. 그 유명한 플랫 화이트를 맛보는 게 우리의 런던 첫 일정이었다. 평소 커피 맛 = 설탕 맛으로 알고 있는 데다 이 먼 타국까지 와서 아침 식사도 제껴 두고 커피라니. 커피를 맛보러 가는 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처음 보는 거리가 너무 예뻐서 정신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걷다 보니 몬머스 커피(Monmouth Coffee)에 도착했다. 여행 준비를 하며 한 번쯤 들어본 아주 유명한 카페 중 한 곳이었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출근을 준비하며 카페인을 충전하기 위해 줄을 선 직장인들로 붐볐다. 대부분이 테이크 아웃 손님들이었기 때문에 긴 시간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카페에서 웨이팅이라니. 혼자 생각하며 잔뜩 심술 나 있던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아 이게 런던 커피구나’라는 생각을 한껏 품은 외마디 감탄사를 내뿜었다.

“와”

고소한 맛을 넘어 구수했고, 진했지만 부드러웠다. 커피 맛을 모르는 내가 구체적으로 표현하진 못하겠지만, 정말 맛있었다.

몬머스 커피에서 맛 보았던 플랫 화이트. 평범한 커피 그 이상이었다. 설탕과 물이 함께 제공된다. [촬영 iphone xs]

쌀쌀했던 날씨 속에 몸을 따뜻하게 해준 커피를 마시고 나서 우리는 세인트 폴 대성당으로 향했다. 커피의 여운을 더 느끼고 싶었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오래 앉아있지는 못했다. 우리의 여행은 ‘다리가 움직이는 한 걸어서 가자.’였기 때문에 도보 30분 거리를 걸어서 이동했다. 우리의 발이 닿는 거리마다 탄성을 자아냈기에 휴대폰 카메라도 우리의 다리 못지않게 바빴다. 우리는 직선거리로 걷지 않고 일부러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리며 걸었다. 거리를 더욱 음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코너를 돌자 튀어나온 세인트 폴 대성당은 말 그대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대로가 아닌 작은 골목길 사이를 돌아다니다 보니 그 큰 건축물을 멀리서부터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인트 폴 대성당은 111m의 높이로 영국에서는 리버풀 대성당 다음으로 큰 성당이기 때문에 사실 런던 시내 어느 곳에서든 잘 보인다. 하지만 우리처럼 세인트 폴 대성당이 사우론의 눈이라도 된 것처럼 이리저리 피해 다니다 보면 마주쳤을 때의 그 충격과 울림이 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놀랍게도, 현대식 건물들 사이에서도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촬영 iphone xs]

축구 이야기를 해보자


축구가 메인 테마가  여행이기 때문에 이제 1 13일에 치러진 토트넘과 맨유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경기는 현지 기준으로 일요일 오후 4시 30분에 열렸다. K리그나 FA컵, A매치 등 국내에서도 종종 경기를 보러 다닌 경험이 있기에 나름 여유를 부리며 경기가 열리는 웸블리 스타디움으로 출발했다. 당시 토트넘은 새로운 홈구장인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이 완공이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웸블리를 임시 홈경기장으로 이용 중이었다. 영국의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출발했는데, 시 외곽에 위치했기 때문에 언더그라운드를 이용해야만 했다. 한 시간 동안 지하를 달린 끝에 웸블리 파크 역에서 내린 우리는 우리처럼 오늘 이 경기를 보기 위해 곳곳에서 모여드는 사람들과 행렬을 만들어 걸었다. 경기장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점점 자석에 이끌리는 쇳가루처럼 모여들었다. 사람들과 함께 걸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경기장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눈에 들어온 웸블리 스타디움의 커다란 지붕과 더 거대한 지붕 위 아치를 보면서 말 그대로 압도당했다. 나는 평소 감흥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옆에서 멀뚱멀뚱 걸어가고 있는 친구 놈에게 이야기했다. “,  여기 오려고 24 살았나 보다.”     

멀리서부터 가슴 뛰게 만든 외관을 자랑하던 '축구의 성지' 웸블리 스타디움 [촬영 iphone xs]

입구에서 티켓 확인을 마친 우리는 경기장 내부로 들어갔다. 웸블리 스타디움 내부에는 2,618개의 화장실이 있는데,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화장실이 있는 장소이다. 그만큼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큰 경기인 만큼 사람들도 많았다. 집에서 중계방송을 통해 축구를 볼 때 가끔 구장 내부에서 파는 음식을 먹는 관중들이 중계 카메라에 잡히곤 했다. 그 맛이 궁금했던 우리는 구장 내 마켓에서 즉석으로 만들어주는 핫도그를 먹었는데, 어찌 맛없을 수 있겠는가! 가격 대비 그리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핫도그였지만 정말 맛있었다. 생맥주도 한 잔 마시며 소리 지르기 전에 목을 축였다. 국내 여러 경기장과 마찬가지로 음식물은 좌석에 들고 입장 가능하지만 맥주는 모두 마시고 들어가야 한다. 물론 단숨에 해치웠다.


경기장에 들어가 자리에 앉기 전, 1층 스탠드에서 우리는 손흥민 선수를 보다 가깝게 볼 수 있었다. 토트넘과 맨유 선수들이 몸을 풀었다. 여기저기에서 친숙한 한국말이 아주 많이 들려왔는데, 나처럼 한국에서 경기를 보러 오신 분들이 많았다. 태극기를 들고 오기도 하고 손흥민 선수의 유니폼을 입고 오기도 했다. 그 어떤 것도 준비하지 않은 나였기에 부러웠다. ‘태극기를 들고 왔다면 내가 잡혔을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이날 경기는 다소 지루했다. 손흥민 선수도 평소와 다르게 직접 해결하려는 슈팅을 자제했다. 애슐리 영을 손흥민의 밀착 마크로 내보낸 솔샤르 감독의 신의 한 수였을까. 덕분에 손흥민을 향해 환호 섞인 소리를 지르고 싶었던 나는 얌전히 경기에 집중했다. 데 헤아 골키퍼의 엄청난 선방 쇼도 한몫했다. 손흥민 선수는 아시안컵 차출을 늦추면서까지 뛰어야 했던 중요한 경기였는데 래시포드에게 얻어맞으며 0-1로 패해 많이 아쉬웠다.

다들 맥주를 마시며 즐기느라 늦게 들어오는 모양이다[좌]               183cm으로 큰 키임에도 팀 동료들의 신장이 어마어마하다. 왼쪽에서 네번째 선수가 손흥민.[우]

아쉬운 건 아쉬운 것이고 나는 빠르게 구장 내에 있는 팬숍으로 이동했다. 토트넘 공식 굿즈가 무엇이 있는지, 또 선수들 유니폼은 어떻게 전시되어 있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빌려 쓴는 구장에 임시로 만든 팬숍이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이 좁았다. 팬들은 스토어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잠깐 동안 기다리던 나는 나의 차례가 되어 스토어에 들어갔고 정말 두 눈이 번쩍 띄었다. 아이들 용품, 생활용품, 조립식 경기장 모형 등 퀄리티 좋은 상품들이 판매 중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산에 비해 너무도 비쌌기 때문에 유니폼을 사거나 트레이닝복을 구매하긴 어려웠다. 눈물을 머금고 50£(한화 약 74,000원)에 판매 중인 맨투맨 한 벌을 업어 오는데 만족했다.


패배한 채 경기가 끝나다 보니 관중들 역시 조금은 풀에 죽은게 느껴졌다. 경기장에서 빠져나와 지하철 역으로 돌아가는 동안 다들 오늘 경기의 문제점에 대해 열띈 토론을 이어갔다.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은 꽤나 멀었다. 물리적인 거리가 멀다기 보다 한번에 많은 사람들이 역으로 향하니 줄을 서서 이동했기 때문에 오래걸렸다. 역으로 들어가기까지가 매우 추웠다. 언젠가 코로나가 종식되고 겨울철 영국에서 직관을 계획 중인 분들은 매치데이 당일엔 꼭 여러 벌 껴입고 가시는 걸 추천한다.

해가 진 뒤의 웸블리 스타디움[촬영 iphone xs]

과거 영국 축구 팬들이 거칠기로 유명했기 때문일까? 이동로에는 경찰들이 배치되었다. 길에 펜스를 치고 이동 경로를 안내했다. 언더그라운드 역에 도착했을 때에도 경찰의 임무는 끝나지 않았다. 지하철 직원들과 함께 메가폰을 들고 계속해서 안내했다. “Jubliee 라인을 이용할 고객은 우측 코너 끝까지 이동하세요.”라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했는데 어느 순간 운율이 느껴지기 시작했나 보다. 기다리던 사람들 모두 손뼉치고 발을 구르며 비트(?)를 만들어냈고 다 같이 함박웃음을 띤 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무뚝뚝해 보였던 경찰과 역 직원들도 함께 웃으며 박수를 치는 모습을 보며 혼잡한 귀갓길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여유를 보인 것에 대해 크게 놀랐다. 사람에 치여 가까스로 차에 올랐지만 전혀 짜증이 나거나 힘들지 않았다. 놀라웠다.


글이 많이 길어졌기 때문에 런던의 다른 팀 홈경기장 방문기와 스페인으로 넘어간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마저 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위기의 첼시, 램파드 경질이 최선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