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박 Apr 14. 2024

애도의 범죄화

세월호 참사 10주기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안산에서 기억문화제가 열렸다. 프로그램 중에 4160인 합창(안산)이 있고 나는 단체 참여자로 공연을 했다. 내가 속한 단체인 함께크는여성울림에서 10명이 참석했다. 그중에는 10년 동안 꾸준히, 열심히 활동을 한 사람도 있고 나처럼 가끔 참여를 하는 사람도 있다.


 기억문화제. 왜 자꾸 기억하느냐고 묻는다면, 잊어야 마땅할 고통을 왜 소환하느냐고 묻는다면, 수많은 혐오성 질문들을 안고 있는 '세월호'를 또 왜 말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애도가, 제대로 된 애도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아서라고 답한다.


참사 당시 국가적 구조활동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고 수많은 오보와 함께 증거물은 감춰지고 피해자 가족들은 자식 팔아 장사하는 파렴치한으로 몰렸다. 문제해결에 무능했던 국가는 피해자의 애도를 혐오화하는 것에는 유능했다.  '세월호참사'는 사회적 혐오라는 오염물을 뒤집어쓴 채 10년이 된 지금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세월호 합창 노래 중에 '잊힐 수 없으니 그리움도 어렵다'는 가사가 있다. 생때같은 내 자식이 왜 죽었는지 국가가 나서서 파헤치고 책임자의 진심 어린 사죄와 처벌이 이루어지며 사회적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운다면, 그리고 온 국민이 깊이 애도할 수 있도록 국가가 돕는다면(국가란 반드시 그래야 한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애도를 통과해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리움으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만 침묵시키면, 애도의 범위와 크기를 국가가 제한하고 그 선을 넘는 자를 범죄 화하면 쉽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가. 아니다. 피해자에게만 애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당사자뿐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에게 애도가 필요하다. 애도가 곧 삶을 지속시킬 수 있는 위로와 안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피해자가 되고, 누군가의 억울한 죽음을 경험해도 그 고통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혐오 대상자로 낙인찍힐까 봐 전전긍긍하는 대신 당당하게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다.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들이 혐오 대상자가 되는 과정을 보는 모든 이는 우울하다. 행복하지 않다. '세월호' 말만 나오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도 약자다. 폭력은 두려움의 또 다른 이름이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의 한국이라 했던가, 우울지수가 가장 높은 국가라 했던가. 애도를 막지 마라. 함부로 잊으라 말하지 마라. 쉽게 이해한다고도 말하지 마라. 국가가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것, 그래서 참사가 계속 발생하는 것(이태원 참사)에 분노하고 해결될 때까지 함께하는 것이 애도다.


10주기에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작가의 이전글 리듬 속의 그 춤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